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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년 공룡능선 대학생 조난 사망사고 45
분류: 일반
이름: 개기름


등록일: 2020-10-20 20:20
조회수: 33379 / 추천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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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년 12월 17일 설악산에서 경북대 고분자공학과 대학생 4명 중 2명이 탈진, 사망했다. 1명은 공룡릉 남단 신선대에서 친구의 품에 안긴 채로, 1명은 가야동 골짜기를 내려가다 쓰러져 사망했다.


백담대피소에서 하루 묵은 이들은 희운각대피소를 향해 17일 아침 8시 출발했다. 수렴동대피소를 거쳐 오세암에 이른 것이 정오 무렵이었다. 서둘러 라면을 끓여 먹고 출발, 마등령에 도착한 것이 오후 2시. 공룡릉은 여름철에도 5시간이 걸린다. 동짓달 겨울산은 오후 5시면 캄캄해진다.

 

당시에는 날씨도 좋았고 쌓인 눈도 그리 많지 않았다. 이들은 희운각을 향해 출발, 1275m 봉을 2시간 만인 오후 4시경 통과했으나 길을 잘못 들어서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되었다.

그런데 길이 자꾸 헷갈렸다. 김군이 먼저 잠이 온다고 호소하며 주저앉곤 했다. 계속 나아가던 중 이군이 실족해 미끄러지더니 발목을 삐어 아파서 걷지 못하겠다며 신발을 벗어 버렸다. 이군에게 억지로 신발을 신기고 다시 어둠 속을 더듬어 걸었다. 희운각 불빛이 보였다.
생존한 두 사람은 당시를 이렇게 말한다. “멀리서 아물거리는 것이 아니라 손에 잡힐 것처럼 빤히 바라뵈는 불빛이었어요. 그러니 도와줄 사람을 금방 불러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밤 9시쯤이었어요.” 비교적 상태가 나은 박군과 엄군이 상태가 좋지 않은 이군과 김군을 각각 한 명씩 맡기로 했다. 박군이 지친 이군을 그 자리에 남아 돌보고 엄군은 김군과 희운각으로 가서 도와줄 사람을 불러오기로 했다.

현장에 남은 박군은 이군을 안고 텐트플라이를 겹쳐 뒤집어썼다. 배고픔보다 추위가 심해 배낭 속에 든 라면을 꺼내는 일도 포기했다. 바람에 텐트플라이가 날아 가면 끝장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박군은 이군에게 계속 말을 시키다가 대답이 없으면 욕도 하고 따귀도 때려 정신을 차리게 했으나 이군의 헛소리는 어느덧 신음으로 변했고, 이윽고 호흡이 멎었다. 자정 무렵이었다. 늦어도 2시간이면 돌아올 것 같던 구조 일행은 오지 않았다. 동이 부옇게 터올 때 40대 등산객 두 사람이 나타났다.

 
희운각 불빛을 코앞에 바라보며 내려간 2명은 어떻게 되었는가? 생존자 엄군은 “불빛은 보이는데 길은 절벽으로 끊기곤 해서 귀신이 장난치는 것 같았다”고 한다. 공룡릉 신선대에서 희운각으로 가는 길은 절벽으로 왼쪽 천불동 쪽의 급경사 절벽 경계선의 오른쪽 바로 옆으로 이어진다. 초행자로선 길이 끊어진다고 착각하기 십상이다. 이 때문에 능선을 따라 걷지 않고 오른쪽 완경사 능선을 따라 가야동계곡으로 잘못 내려서는 경우가 많다. 엄군 일행 또한 이런 실수를 했다.

구르고 미끄러지며 내려가다 보니 발자국이 여럿 보였다. 여기서 계곡 위쪽으로 올라갔다면 20여 분 만에 희운각에 도달했을 것이다. 그런데 2명은 발자국들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고 말았다. 김군이 기어이 주저앉으며 혼자 빨리 내려가 구조를 요청하라고 했다. 엄군은 졸기도 하며 내려갔다. 그렇게 걷다가 너무 졸려서 바위 아래 눈을 치우고 불을 피웠다. 나뭇가지를 주우러 갈 기력이 없어서 라면과 쌀까지 태웠다. 30cm 길이의 원통형 부탄가스용 버너가 있었지만 추위에 조금 타는 듯하더니 곧 꺼져 버렸다.

길을 찾아 헤매면서 수렴동대피소에 도착한 것은 아침 9시경. 수렴동대피소 관리인 이영선씨는 “아침밥을 먹고 있는데 총각 한 사람이 비틀거리며 걸어오더니 쓰러졌어요. 허벅지 안쪽의 바지가 타 있었어요. 대피소 안에 눕혔더니 2시간 뒤에 의식을 회복했고, 그제야 일행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라고 했다. 김군은 희운각으로부터 2km 아래 가야동계곡 상류 지점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구르고 미끄러지며 내려가다 보니 발자국이 여럿 보였다. 여기서 계곡 위쪽으로 올라갔다면 20여 분 만에 희운각에 도달했을 것이다. 그런데 2명은 발자국들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고 말았다. 김군이 기어이 주저앉으며 혼자 빨리 내려가 구조를 요청하라고 했다. 엄군은 졸기도 하며 내려갔다. 그렇게 걷다가 너무 졸려서 바위 아래 눈을 치우고 불을 피웠다. 나뭇가지를 주우러 갈 기력이 없어서 라면과 쌀까지 태웠다. 30cm 길이의 원통형 부탄가스용 버너가 있었지만 추위에 조금 타는 듯하더니 곧 꺼져 버렸다.


엄군은 이군과 헤어진 후 힘이 부족하여 걷기가 힘들어 불을 피웠다. 나무 하러 갈 기력이 없어서 라면과 쌀까지 태우며 불씨를 지키려고 애썼다. 비록 이튿날 수렴동대피소에 도착했을 때 의식을 잃긴 했으나 불을 지필 수 있어서 겨울밤을 지낼 수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공룡릉에선 바람 때문에 불 피울 곳이 마땅치 않다. 가야동계곡으로 하산, 이튿날 수렴동대피소에 도착한 엄군은 끽연자라 라이터가 있어서 김군과 헤어진 후 불을 피울 수 있었으나, 엄군과 헤어진 김군은 비흡연자라 주머니에 라이터가 없었다. 라이터가 생사를 가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망자가 발생한 경우 대책은 없었나 보자. 1993년 12월 조난자들은 비록 침낭은 없다고 하더라도 마등령에서 텐트를 치거나 불 피울 생각은 하지 않고 무조건 앞으로 나아갈 생각만 했다. 능선에 남은 박군과 이군은 부는 바람과 피로로 이미 불 피울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희운각 불빛을 찾아간 엄군과 이군은 길을 헤매다 가야동계곡으로 빠졌다.

 

출쳐: 월간산 474호

 


“불빛은 보이는데 길은 절벽으로 끊기곤 해서 귀신이 장난치는 것 같았다”

해진 후 산에서 랜턴이 있어도 1M앞 수풀밖에 볼수 없어 길을 잃고 내려오다보면 절벽에 막혀 당황했던 기억이 있어서 충분히 심정이 이해가 가네요.

본 게시글은 작성자에 의해 2020-10-20 20:53:2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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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커트 / 처음에 산에 왜 불 가져가는지 진짜 이해 안됐는데 요즘은 좀 다른 생각이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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