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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히말라야 등반기-고산병 관련 1편 3
분류: 정보
이름: [* 비회원 *]


등록일: 2018-07-14 00:56
조회수: 799 / 추천수: 0


박희선-기네스.jpg (678 KB)



아래에 잼쏭님의 히말라야 고산병 관련 영상을 보다가 문득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개인적으로 팔공산 갓바위만 다녀서 등산에 대해서 완전 무식입니다. 

히말라야는 커녕 외국여행도 안다녀서 고산병이 뭔지도 몰라서...얼마나 힘든지 상상이 좀 안가네요

아무튼 가지고 있는 (절판된) 책의 일부를 옮겨보겠습니다. 타자치기 힘들어서 중간 부분은 생략을 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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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이곳은 해발 3,000m 가량부터 공기 중의 산소 함유량이 급속히 감소한다. 평지의 공기 중 산소 함유량은 21%인데 여기서는 그 절반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또 밤낮의 온도차도 영하 20도~영상 5도나 되는 험한 곳이다. 그럼에도 정상정복을 꿈꾸며 '루쿠라(고도 2,100m의 히말라야 등반기지)'에서 출발하는 등반객은 하루 평균 500~1,000명 정도에 이른다. 이렇게 많은 등반객이 루쿠라를 출발 하지만 이들 중 4,200m 높이에 있는 세계 유일의 고산병 병원을 구경할 수 있는 등반객은 3분의 2를 넘지 못한다. 고산병 병원까지 무사히 올라와도 이 병원의 적성검사를 통해 3분의 1 정도는 등산 불합격 통보를 받는다. 1994년 10월, 이 고산병 병원에서 적성검사를 받은 200여 명 중 최고 점수(82%)를 받아 사람들의 시선을 끈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전문 산악인도 아니고 건장한 체격의 젊은이도 아닌 평범한 노인이었다.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 주인공은 바로 박희선 옹. 서울대 공대교수를 지내고 현재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 과학기술총연합회 고문, 한국두뇌개발연구원 원장 등의 여러 직함을 갖고 있는 이 노인에게 그곳 고산병병원 의사들은 특별한 관심을 나타냈다. 그때까지 고령으로 그런 점수를 받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런저런 질문을 던진 끝에 특수 체질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박옹은 그러한 판단에 흔쾌히 동의할 수가 없었다. 선천적인 능력이라는 의사들의 시각과는 달리 1969년 부터 시작한 참선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참선의 힘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을 하면서 히말라야의 한 봉우리인 카타팔라 (5,545m) 등정을 시도해서 마침내 성공했다. 3,500m 정도까지 등반하려던 애초의 계획을 바꿔 함께 간 일행들과 헤어진 후 일반 등산객은 힘들다는 카타팔라까지 등정했던 것이다. 등정에 성공하자 셀파와 현지인들은 경이로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에게 제안을 해왔다. 메라봉 (6,554m) 등정을 시도해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1년여 뒤인 지난해 12월, 그는 메라봉 등정을 시도했다. 등산을 위한 고가의 전문장비도 없이 파카와 슬리핑백 (남대문 시장에서 4만원에 구입)등 기본장비만 갖추고 셀파 1명, 포터 1명과 함께 메라봉으로 향했다. 77세의 고령자로서 메라봉 무산소 등반의 기적을 이룬 박옹의 첫인상은 그리 특별하지 않았다. 

(중략)

5000m 지점의 베이스캠프에서부터 정상까지는 온통 빙벽뿐이었다고 한다. 마침내 6,000m 지점에 이르자 동행했던 10명의 일행이 모두 기권하고 셀파와 박옹 둘만이 남았다. 힘들었으나 그대로 돌아설 수는 없었다. 고산병 증세를 호소하는 셀파를 제촉하여 .. (중략)


마침내 그는 만년설과 구름 자락을 허리에 차고 있는 거대한 히말라야의 웅지를 아래로 하고, 맑은 공기에 씻긴 몸을 곧추세웠다. 6,654m 메라봉 정상에 오른 것이다. 물론 그의 입가에 산소마스크는 없었다. 그렇게 무산소 최고령 등정의 기적 (기네스북 등재)을 이룬 순간 그는 가만히 세계의 지붕을 깔고 앉아 조용히 눈을 감은 채 결가부좌를 틀었다. "하늘에 오른 기분이랄까...태극기를 흔들면서 만세를 불렀지. 오줌을 시원하게 뿌리면서 마구 소리를 질러댔어. 엄청나다고 할 수 밖에 없는 산이 주는 경이로움과 몸이 깨끗이 씻겨진 느낌이 좀처럼 가시지가 않더군" 하지만 주체 못할 감격보다 앞선 것이 '어이쿠 살았구나'라는 안도감이었다고 한다. 정상을 500m 앞두고 호흡이 가쁠 때는 어떻게 올랐는지 기억이 없다고 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자일을 움켜쥐고 쉼없이 참선을 했던 기억 외에는...그는 내려오는 길에 950 달러를 되받았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준비한 1천 달러짜리의 산소통을 뚜껑도 따지 않고 돌려주었기 때문이다. (후략)

 

-문성호 (자유기고가)-

 

 

박희선-기네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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