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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때마다 생각나는 일화입니다.. 58
분류: 일반
이름: 마운틴고릴라


등록일: 2018-07-12 21:02
조회수: 6767 / 추천수: 36





안녕하십니까. 마운틴고릴라 입니다.

요즘 산에갈 시간이 잘 나지 않습니다.. 등포에서 여러 사람들의 사진을 보며 위안만 얻고 있습니다..ㅠㅠ

그래서 산행후기 대신에 예전에 여름에 설악산에서 있었던.. 여름 더울때마다 생각나는 일화에 대해 써볼까 합니다.

 

저는 대학생때 대학 산악부 활동을 했었고,, 그당시에 CC였던 전여자친구는 그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었습니다.

전여자친구 입장에선 저랑같이 놀고싶은데 저는 틈만나면 산으로 가거나 산악부모임을 나갔으니까요.

그러던 어느날, 전여친이 저와 등산을 가기 위해 등산화를 사겠다고 하더니 혼자 컬럼비아 매장을 찾아가서 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이것저것 신어보고 마지막으로 추린것이 [노란색등산화]와 [분홍색등산화] 인데, 편한것은 분홍색이 편한데 예쁜건 노란색이 더 예쁘다고 어떤걸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저는 등산화는 무조건 편한게 중요하니 분홍색을 사는게 어떻겠냐 라고 조언을 했고, 노란색을 샀다가 제말듣고 분홍색으로 바꿨다가 그다음날 다시 마음이 바껴서 결국 노란색등산화를 구매했습니다..(그 애가 선택장애가 좀 있었어요..)

그리고 등산화를 샀으니 설악산을 가보고싶다며 저를 졸랐습니다. 당일치기로 설악산의 대피소를 구경해보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희운각을 목표로 잡고 (그당시에 양폭산장은 화재로 소실돼서 없었어요) 소공원에서 출발하여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등산화를 신어서 그런지 다리에 힘이난다며 콧노래 흥얼거리며 산을 올랐습니다. 

등산을 싫다고 하던애가 산을 의외로 잘 타니, 앞으로 여자친구와 같은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겠구나 싶어서 저도 기분이 매우 좋았지요. 

서로 손도잡고 알콩달콩(?) 오르는데 어느순간 여자친구가 발이 아프다고 하더군요. 

저는 별 생각 없이 "원래 등산화 처음 신으면 발이 조금 아플수도 있는거야" 라고 하며 엄살부리지 말라고 하고 계속 올랐습니다. 

그러다가 양폭산장터 까지 이르렀을때 전여자친구가 이제는 발이 너무 아프다며 등산화를 벗어보고 싶다는 겁니다.

그래서 양폭산장터 근처에 앉히고 등산화를 벗겨봤는데.. 오마이갓... 발가락 사이사이에 물집이 다 터져서 양말에 피가 묻어나올정도였었습니다.

아프지만 걸을만 하다던 여자친구도 자기 발 상태를 직접 눈으로 보더니 더이상 못걷겠다고 하더군요..

결국 거기서 더 가지 못하고 양폭산장에서 소공원으로 다시 하산을 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습니다.

도저히 등산화를 신을수가 없다고 해서 맨발로 하산을 하는데, 백미터쯤 걷더니 못걷겠다고 울상을 짓더군요.

속으로 어쩌지... 119 불러야하나... 어쩌지...어쩌지... 고민하다가...

 

결국 제가 업었습니다. 제 배낭은 여자친구에게 매게 했고요.

여자친구를 업고 하산을 하는데, 처음 한 500m 정도는 견딜만 했습니다.

근데 어느순간부터 다리가 후들후들 거리기 시작하고 저도 걷기가 너무 힘들어지더라고요.

 

10m가고 내려놓고 10m가고 내려놓고... 하다가 나중엔 두세걸음 가다 쉬고 두세걸음 가다 쉬고...

 

더운 여름날 땀은 미친듯이 나고 마시는 물보다 땀으로 나가는 물이 더 많을듯이 땀이 많이 났었습니다..

결국 저는 분노게이지가 폭발했고, 등에 업혀있는 여자친구에게 화풀이를 했습니다.

 

"내가 분홍색 사랬잖아~!!!!!!"

 

하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내려왔었습니다. 여자친구 들으라며 막 뭐라뭐라 소리치며 내려왔었는데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앞으로 오빠말 잘들어라 뭐 그런내용이었던것 같습니다.

너무 힘이 들어서 탈진상태가 지속되고 눈앞이 침침해지며 저승사자가 와서 하이파이브 하기 직전에 비선대에 도착했고 거기서부턴 여자친구가 등산화를 다시 신겠다고 해서 서로 부축해서 서로 절뚝거리며 걸었습니다. 

해가 다 져서 깜깜해질때쯤 소공원에 도착해서 서로 살았다며 부둥켜안고 울고불고...

 

여름에 너무 덥고 습해서 땀이날때면 그때일이 떠오릅니다. 

지금은 누가 양폭에서부터 사람업고 내려가라고 하면 당연히 119에 전화할겁니다. 사람이 할짓이 아닙니다.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제 무릎이 안좋아진것 같기도...

 

지금은 이미 헤어진지 오래돼서 얼굴도 가물가물하지만 그사람도 여름마다 그 일을 떠올리지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아. 누군가가 등산화 뭐 사야하냐고 저에게 물어볼때도 이 얘기를 해주며 제발 부탁이니 신어보고 편한거 사라고 조언을 합니다.

전여친의 노란색 등산화는 8만원인가 주고 사서 한번신고 버려졌거든요. 제돈도 아닌데 어찌나 아깝던지...

 

[수정]

전여친을 업어야겠다고 마음먹게된 사연이 있었는데요, 산악부의 하늘같은 고학번 OB 선배님들이 하시던 말씀중에 

"우리땐~ 50~60키로짜리 지게를 매고 대피소까지 짐 실어나르는 알바도 하고 그랬었어~" 

이런 말씀을 하셨던 생각이 나서... '나라고 못할게 뭐있냐!' 하는 생각에 그리했었습니다. 50키로짜리 지게를 지는것과 사람을 업는것은 다르다는걸 나중에서야 깨닫고 후회했지요...

양폭에서 비선대까지 두세걸음씩 가다 쉬고 가다쉬고 반복해서 9시간이 넘게 걸렸었는데, 물도 다떨어져서 등산로 옆에 흐르는 개울물 퍼먹으며 내려왔었답니다.

본 게시글은 작성자에 의해 2018-07-13 00:35:42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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