뽐뿌

역사포럼 입니다.

올바른 역사인식을 위한 학술/논의 공간 입니다. 현대사(1945.8.15이후)는 [정치자유게시판]을 이용해주세요.
정치적이지 않고 오직 (진실,사실적인 김일성 인생,역사) 08편
분류: 한국사
이름:  김경찬


등록일: 2020-04-16 22:07
조회수: 138 / 추천수: 0




08편.


 


 


 


1929년에 영안의 팔도하자로 옮겨와 대량의 황무지들을 헐값에 사들이고 이 황무지들을 개간하여 농촌 공동체 어복천을 건설하려고 동분서주하고 다녔던 김중건은 이 지방에서 가장 큰 세력을 자랑하고 있었던 마적 ‘동산호’에게 다달이 쌀을 바치는 조건으로 그들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알 리 없는 이광의 별동대가 한번은 나자구에 볼일을 보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김중건을 연도에 인질로 납치해놓고 쌀을 내놓으라고 을러멨다.


 


 


“나는 ‘동산호’가 지켜주고 있는 사람인데, 자네들이 나한테 함부로 이렇게 대하면 필시 ‘동산호’가 가만히 두고 보지만은 않을 걸세.”


김중건의 말에 이광의 별동대 대원들은 앙천대소했다.


 


 


“영감은 우리가 누구의 부대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요? 우리의 사령관은 오의성이란 말이오.”


“일본놈들과 싸우는 길림구국군이란 말인가?”


“그렇소.”


‘길림구국군에도 우리 조선인들이 이렇게 많이 있었나?’ 하고 놀라던 김중건은 한참 팔자수염을 쓰다듬더니 선선히 대답했다.


 


 


“자네들이 모두 나랑 같은 조선인인 데다가 나이로 봐도 내 아들 같으니 내가 쌀을 주겠네. 그러니 무슨 ‘인질’이니 뭐니 하고 일을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그냥 놓아주게나. 내가 집에 도착하는 길로 바로 쌀을 마련해서 자네들한테 보내주겠네.”


 


 


김중건은 자기를 납치한 이광의 별동대가 전부 조선인 청년들인 것을 보고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그런데 이광의 별동대는 김중건을 믿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안 되오. 가족에게 편지를 쓰오. 우리가 사람을 보내서 편지를 전달할 것이오.”


“우리 가족에서 내 편지를 받으면 금방 ‘동산호’에게 가서 알리고 구원을 요청할 것이니 그러면 일만 더 복잡하게 되오. 그러니 내가 직접 가지 않으면 안 되오.”


김중건은 직접 이광을 설득했다.


 


 


“나를 혼자 놓아 보내기가 염려되면 당신들 사람이 나를 따라 함께 갑시다. 그러면 내가 다시 올 것도 없이 당신네 사람들이 곧장 우리 집에서 쌀을 가지고 돌아오면 될 것이 아니겠소.


 


 


 


내가 마차와 수레까지도 다 마련해서 함께 드릴 것이니 나의 요구대로 해주시오.”


이광은 마침내 동의하고 말았다. 그런데 김중건을 따라 영안까지 갔던 별동대 대원들이 쌀을 받아가지고 나자구로 돌아오는 길에 운 나쁘게 ‘동산호’에게 걸려들어 쌀을 모조리 빼앗기고 또 대원들까지도 몇 명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


 


 


나중에 이 일은 오의성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오의성은 이광의 한쪽 말만 듣고 백 퍼센트 김중건이 시켜서 ‘동산호’가 자기의 별동대를 습격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시세영의 여단 산하 부현명의 연대가 나자구로 나올 때 오의성은 직접 부현명에게 김중건을 잡아오라고 시켰다.


 


 


부현명의 부대가 원체 사람 수가 많았기 때문에 ‘동산호’는 자기 산채에 와서 피신 중이었던 김중건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김중건을 포박한 부현명의 부대가 노야령을 넘어갈 때 ‘동산호’의 무리들은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김중건을 구하려고 달려들었으나 끝내 구해내지 못하고 혼전 도중에 오히려 김중건만 눈먼 총에 맞아죽고 말았다.


 


 


이것이 ‘동산호’와 이광의 별동대가 서로 원한을 맺게 된 사연이었다. 그런데 이광 쪽에서는 오히려 김중건을 직접 해친 사람은 자기들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동산호’가 자기들에게 보복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만 노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지냈다.


 


 


하지만 1933년 5월, ‘동산호’는 노흑산 일대의 삼도하자를 차지하고 이광의 별동대에 초대장을 한 장 띄웠다. 초대장 속에다가 항일의 대업을 위하여 별동대와 합작할 의향이 있다는 내용도 써넣었다.


 


 


 


그것이 올가미인 줄도 모르고 이광은 별동대에서 제일 뛰어난 대원 10여 명을 특별히 선발하여 데리


고 ‘동산호’를 찾아갔다가 그만 모조리 살해당하고 말았다.


 


 


 


그때 이광의 나이는 29살밖에 안되었다.


 


 


이렇게 이광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별동대의 나머지 대원들은 모조리 구국군을 떠나 왕청 유격대로 돌아가 버렸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왕청에서는 또 ‘관보전 사건’까지 발생하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구국군과 유격대의 관계가 점점 비틀어져가고 있을 때 오의성의 구국군 사령부가 나자구로 옮겨오게 되었다.


 


 


 


김성주가 회고록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유격대는 구국군의 행패가 두려워 낮에 대놓고 나다니지도 못할 지경까지 되었다.


 


 


이광이 죽고나서 오의성과 연줄을 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오의성의 구국군 사령부에서 선전처장으로 일했던 적이 있는 왕윤성과 김성주밖에 없었다.


 


 


 


유격대의 존망과 관계되는 문제라 섣불리 찾아갔다가는 피해를 볼 수도 있다고 만류하는 것도 마다하고 김성주가 직접 오의성을 찾아갔던 것이다.


 


이상.. 09편에서 계속..


 


 


 



[ 주소복사 http://www.ppomppu.co.kr/zboard/view.php?id=history&no=2306 ]

추천 0

다른 의견 0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댓글은 삼가주세요. (이미지 넣을 땐 미리 보기를 해주세요.)
직접적인 욕설 및 인격모독성 발언을 할 경우 제재가 될 수 있습니다.
- 미리보기
이모티콘  익명요구    다른의견   
△ 이전글▽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