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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대펌, 욕있음)우리 엄마는 페미니스트다.txt 5
분류: 기타
이름: 꽃우기


등록일: 2019-10-23 12:58
조회수: 3496 / 추천수: 1





편의상 반말하겠음.

다른게 아니라 시발 수지 라는 애가 인스타에다가 싸지른 똥 보고 열받아서 적는다.

광화문 교보문고가 내 놀이터인데 82년생 김지영 그 ㅈ같은 소설을 며칠 전에 다 읽었어.

영화화 했다고 했을 때 진짜 저딴 영화를 만든다고 한 감독, 배우, (한 명은 독재자가 제일 존경스러운 인물이라 했을 때 거름.)

진짜 얘네는 돈 되면 다 하는 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음.

책을 읽고 느낀 점? 82년생 여자가 그 모든 일을 겪을 수 있다고? ㅋㅋㅋㅋ 그리고 그게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지랄하네.

내가 빡쳐서 우리 엄마 얘길 한다.

우리 엄마는 71년생 깡촌 출신 황모씨야.

외할아버지는 엄마 4살 때 돌아가시고, 외할머니는 7살일 때 돌아가셨어.

그래서 25살 차이나는 큰 오빠 밑에서 자라셨어.

그런데 우리 엄마는 부모님 돌아가신 것도 가슴 아픈 일이지만, 한 가지 더 가슴 아픈 것이 큰 오빠랑 어머니가 달라.

우리 엄마는 둘째 부인의 딸인거야.

9남매 집안이지만 6명 + 3명 해서 우리 엄마의 친형제는 3남매였어.

아무튼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다 돌아가시고 큰 오빠, 그러니까 큰 외삼촌은 밑에 8명의 동생을 그래도 책임지셨어. 고등학교 전까지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는데, 물려받은 재산 없이 8명의 동생을 키워야 했고, 본인에겐 4명의 자녀가 또 있었어.

진짜 본인의 인생을 동생, 가족을 위해 바치신 분이야. 존경받아 마땅한 분이지. 그런데 이 환경이 우리엄마에겐 정말 슬픈 일이었어. 한계가 존재했거든.

우리 엄마는 공부를 엄청 잘하셨대, 중학교도 수석으로 입학하고, 공부를 아무리 안 해도 5등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으셨대.

안 믿었는데 외갓집 가니까 상장이 수두룩 하더라.

아무튼 그랬는데 8명의 동생을 키우고, 본인의 자녀 4명을 키우려니 외삼촌이 많이 힘드셨겠지.

그러니 공부를 잘했음에도, 빨리 취업해서 돈이나 벌라고 외삼촌은 상업 고등학교를 보내려고 하셨고, 실제로 그렇게 돼버렸어.

중학교 담임선생님, 교감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와 입양이라도 해서 인문계 고등학교 보내겠다고 했는데 그건 또 반대하셨나봐.

아무튼 우리 엄마는 당연히 인문계를 갈 것이라 생각을 했는데, 상고를 갔고,

낮에는 수업을 받고, 밤에는 미싱일을 하는 생활을 하게 돼.

그렇게 공부를 잘 하던 애가 상고를 왔으니, 인생에 의욕이 사라진 것도 있는데
우리 엄마를 알던 년들은 시기와 질투로 왕따를 시켰고, 그렇게 잘난 척 하더니 나랑 같은 레벨이네? 하면서 많이 괴롭혔다고 해.

그런 생활들이 지겨우니까 우리 엄마는 학교를 때려치우고 19살에 상경을 했고, 결국 고등학교 졸업장 없이

서울로 올라오셔서 자취를 하게 돼. 뚝섬 쪽에서 미싱공장을 다녔고,
그 때 당시 월급이 50만원인가 그랬다고 하셨고, 그 돈을 모아서 검정고시랑 대학을 꿈 꿔.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비극이 일어나. 바로 내 아빠를 만난거지. 왜 비극이냐.

이 새끼는 전형적인 양아치새끼였어. 졸부집안 큰 아들 새끼였는데 책임감은 ㅈ도 없고, 뻑하면 부인을 때리고, 엄마가 월급을 받아오면

그 돈을 가져가서 노름해서 다 날리고 그런 짓을 했던 재활용도 불가능한 쓰레기같은 새끼야.

아무튼 19살 짜리가 사람 보는 눈이 뭐가 있겠냐. 나 좋다고 하니까 그냥 오케이 하고 만났고, 사랑하게 됐고, 결혼까지 하게 된거지. 아기도 낳았고.

그런데 결혼을 하고나서 그 새끼가 쓰레기란 걸 알았지만... 우리 엄마는 이혼을 생각을 못 하셨어.

90년대만 해도 이혼하면 문제있는 여자 취급했고,

그리고 엄마 본인도 내가 있었기 때문에 아들에게 아버지 없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지 않아서 그 새끼를 몇번을 용서해주면서 28년을 살아.

그리고 그 새끼가 갱생되는 듯 했었고, 그런 척이었지만.

그 새끼랑 살면서 우리 엄마는 별의 별 일을 다 했어.

마트 일, 파출부, 부업, 공장 일, 반찬가게 일, 막노동, 식당 등등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은 거의 다 해봤다고 해도 무방해.

왜 이렇게 고생을 하고 살았냐면... 위에 언급한 쓰레기새끼가 돈을 벌어도 지 혼자 쓰는 새끼였어.

28년동안 집에 기여한 금액이 5천만원이 안 된다면 믿을 수 있겠니?ㅋ

아무튼 그렇기에 우리 엄마는 가정을 깨지 않기 위해, 자식들을 위해 몸 망가져가면서 살았어. 지금도 가끔 왼쪽 다리를 절어.

그렇게 살았던 우리 엄마 그 험한 일 하면서 얼마나 ㅈ같은 걸 많이 겪었을까?

내가 사회생활 2년 해보면서 진짜 내 인내심의 한계에 놀라고 있는데 우리 엄마는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인격적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근무환경에서 거의 20년가까이 일을 했어.

82년생 김지영? 넌 시발 우리 엄마에 비하면 복 받은 년이야 시X년아.
우리 엄마가 더 힘들었다고 니가 안 힘든 게 아니잖아? 그래 맞지. 맞는 말이야. 그런데 내가 여기서 너같은 년이랑 우리 엄마 차이를 서술할게.

우리 엄마 이혼하고 나서 2년 전에 공부해서 공무원 됐다.

공무원 하려고 방송통신고등학교 일하면서 다녀서 고등학교 졸업장 따고, 대학도 가보고 싶어서 방통대도 졸업하셨다.
이 때는 이혼한 상태도 아니였어서 그 새끼 술처먹고 술주정 부릴 때, 집안 물건 때려부수고 그럴 때 다 참아내면서 한 업적이야.
그 와중에 나 대학도 보냈었고, 내 동생 미술공부도 시켰고. 독박육아? 우리 엄마는 시발 거의 독박벌이에 독박육아까지 했어.
집에서 처 노는 년들이 독박 육아 타령하면 진짜 처맞아도 할 말 없는거다.
아무튼 그러고나서 이혼하고 자기 인생에서 꼭 이루고 싶은거 이루겠다고 공부 엄청 하시더니 결국 9급시험까지 붙어버리더라.
보여? 여성인권? 니들이 정말로 노력을 해보고 부당하게 차별받을만한 위치에 가보고 그딴 소리 좀 지껄이라는 게 우리 엄마 말씀이야.

우리 엄마는 니네 말대로 '여자'라는 이유로 그 시대에 하고 싶은 공부도 못 하고 공장가서 돈이나 벌어야했고,
그 와중에 엄마이기에 자식들을 키워야 했고, 그 와중에 당뇨병 걸린 시아버지 간호에다가 중풍 맞은 시어머니 간호까지 했어야 했어.
큰며느리란 이유로. 제사? 일 년에 20몇 개 되는 제사 준비도 했어야 했어. 이 외에도 사회적으로 받은 부당함까지 다 견뎌내고
지금은 본인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 밑이지만 그래도 엄마의 원래 꿈이었던 교사들과 같이 일하는 교육행정직렬에 초등학교로 출근하게 된 것으로
본인 꿈을 비슷하게 이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

이런 역경을 이겨내고 우리 엄마 지금은 누구보다 멋지게 살아. 너네들에겐 없는 인권이 우리 엄마에겐 있었니?
오히려 너네에게 있었던 환경이 우리 엄마에겐 없지 않았을까?
미친년들아 사회 탓만 처하고 인터넷에서 여기 우루루 저기 우루루 쿵쾅 거리면서 ㅅㄹ같은 애들 아프게 만들지 말고
인생을 열심히 살아보고, 노력이라는 걸 해보고, 사고력이라는 걸 갖고 인생을 살아 정신 나간 년들아.
그리고 거기에 동조되는 연예인들은 뭐다?ㅋㅋ 그리고 지들이랑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던 연예인이 페미 선언한다고
잔다르크 취급?ㅋㅋㅋㅋㅋㅋ 지랄하네. 82년생 김지영 주연 분이 유아인 얘기 하니까 ㅋㅋㅋㅋㅋ 태세 전환하더만 머저리들.

아무튼 내 기준에선 우리 엄마가 진정한 페미니스트다. 왜냐고? 본인 인생으로써 여자는 결코 약하지 않다는 걸 보여줬으니까.

개 빡쳐서 쓴 글이라 정리가 안 됐는데 긴 글 읽어준 분들 감사드림.

 

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pds&pg=2&number=909263

 

어머니께서 많이 고생하셨네요ㅠㅠ

[ 주소복사 http://www.ppomppu.co.kr/zboard/view.php?id=humor&no=3556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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