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글 제목의 연의라는 표현은 소설의 형식이라기 보단 일종의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보시면 됩니다. 

설화를 비롯하여 일부 사견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실제 역사적 진실은 이와 다를수 있습니다. 

연재글을 처음부터 차례대로 보시려면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baekjelove1 이곳에 오셔서 '백제사랑 역사이야기' 카테고리로 가시면 쉽게 보실수 있습니다. 기존에 연재하면 '7세기 백제연의'의 내용을 대폭 수정하고 새롭게 작성하고자 제목을 '신 백제연의'로 변경하였으며 리부트 하여 처음부터 다시금 작성하고자 합니다.

[신 백제연의] 2. 백제 28대왕 혜왕은 누구인가?

599년 무렵 백제의 영토입니다. 개인적인 사론이 많이 포함된 추정 영토이며 고대의 영토는 오늘날의 휴전선 개념처럼 명확하게 구분져 있지도 않으며 지명고증은 전문학자들도 서로 의견이 다르며, 확실하게 단정짓지 못한 사안이므로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다를수도 있습니다. 

1. 관산성 전투의 여파

SBS드라마 서동요에서 박태호라는 배우가 연기한 혜왕의 모습, 삼국사기에는 그저 즉위년 기사와 이듬해 사망한 기사가 전부인 인물이지만, 일본서기를 통해 단편적으로나마 그의 모습을 유추해 볼수 있습니다.

우선, 지난번에 언급한 법왕의 승부수를 설명해주기에 앞서서 당시 백제의 상황과 법왕의 아버지 혜왕에 대해 좀더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위덕왕이 죽자 아들인 법왕의 도움으로 22대 임금으로 왕위에 오르게 되는 법왕의 아버지 혜왕, 비록 법왕이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기반으로 경쟁자이자 위덕왕의 아들인 아좌를 물리치고 왕위에 오를수 있었다고 하지만 단순히 전쟁의 전공만으로 혜왕이 왕위에 쉽게 오를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혜왕 그는 어떠한 인물일까요? 삼국사기엔 그저 위덕왕의 동생으로 위덕왕이 죽자 뒤이어 왕위에 올랐고 이듬해에 죽었다는 사망기록이 전부인 인물입니다. 하지만 일본서기를 통해 단편적으로나마 그의 행적을 추적해 보고자 합니다. 우선 그에 앞서 관산성 전투 당시의 상황부터 살펴봐야 겠습니다.

554년 여창(훗날 위덕왕)이 신라를 정벌할 것을 계획하자 늙은 신하(耆老)가 “하늘이 함께 하지 않으니 화가 미칠까 두렵습니다”라고 간하였다. 여창이 “늙었구려. 어찌 겁내시오.”라 하였다. <일본서기>

일본서기 기록에 따르면 위덕왕은 554년, 아버지 성왕과 함께 관산성 전투를 주도적으로 계획합니다. 이에 백제 조정내부에서는 늙은 신하들이 전쟁을 만류합니다. 즉, 백제 조정 내부에서 왕자인 위덕왕을 비롯한 주전파와 늙은 신하들로 대표되는 주화파가 대립을 하게 되는데, 이때 기록이 없어 알수 없지만, 적어도 혜왕은 주화파의 입장에서 늙은 신하들과 함께 전쟁을 반대하는 인물이지 않았을까요?

554년 신주(新州)의 군주인 김무력(金武力)이 주(州)의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교전하였는데, 비장(裨將)인 삼년산군(三年山郡)의 고간(高干)도도(都刀)가 급히 쳐서 백제 왕을 죽였다. 이에 모든 군사가 승리의 기세를 타고 크게 이겨서 좌평(佐平) 네 명과 군사 2만 9천 6백 명의 목을 베었고, 한 마리의 말도 돌아간 것이 없었다.<삼국사기 신라본기>

하지만 성왕은 맏아들인 위덕왕의 손을 들어주었고 그 결과는 매우 처참하였습니다. 성왕 자신을 비롯한 백제 1등급 좌평 6명 중 무려 4명이 전사하고 2만9천600명이 전사하는 참패였습니다.

관산성 전투는 백제라는 국가에게 있어서는 매우 큰 비극이었겠으나 오히려 혜왕 개인에게 있어서는 왕위에 다가갈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2. 혜왕의 왕제시절 활약상

555년 봄 2월 백제 왕자 여창이 왕자 혜(惠)【왕자 혜는 위덕왕의 아우이다】를 보내어 “성명왕이 적

에게 죽음을 당했습니다”라고 아뢰었다. <일본서기>

555년 관산성 전투에서 성왕이 죽임을 당하고 좌평도 4명이나 죽으며 참패한 백제는 성왕의 죽음을 알리고자 위덕왕은 자신의 동생인 혜왕을 왜에 사신으로 보내 혜왕은 1년동안 왜에 머무르게 됩니다. 왜국에 사신으로 보내지는 것은 고대엔 험한 뱃길로 인한 위험성과 더불어 자칫 정치적인 추방으로도 비춰질수 있는 위험한 상황. 그로인해 개로왕의 동생 곤지는 왜국에 사신으로 가라는 개로왕의 명령에 개로왕의 임신한 부인을 인질로 요구하였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권력에 대한 욕심이 커보이지 않았던지 혜왕은 혼란스러운 정국을 수습하고자 군소리 없이 형인 위덕왕의 명령에 따랐고 1년동안 왜에 머무르면서 기대이상의 성과를 내게 됩니다.

557년 봄 정월 : 백제 왕자 혜가 돌아가기를 청하자 병기와 좋은 말을 매우 많이 주었다. 또한 빈번히 상으로 물품을 내려 주었으므로 여러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찬탄하는 바가 되었다. 이에 아베노오미(阿倍臣), 사에키노무라지(佐白連), 하리마노아타히(播磨直)를 보내어 치쿠시코쿠(筑紫國)의 수군(水軍)을 이끌고 그 나라에 도착할 때까지 호위하여 보내 주었다. 별도로 츠쿠시노히노키미(筑紫火君)【《백제본기》에는 츠쿠시노히노키미(筑紫君)의 아들 히노나카노키미(火中君)의 아우라 한다】을 보내어 용감한 군사 1,000명을 이끌고 미저(彌弖)【미저는 나루터 이름이다】에까지 호위하여 보내어 뱃길의 요충지를 지키게 했다. <일본서기>

2만9천명의 전사자를 내며 막대한 피해를 입은 위덕왕 입장에서 당장의 직면한 국가적 위기상황은 바로 신라의 침공이었습니다. 특히나 백제의 수도가 있는 중심지, 충청도 지역은 어떻게든 막아낸다 해도 문제는 백제의 영토가 된지 채 50년도 안된 전라남도 지역의 방어였습니다. 특히나 가야를 흡수한 신라 입장에선 전라남도 지역은 분명 손쉽게 먹을수 있는 지역이었고, 만약 신라가 전라남도 지역을 차지하게 되면 백제는 왜와의 외교루트가 차단되어 신라에 둘러쌓여 완벽하게 고립되는 심각한 상황에 처해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혜왕이 구제주처럼 나타나 왜의 1,000명의 병력을 지원받으며 귀국하여 남쪽 국경 문제를 해결해 준것입니다. 

미저(彌弖)는 남해도 미조항 일대로 추정됩니다. 백제에서 왜로 단번에 갈수 있는 최단거리 항로이자 섬진강 하구를 가로막는 군사적 요충지였습니다.

미저(彌弖)는 현재 경상남도 남해도의 미조리일 것으로 추정된다. <동북아역사재단 -역주 일본서기>

그런 상황에서 남해도 일대에 왜의 1,000명의 병력이 주둔할수 있게 한 혜왕의 활약은 분명 백제에게 있어서 천군만마와 같은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더불어 혜왕은 왜에 1년동안 머무르면서 왜국 신하와 왜왕에게 깊은 신임을 받았고 그로인해 여러차례 진귀한 보물들을 상으로 받아 막대한 부도 이룰수 있었습니다. 이는 분명 혜왕에게 있어서 자신의 정치적 입김을 넓힐수 있는 자산이 되었을 것입니다.

남해도 미조리 인근인 남해도 남치리 일대에서 백제 귀족 무덤이 최근 발굴되어 이 지역이 오랫동안 백제의 영토로써 매우 중요하게 다스려졌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3. 법왕의 가장 큰 걸림돌, 아좌태자

비록, 혜왕이 관산성 싸움 이후 직면한 위기상황에서 왜로부터 1,000명의 원군을 지원받는 활약을 하며 백제 정치일선에 화려하게 복귀하였지만, 그럼에도 그는 왕위와는 매우 거리가 먼 인물이었습니다. 당장, 성왕의 맏아들 위덕왕이 비록 불안한 왕권이나마 건재한 상황이었고, 더불어 위덕왕에게는 차기 왕위 계승자인 아좌라는 태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서동요'에서 정재곤 씨가 연기한 아좌 태자의 모습, 드라마상에서는 법왕에게 암살당하는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그 정도로 극단적인 죽음을 맞이하진 않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한 상황속에서 혜왕은 왕위에 대한 욕심보다는 그저, 권신이자 왕제로써의 영향력만을 행사하기만 하였을 뿐 딱히 왕위에 대한 욕심을 비추지 않은것으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561년, 577년 2번에 걸쳐 위덕왕은 의욕적으로 병력을 쥐어짜 재차 신라를 침공하여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이루고자 하였으나 번번히 실패하고 맙니다. 더불어 위덕왕의 아들이자 아좌의 동생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577년 갑자기 급사하고 맙니다.

이렇게 되자 백제 조정내에서도 미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번번히 전쟁에서 패하기만 하는 위덕왕과 아좌에 대한 정치적인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정치적 위기속에서 위덕왕은 어느덧 70이 넘는 고령의 나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고대에 70이 넘은 나이라면 분명 건강에 여러차례 위기가 찾아왔을터, 위덕왕에겐 서서히 레임덕 징후가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왕위에 대한 욕심이 꿈틀거리던 법왕은 70이 넘은 아버지 혜왕을 부추겨 아좌를 백제 정치계에서 축출하고자 방법을 강구하였을 것입니다. 특히나 혜왕이 왜국에 1년가량 머물며 얻어낸 정보통은 법왕에게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596년 백제계 소가노 우마코(蘇我馬子) 대신의 발원에 의하여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사원인 아스카데라(飛鳥寺)의 건립 소식이 전해지자 혜왕과 법왕에게 있어선 매우 중요한 정치적 무기가 되었습니다.

아좌를 정치적으로 숙청시킬 기회만 노리던 법왕에게 마침 호기가 찾아옵니다. 왜국에서 일본 최초의 공식 사원인 아스카데라 사원의 완공 소식이 전해진 것입니다. 이에 혜왕과 법왕은 적극적으로 왜국에 축하사절단을 보낼것을 위덕왕에게 건의하였고 그 대상자로 아좌를 지목하였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들은 혜왕의 전례를 들며 위덕왕에게 아좌를 사신으로 파견하여 왜에 머물게 하며 입지를 넓힌다면 분명 백제에게도 큰 도움이 될것이고 아좌 개인에게도 혜왕때처럼 큰 이익이 될것이라고 설득하였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결국 그당시 73세의 고령의 위덕왕은 이들 혜왕과 법왕의 계략을 눈치 채지 못한채 선뜻 아좌를 왜에 사신으로 보냅니다.

597년 4월 1일에 백제왕(위덕왕)이 왕자 아좌를 파견하여 조공하였다.<일본서기>

* 일본서기에 나오는 조공 문구 자체는 외국에서 사신이 왔을 경우 조공 하였다라고 기록하는 사례가 매우 많이있기 때문에 속국이 조공하였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평소 그림에 능했던 아좌는 아버지 위덕왕의 바람대로 왜에 사신으로 파견되자 즉각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 되어 그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신임을 받고 혜왕이 그러했던 것처럼 점차 왜에서의 영향력을 넓히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날 진위여부가 있긴 하지만 아좌태자가 그린것으로 전해지는 쇼토쿠 태자의 초상화입니다. 아좌는 정치적인 식견은 부족했을지 몰라도 예술가적 식견과 학식에 있어서 만큼은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혜왕과 법왕은 아좌의 부재를 틈타, 즉각 백제 조정내를 장악해 나간 것으로 보여집니다. 특히나 598년 9월경에 벌어진 고구려 수군의 침입을 법왕 스스로 격퇴해 나가며 법왕은 그 군사적 업적을 널리 홍보하고 활용하여 노쇠한 위덕왕의 눈과 귀를 차단하며 더더욱 입지를 다지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우군이었던 아좌마저도 왜에 보내며 위덕왕은 자신의 손과 팔을 스스로 자르게 되고 만 셈이 되었던 것입니다.

영화 관상에서 조카를 제치고 왕위를 차지한 수양대군의 모습. 혜왕 역시 수양대군 처럼 조카인 아좌를 재치고 왕위에 올랐으나 그 과정은 수양대군처럼 군사력을 동원한 극단적인 방법이 아닌 장기간에 걸친 고도의 정치술이 발휘되었을 것입니다.

결국 위덕왕의 계속된 전쟁 패배와 노쇠화, 아좌의 부재로 인한 권력의 공백, 더불어 때마침 생긴 고구려 수군의 침입 격퇴를 법왕 스스로 격퇴해나가면서 여러 호재가 겹쳐 권력의 중심을 점점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 혜왕에게 집중시켰고 그로 인하여 드디어 혜왕이 왕위에 오를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좌를 제치고 자신의 아버지 혜왕을 왕위에 오르게 한 법왕, 그는 수십년동안 자신이 왕위에 오르기 위해 치밀하게 행동하였고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혜왕이 왕위에 오른 직후의 법왕의 행보는 다음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