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대구=김동영기자] “자괴감 많이 들었죠.”
‘FA 미아’가 될 뻔했던 정찬헌(33). 우여곡절 끝에 다시 키움 유니폼을 입었다.
보란 듯이 호투를 펼친다.
키움으로서는 계약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정찬헌도 ‘매 경기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뛴다.
정찬헌은 올시즌 9경기에서 49.2이닝을 소화하며 1승 4패, 평균자책점 3.62를 기록중이다.
승운이 따르지 않았다.
퀄리티스타트(QS)가 6번이나 되는데 단 1승.
6이닝 1실점 패전이 두 번이나 된다.
6이닝 무실점, 6이닝 2실점에 승패 없음으로 끝난 경기도 있다.
21일 대구 삼성전도 불운했다.
7이닝 무실점을 쐈는데 승리도, 패배도 없다.
그래도 올시즌 개인 최고 피칭을 했다.
LG 시절이던 지난 2020년 6월27일 문학 SK전에서 완봉승을 거둔 후 1089일 만에 7이닝을 먹었다.
7이닝 동안 단 77개만 던지면서 7이닝 기준 개인 최소 투구수(기존 83개)도 깼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런 정찬헌의 모습을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2022시즌을 마친 후 FA를 선언했다.
그러나 데려가려는 팀이 없었다.
사인 앤드 트레이드 이야기만 계속 나왔다.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스프링캠프도 가지 못했고, 혼자 훈련해야 했다.
그리고 지난 3월27일 키움의 손을 다시 잡았다.
2년 총액 8억6000만원에 도장을 찍었다.
2년 보장액은 6억원이다.
정찬헌은 “계약이 안 됐다면, 후회가 많이 남는 야구 인생 15년이 됐을 것 같다.
FA는 선수의 권리다.
그러나 무조건 계약을 따낸다는 보장은 없다.
알고 선택했다.
계약이 안 되니까 쫓겼다”고 비시즌을 돌아봤다.
이어 “답답한 마음도 있었다.
매일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경쟁력이 정말 없나?’ 싶더라. 자괴감에 빠졌다가, 운동을 하면서 다시 자신감을 되찾고 그랬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랬다”고 덧붙였다.
기본적으로 키움에는 안우진이라는 에이스가 있다.
여기에 최원태도 올시즌 커리어 하이를 찍을 기세다.
‘토종 원투펀치’가 확실하다.
그러나 정찬헌도 이들에 뒤지지 않는 퍼포먼스를 보이는 중이다.
리그 최고 5선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결이 있다.
‘마음가짐’이다.
정찬헌은 “FA 계약을 마친 후 ‘후회 없이 하자’는 생각만 했다.
‘15년 고생했으니 남은 계약 기간 잘 마무리해 보라’는 의미 같았다.
다음에 또 FA 계약을 한다는 보장도 없다.
나는 그냥 잘 마무리하고, 느꼈던 것들, 해왔던 것들 다시 잘하자는 생각이다”고 설명했다.
또한 “마음이 편해졌다.
시야도 넓어졌다.
전에는 쫓기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야구를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여기까지인가’ 싶으면 내가 은퇴를 선택할 수도 있다.
FA 미아로 끝났다면 아쉬움이 많이 남았을 것 같다.
기회가 왔다.
매 경기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나간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정찬헌은 “내가 구위형 투수는 아니지 않나. 구속도 안 나오고, 구위도 압도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내가 싸울 수 있는 무기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던지고 있다.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며 “내가 인생에 파도가 좀 많다”고 웃었다.
투심의 평균 구속이 시속 130㎞ 수준이다.
21일 삼성전에서도 가장 빠른 공이 시속 138㎞였다.
대신 제구가 된다.
존 안팎을 활용할 수 있다.
슬라이더-커브-포크볼까지 변화구도 다양하고, 이쪽도 제구가 된다.
가진 무기가 많으니 공격적으로 들어갈 수 있다.
스피드가 전부는 아니다.
지난 2008년 LG에 입단했으니 프로 16년차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팔꿈치, 허리 등에 수술을 받으면서 힘겨운 시간도 보냈다.
시속 150㎞의 강속구를 뿌리는 투수였지만, 부상으로 인해 기교파로 ‘강제 변신’을 해야 했다.
특히 허리는 최근 몇 년간 정찬헌을 괴롭히는 부위다.
그러나 올시즌은 문제없이 로테이션을 소화하고 있다.
홍원기 감독의 믿음도 확고하다.
개인 승리가 부족한 것은 아쉽지만, 정찬헌은 개의치 않는다.
“팀이 이기면 된다.
잘 던진 것에 만족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팀이 먼저다.
“중위권으로 올라가는 과정이다.
매 경기 내가 원하는 대로 던지면 좋겠지만, 안 될 때도 있다.
좋은 날은 더 집중하고, 안 좋은 날은 덜 맞으려 노력해야 한다.
팀에 보탬이 돼야 한다”며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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