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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빈 동지>, 로자 프린스 지음, 홍지수 옮김, 책담, 2016
2015년 9월, 그전 두 차례의 총선에서 연패한 후 방향을 잃고 표류하던 영국 노동당은 혁명적인 변화의 계기를 맞았다. 급진 좌파 성향의 ‘아웃사이더’ 정치인 제레미 코빈이 당내 주류 중도파, 우파 후보들을 누르고 59%라는 압도적 득표로 신임 노동당 당수 경선에서 승리한 것이다. 토니 블레어와 앤서니 기든스가 주창한 ‘제3의 길’ 노선을 내세운 신노동당(New Labour Party)은 감세, 규제 완화,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의 어젠다를 받아들여 13년간 집권할 수 있었으나,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민심의 이반으로 2010, 2015년 총선에서 참패했다. 이에 그동안 당수 경선에 후보조차 낼수 없었던 소수파에 머물렀던 노동당 좌파는 긴축 정책 폐기, ‘민중을 위한 양적완화’를 슬로건으로 하며 제레미 코빈을 당수 후보로 내세웠고, 코빈은 평당원과 일반 지지자들 사이에 엄청난 호응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32년간 봉직한 8선의 하원의원이지만 한 번도 당직, 각료를 맡지 않았고, 누구도 그가 당수가 되리라 예상치 못했던 아웃사이더 정치인이 노동당의 새 리더로서 당의 노선과 역사의 흐름을 바꾸게 됐다.
영국 언론인 로자 프린스가 저술한 ‘코빈 동지’는 코빈의 삶과 정치 역정을 자세히 소개하는 평전이다. 코빈 본인은 취재에 일절 응하지 않고 책이 출간되기를 바라지도 않았으나, 저자는 사생활을 포함한 정치인의 삶도 정치 행위의 일부로서 유권자들이 그 정치인을 판단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 코빈의 가족, 친구, 동료 정치인, 비판자들까지 다양한 이들을 인터뷰하여 구성한 이 책은 가독성 높은 쉬운 문체로 그가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원동력을 소개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코빈은 훌륭한 인격을 갖추고 오랜 기간 원칙과 일관성 있는 정치 역정을 걸어온 ‘준비된 정치인’이었다. 그는 ‘깍듯이 예의를 지키고 매우 친절하고 지역구 구민들에게 헌신적’(p.132)이며, ‘오만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누구에게도 기꺼이 말을 걸고, 누구든 설득하려 하며 어떤 모임에도 빠짐없이 참석했다’(p.155)
또한 그가 자신의 사상, 철학, 원칙에 충실한 정치인이라는 점은 다른 계파의 정치인, 비판자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자녀를 우수하고 비싼 상급 학교에 보내려는 부인의 선택이 지역구민에 대한 기만이라며 끝까지 거부하다 이혼에 이른 일화, 신자유주의와 민영화를 추구하는 블레어 정부 및 신노동당의 당론에 400회 이상 반대표를 던진 기록을 접한 독자들은 코빈을 시류와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정치인으로 인식하게 된다. 특히 많은 분량이 할애된 당수 경선에서는 오락가락하는 포지션으로 신뢰를 잃은 경쟁 후보들과 대비되어, 코빈이 왜 대중의 전폭적 지지를 받게 됐는지 그 이유를 설득력 있게 묘사한다.
결국 코빈은 평당원, 평노조원, 그리고 3파운드를 지불하고 경선에 투표권을 행사한 일반 지지자들 모두의 압도적인 지지로 노동당의 새로운 선장이 된다. 기성 정치인 대신 기층 민중들이 더 큰 목소리를 내게 됐음을 알리는 유권자 혁명이었다.
이 책은 코빈의 장점만 소개하지는 않는다. 그의 좌파 이념으로는 선거에서 이길수 없다고 생각하는 당내 주류 중도파, 우파는 처음부터 코빈에게 비협조적이었다. 그러나 블레어 정부 집권기 수많은 반대표를 행사한 코빈도 이들에게 복종을 요구할 만한 권위는 없었다.(p.211) 책에서도 운동가, 조직가로서의 면모는 자세히 부각되지만 노련한 현실 정치가, 지도자로서 코빈의 모습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당수 선출 이후 일어난 일들을 통해 왜 독자들이 코빈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는지, 이 책의 진가를 알수 있다. 전세계에 충격을 준 브렉시트 국민투표 과정에서 리더십 부재로 비판받은 코빈은 급기야 중앙당 의원들로부터 불신임 투표가 통과되는 굴욕을 겪었다. 코빈이 이끄는 노동당도 과거의 무기력한 모습을 떨쳐내지 못했고, 영국 국민들은 그의 사상과 노선에 반대하는 듯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코빈은 다시 한번 힘을 발휘한다. 다시 열린 노동당 당수 경선에서 처음보다 늘어난 61%의 지지를 획득한 코빈은 2017년 6월의 조기 총선에서 패배가 유력한 상황에서도 신노동당 노선을 버리고 진보적인 공약, 강령을 내세우고 헌신적인 선거운동으로 오히려 33석을 늘리는 대선전을 하였다. 장렬하게 전사하기 직전, 코빈은 민중들의 굳건한 지지로 재기하여 당수로서, 영국을 책임질 예비 지도자로서 입지를 굳혔다.
이 책에는 ‘민중을 위한 양적 완화’ 등 코빈의 구체적인 정책, 공약이 소개되지 않아 독자들이 아쉬워할 수 있다. 그의 좌파 이념이 갖는 현실적 당위성도 언급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학술 서적이 아니며, 우리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정치인의 상을 소개하는 것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코빈은 성실하고 진지한 인격을 바탕으로 정치 스승 토니 벤으로부터 ‘신념을 고수하면 결국 국보로 인정받는다’(p.102)는 교훈을 배워 전 생애를 통해 실천했다. 저자 로자 프린스의 문체, 특히 흥미진진한 현장감으로 잘 묘사한 당수 경선을 통해 이런 코빈을 매력이 잘 전달된다. 미국, 유럽에서 중도와 좌파의 이념이 침체 위기에 직면했을 때 홀로 선전하는 제레미 코빈의 영국 노동당은 한국을 비롯한 세계의 유권자들에게 또 하나의 매력적인 지향점을 제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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