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sports-g.com/2013/05/20/%EA%B9%80%EC%B0%BD%EB%A3%A1-%EC%9E%A5%EA%B5%B0%EC%9D%98-%EC%86%90%EA%B8%B0%EC%A0%95-%EC%B2%B4%ED%8F%AC%EC%99%80-%EC%B2%AB-%EC%95%BC%EA%B0%84%EA%B2%BD%EA%B8%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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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0월이었다. 

대구에서 열린 제9회 전국축구대회 준결승전에서 육군특무부대와 조선방직이 맞붙었다. 

특무부대에는 코치 겸 선수 민병대를 비롯해 장경환, 박일갑, 김지성, 최정민, 한창화, 강찬기, 박재승 등 국가대표 팀에 속한 초호화 선수들이 즐비했다. 

조선방직 역시 홍덕영을 비롯해 이의주, 박대종, 심완섭 등 준수한 멤버를 구축하고 있었다.

 조선방직 대구지점 간부로 있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도 경기장을 찾을 만큼 중요한 경기였다. 

하지만 선수뿐 아니라 이 경기에서는 반드시 언급되어야 할 또 다른 인물이 있었다.

 바로 특무부대장인 김창룡 장군이었다. 김창룡 장군의 축구 사랑은 도를 넘어섰다.

사실상 결승전이나 다름없는 이 경기는 팽팽했다.

 전반전을 0-0으로 마친 뒤 후반에 돌입했고 5분 만에 특무부대가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본부석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김창룡 장군은 이렇게 외쳤다.

 “반드시 넣어라.” 하지만 키커로 나선 박일갑이 날린 슈팅은 골대를 한참 빗겨나고 말았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을 가진 김창룡 장군이 지켜보고 있다는 부담감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결국 특무부대는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도 득점에 실패해 90분 경기를 0-0으로 마쳐야 했고 연장전에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연장전이 끝나자 배종호 주심이 말했다.

 “대회 규정에 따라 추첨으로 승자를 뽑겠습니다.”

김창룡 장군이 고함을 쳤다. “추첨? 그딴 게 어디 있어? 승부가 날 때까지 해.” 규정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그는 말 한마디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었던 군부의 힘을 축구장에서도 써먹고 있었다.

 김창룡 장군이 화를 내자 특무부대 요원들이 경기장 주변을 포위했다. 

김창룡 장군의 말 한 마디만 떨어지면 누구든 수갑을 채워 끌고 갈 분위기였다. 

난감해진 대회 조직위원회에서 간곡하게 부탁했다. “규정입니다. 따라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연신 대회조직위원회에서 고개를 숙였다. 

여차하면 심판을 빼돌리기 위해 계엄사령부 김근배 중령이 지프를 운동장 한 켠에 대기시켜 놓기도 했다. 

다들 김창룡 장군 눈치만 보고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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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김창룡 장군이 한 발 물러서 추첨을 허락했다. 

특무부대 주장 장경환과 조선방직 주장 이의주가 나란히 섰다. 

“자, 종이를 하나씩 뽑으세요.” 배종호 주심이 김창룡 장군의 눈치를 살피며 양 팀 주장에게 말했다. 특무부대 장경환이 먼저 당당히 종이 하나를 집어 들었고 조선방직 이의주는 남은 종이를 들고 응원석 쪽으로 도망치듯 돌아갔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관중은 ‘그냥 특무부대가 승리를 뽑는 게 아무 탈이 나지 않는 일’이라면서 두 손을 모았다. 

그런데 조선방직 이의주가 편 종이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승(勝)’ 조선방직이 추첨 끝에 특무부대를 꺾고 결승에 진출한 것이다.

순간적으로 조선방직 응원단과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몰려 나왔다. 

“이겼다.” 김창룡 장군의 횡포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조선방직에서는 통쾌한 승리를 자축했다. 

꽹과리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화가 잔뜩 난 김창룡 장군이 소리를 질렀다. “저 놈들 다 잡아 넣어.” 김창룡 장군은 직접 지프에 올라 그라운드 안으로 지프를 몰았다. 

특무부대 요원들이 공포탄을 쏘며 조선방직 응원단과 선수들 체포에 나섰다. 

순식간에 경기장은 아수라장이 됐고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는 사람들을 특무부대 요원들이 제압하기 시작했다.

운동장 바로 옆 미군부대에서는 공포탄과 괴성을 듣고 출동을 준비하는 비상까지 걸었다. 

김창룡 장군의 이성을 상실한 행동을 제지할 수 있는 건 ‘올림픽 영웅’ 손기정 뿐이었다. 

손기정은 그라운드로 달려가 자제를 부탁했다. 하지만 김창룡 장군은 이런 손기정의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감히 누가 지금 나한테 덤벼? 당장 저 놈 끌고 가.” 손기정을 알아보지 못한 김창룡 장군은 손기정까지 수갑을 채워 끌고 가도록 지시했다. 

대한축구협회 임원들은 몰래 도망쳐 숙소를 옮기고 숨어 버렸고 배종호 주심은 대구에서 혼자 행선지도 모르는 열차에 올라 진해까지 도망을 쳤다. 

결국 이 대회는 유일하게 우승팀을 가리지 못한 대회로 아직까지 역사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