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망이값을 받아야겠는데.”
프로야구 NC 외야수 이명기(35)는 지난 5일 밤늦게 갑자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발신자는 SSG 베테랑 외야수 김강민이었다.
온종일 아들과 시간을 보낸 덕에 녹초가 됐던 이명기는 잠들기 직전에 휴대폰을 들었다.
대화는 간단했다.
김강민이 한국시리즈에 맞춰 주문한 배트는 배송 지연됐고, 기존 배트는 모두 부러졌다.
마침 이명기가 같은 브랜드의 배트를 사용했다.
김강민은 “마산에 있냐. 그 배트 좀 빌려줘”라고 물었고, 이명기는 “인천 집입니다.
바로 드릴게요”라고 했다.
이명기는 정규시즌을 마친 뒤 바로 인천 자택에 머물렀다.
자유계약(FA) 자격을 얻어 창원에 잔류할 이유가 없었다.
시즌 내내 떨어져 있던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올해 부진했던 만큼 트레이닝센터에서 훈련하기 위해 모든 장비를 챙겨왔다.
다행스럽게도 김강민이 찾는 방망이들이 가방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이튿날 오전 이명기는 잠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거실에 배트를 깔았고, 사포와 가위를 집어 들었다.
배트에 묻은 끈끈이를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끈끈이 작업을 모두 마친 뒤에는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배트를 세워 건조작업까지 마쳤다.
이명기는 “그래도 선배에게 드리는 건데 더러운 상태로 줄 수는 없지 않나”라고 웃었다.
한국시리즈 5차전이 열린 7일 낮. 김강민이 집 앞에 도착했다.
이명기는 배트 꾸러미를 들고 나갔다.
카페모카 한 잔을 건네받은 이명기는 방망이를 모두 김강민에게 전했다.
이명기는 “SK 시절 주전으로 올라서기 전부터 강민이형에게 야구를 많이 배웠다.
수비부터 경기 흐름을 읽는 일, 베테랑으로서 해야 하는 일 등 받은 게 정말 많았다”며 “고마운 사람에게 은혜를 갚는 게 당연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날 저녁, 김강민이 그 배트를 들고 타석에 섰을 때 이명기는 고교 동창들과 TV 생중계를 시청하고 있었다.
김강민의 타구가 담장 너머에 떨어지는 순간에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명기는 “배트를 건네줄 때 평소처럼 장난을 걸고 싶기도 했는데 어려웠다.
그때까지 시리즈 전적이 2승2패였던 만큼 형이 엄청 진지하더라”며 “꼭 일을 냈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엄청난 결과가 나왔다.
한국시리즈를 마치면 강민이형에게 방망이값을 받아야 할 것 같다”고 웃었다.
한국시리즈를 마친 뒤 이뤄질 둘의 만남은 이미 이야깃거리가 충분하다.
사진=NC다이노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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