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내 언론에서 아이폰 SE3가 작게 팔렸다, 망했다. 그런 이야기가 꽤 많이 나왔습니다. 내용을 읽어보니 대강 아이폰 SE2에 비해서 판매량이 80%정도 나왔으니까 망한거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아이폰 SE3 판매량이 전작의 80%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망했다- 라고 하는데, 2020년 3분기를 기준으로 아이폰 SE2는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스마트폰입니다. 같은 기간 삼성에서 가장 많이 판매한 스마트폰인 갤럭시 A21s의 판매고 1천 만 대보다 100만 대나 더 많이 팔았습니다. 그 수치의 80%라고 하면, 그게 정말 망한 수치일까요? 게다가 삼성 1등 스마트폰의 가격은 179달러입니다. 아이폰 SE는 399달러부터 시작하고요.

그러니 삼성을 최고의 광고주로 삼고 있는 한국 언론들은 아이폰 SE3가 얼마나 덜 팔리고 있는지를 주목할 게 아니라, 어떻게 애플은 최첨단 기술 경쟁의 무대인 스마트폰 시장에서 무려 5년 전에 써먹었던 구형 폼팩터를 가지고도 이렇게 잘 팔아먹고 있는지를 분석했어야 합니다. 그것도 삼성의 1등 폰보다 2배나 비싼 가격으로 말이죠.

2. 

왜 아이폰 SE 판매량는 저렇게 많이 팔릴까요? 제가 생각하는 이유는 '아이폰의 장점'이 상당 부분 녹아있다는 겁니다. 그럼 아이폰의 장점은 뭘까요? 그야 첫 번째는 성능이죠. 갤럭시 S22보다 5년 전에 나온 아이폰 8의 성능이 더 좋게 나오는 웃픈 진실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아이폰 SE는 400불도 안되는 가격에 삼성의 1200불 스마트폰보다 최소한 두 배는 더 좋은 성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성능? 나는 게임 안하니까 괜찮아. 그냥 숫자놀음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iOS의 미려한 움직임과 여전히 업계 최고 수준의 카메라 성능은 모두 AP의 파워에서 나옵니다. 갤럭시 S에는 히트파이프를 잔뜩 넣어야 그나마 방열이 되지만, 아이폰에는 그런 거추장스러운 건 죄다 빼버리고 배터리 용량을 줄여버리는 것도 모두 AP의 '전력 대비 성능'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입니다.

AP는 아무리 이야기해봐야 삼성은 애플 칩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것이 아이폰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소비자는 갤럭시를 많이 찾고 있죠. 그건 갤럭시s도 나름의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일까요? 여러가지가 있지만, 전 디스플레이가 가장 크다고 봅니다.

아이폰 SE가 압도적 브랜드 이미지와 성능에도 불구하고 A50시리즈가 제법 경쟁을 할 수 있었던 건, 같은 가격으로 더 좋은 디스플레이와 배터리를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의 사용자 경험에는 성능도 영향을 끼치지만, 좋은 디스플레이만큼 큰 영향을 끼치진 않습니다. 게임을 안하는 사람도, 심지어 카톡과 문자메시지만 보는 사람도 좋은 디스플레이에서 나오는 경험은 누구나 체감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주사율이 120Hz냐의 문제가 아니라 밝기, HDR, 색 재현율, 가독성, 심지어 유리의 마감까지도 영향을 끼치죠.

3.

이제 갤럭시 S, 가장 최근인 갤럭시 S22 이야기를 해봅시다. 사용하시는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S22는 단언컨대 갤럭시 S 시리즈 역사상 최악의 스마트폰입니다. 디자인 호불호가 커도 너무 컸던 S5, 변한게 없다는 소리를 들었던 S9도 S22의 아성에 미치진 못합니다. 원래 이 자리는 S21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설마 더한게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갤럭시 S22의 모든 것이 졸작인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전기를 많이 먹고 발열을 많이 내는 편인데도 배터리 성능은 생각보다 준수하고, 특히 S22 플러스와 울트라 모델의 디스플레이(일반형은 전작과 동일한 M10이므로 제외)는 왜 애플에게 삼성이 여전히 없으면 안 될 소중한 파트너인지를 다시 한 번 증명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좋습니다.

갤럭시 S22의 단점이라고 지적되는 것들은 결국 AP의 문제입니다. 어떤 분들은 S22는 원가 절감이 문제라고 말씀하시는데, 히트파이프는 열을 기기 외부로 옮겨주는 소재이지 열을 없애주는 소재가 아닙니다. AP에서 발생한 열은 주로 전면 디스플레이를 통해서 방출되는데, 히트파이프를 많이 넣었으면 디스플레이가 너무 뜨거워져서 사용하기도 괴롭고 번인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그러니 디스플레이가 넓어 그만큼 방출된 열을 잘 식힐 수 있는 울트라나 플러스 모델은 상대적으로 히트파이프를 넓게 썼고, 표면적이 작은 일반형은 히트파이프를 작게 쓸 수 밖에 없던 겁니다. 만약 히트파이프를 아끼지 않고 많이 썼다면 너무 뜨거워져서 도저히 못써먹을 정도가 됐을겁니다. 실제로 SD 8G1을 탑재한 중국산 스마트폰들이 무리하게 그런 짓을 하다가 기기 컨디션 관리를 못하는 기기가 많죠.

4. 

삼성이 갤럭시 S20 FE를 처음 출시할 때 얘네가 무슨 생각으로 기기를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비슷한 시기에 나와서 역대급 판매량을 찍었던 아이폰 SE의 전략을 배껴보려는 게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아이폰 SE와 갤럭시 S FE는 출시 목적은 비슷할 지언정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아이폰 SE는 아이폰의 가장 큰 장점인 '성능'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램 용량이 약간 작긴 하지만, 해상도가 낮은 덕분에 아이폰 기본형 모델보다 더 좋게 나오는 경우도 간혹 있을 정도로 좋습니다. 반면 갤럭시 S20 FE 또는 S21 FE는 갤럭시 S의 장점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갤럭시 S 시리즈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좋은 디스플레이, 넉넉(했던) 램 용량, 좋은 기기 마감, 플래그쉽에 어울리는 디자인 등. 이 모든 것들이 너프된 상태로 출시되었습니다. 많은 걸 포기한 FE시리즈가 모체 모델과 같은 건 AP 하나밖에 없는데, 애당초 성능은 애플과 경쟁조차 되지 않는 영역입니다.

아이폰 SE도 갤럭시 FE도 중가형 스마트폰 시장의 수요를 위로 끌고와 좀 더 높은 가격을 받고 판매하려는게 목적이었다고 봅니다. 그럼 핵심이 되는 장점은 포기하지 말고 출시했었어야 합니다.

5. 

갤럭시 S22를 만져보면서 드는 생각은, 참 아깝고 아쉽다는 겁니다.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팬텀 디자인은 큰 차이가 나긴 해도 여전히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잘나가는 메이커의 플래그쉽 답습니다. 개인적으로 S21에 나온 팬텀 바이올렛이 S22에도 나오길 바랐는데 이게 안된 건 좀 아쉽긴 하지만요. 스피커도 진동 센서도 좀 아쉬운 게 있긴 한데, 이정도면 그래도 리즈너블합니다. 

갤럭시 S22 FE가 나올 지 안나올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앞으로 매년 팬 에디션 모델을 출시하겠다'는 최고 경영진의 공언은 없던 걸로 하고 안나오는 쪽으로 가지 않을까 싶은데, 뭐 아무튼 희망회로를 한 번 돌려보겠습니다.

결국 S22의 문제는 AP였습니다. 그런데 삼성이 만드는 부품들 중에서 AP는 화룡드래곤 시절의 1년 정도만 제외하면 삼성이 가장 못하는 영역이었습니다. 애당초 갤럭시는 성능으로 아이폰과 싸운 게 아니었으니, AP에 발목을 잡힐 필요도 없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과감하게 갤럭시S FE는 AP를 플래그쉽과 동급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애플이나 할 수 있었던 욕심은 버리고, 대신에 검증된 중급형 AP인 SD778이나 꼭 자사 제품이 필요하다면 엑시노스 1280을.. 엑시노스 라인업이 중급기도 참 많이 나빠졌네요. 5나노 공정 1280조차 TSMC 6나노 칩셋을 못 이겨버리고. 아무튼, 괜히 AP는 맞추려고 다른 부분 깎지 말고 차라리 AP를 포기해서 단가를 낮추고 대신에 삼성의 장점이자 여전히 삼성이 잘 할 수 있는 영역인 디스플레이같은 건 플래그쉽에 걸맞게 유지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하다 보니 딱 생각 나는 모델이 있네요. A82, 한국에선 갤럭시 퀀텀2라고 부르죠. 전 2020년 이후로 삼성이 만든 스마트폰 중에서 가장 잘 나온 모델이 A82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잘 만든 모델, 좋은 선례를 만들었으면 이런 방식으로 S22 FE도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애플은 애플이 잘하는 걸로 SE를 만들고, 삼성은 삼성이 잘하는 걸로 FE를 만들어 보라는거죠. S22에서 AP 문제를 해결한 모델, 꽤 설레는 타겟팅이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