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백종민 기자] 반도체 위탁생산, 즉 파운드리 사업 확대 경쟁이 치열하다.
파운드리 승자를 판정하는 것은 대형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기선은 이번에도 업계 1위 TSMC가 잡았다.
최근 열린 TSMC의 미국 애리조나 공장 장비 반입식에 참석한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TSMC 공장에서 생산된 반도체를 사용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시발점이다.
파운드리 기업에 애플을 고객으로 확보한다는 것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사안이다.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에어팟 등 애플 제품에 사용되는 칩을 생산한다면 막대한 매출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 AMD, 퀄컴도 파운드리 사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대형 고객사들이다.
이들 기업이 TSMC에 제품 생산을 맡기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TSMC가 절대적인 기술적 우위에 있어서일까. 기업 간의 역학관계도 배제할 수 없다.
대표적인 예가 과거 애플이 삼성전자 대신 TSMC로 협력선을 변경한 것이다.
애플은 아이폰 초기 삼성전자에 아이폰의 심장 A 칩 생산을 맡겼다.
그러나 애플과 삼성의 스마트폰 경쟁이 치열해지고 특허 공방까지 벌어지자 애플은 TSMC로 협력선을 변경해 버렸다.
정보 유출 가능성이 있는 만큼 경쟁사에 핵심 반도체 생산을 맡길 수 없기 때문이었다.
TSMC가 자체 팹을 가지고 있지 않은 팹리스(fabless) 반도체 회사 대부분을 고객으로 확보한 것은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경영 방침의 결과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삼성이 파운드리 사업부를 분사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이해충돌 가능성을 배제하면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삼성은 갤럭시 스마트폰에 사용하는 엑시노스 칩을 설계해 직접 생산한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분사설은 2000년대 초 이후 반도체 업황 악화 시마다 등장해온 단골손님이다.
삼성증권도 지난 7월 ‘지정학 패러다임 변화와 산업’ 보고서를 통해 파운드리 분사 필요성을 거론했다.
인텔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인텔 역시 애플과 특허 공방을 벌이다가 통신용 칩 사업을 아예 애플에 매각한 바 있다.
애플은 맥 컴퓨터에 사용하던 인텔의 컴퓨터용 CPU를 자체 개발한 M 시리즈로 변경하기도 했다.
애플이 인텔의 사업영역을 본격적으로 침투하는 상황에서 인텔에 파운드리를 맡길 경우 자사의 기술력과 향후 방향성을 고스란히 노출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때문에 애플이 자국 내에서 파운드리 라인을 세우고 있는 인텔 대신 기존 협력선인 TSMC의 손을 잡은 것으로 볼 수 있다.
AMD도 수십 년째 경쟁해 온 인텔에 CPU 생산을 맡길 것으로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업계에서는 인텔 파운드리 사업을 책임지던 임원 란디르 타쿠르가 내년 1분기 중 회사를 떠나기로 한 결정도 눈여겨보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타쿠르의 사임으로 팻 갤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의 계획이 혼란을 겪고 있다고 평했다.
CNBC방송도 인텔이 TSMC와 비교해 기술 수준이 뒤처졌다면서 반도체 기업들이 인텔의 파운드리를 선택하는 데 부정적이라고 진단했다.
삼성에 유리한 조건도 있다.
대부분의 반도체 기업들은 복수 벤더를 원한다.
한 기업에 100% 의존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다.
TSMC 외에 제2의 협력선을 마련한다면 새로 사업에 뛰어든 인텔과 기존 파운드리 업계 2위 삼성 중 선택을 해야 한다.
최근 퀄컴이 삼성을 배제했던 전략을 뒤집고 ‘스냅드래곤 8세대 제네레이션2’ AP 생산을 TSMC와 삼성에 동시에 맡길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는 삼성전자가 내년에 출시할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S23’에 자체 개발 AP인 엑시노스 대신 퀄컴의 AP를 전량 사용할 것이라는 예상과도 맞닿아 있다는 평가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에 따르면 TSMC는 미국에서만 연간 60만장의 웨이퍼를 처리할 예정이다.
이는 미국 내 수요를 모두 충당할 수 있는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TSMC만으로도 미국 내 수요를 충당할 수 있을 정도라면 삼성전자와 인텔은 치열한 수주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백종민 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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