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WBC 호주전 선발 낙점
다양한 구종·정교한 제구 등 갖춰
배트 ‘스위트 스폿’ 회피에 탁월
낙폭 큰 체인지업 땅볼 유도 특화
생소한 사이드암 투구폼도 한몫
키스톤 콤비·박병호·최정 등 수비
마운드 뒤에서 아웃 처리 늘려야
이강철 “전력상 우리가 우위지만
강자와 싸운다는 자세로 임할 것”
야구에서 투수와 타자의 대결은 누가 서로의 타이밍을 뺏느냐에 달렸다.
투수의 패스트볼이 빠르면 빠를수록 더 좋은 이유는 그만큼 타자에게 스윙 여부를 고민할 시간을 더 적게 줘 타이밍을 뺏기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나서는 한국 대표팀이 8강 진출의 가장 큰 분수령이 될 9일 첫 경기 호주전 선발로 사이드암 고영표(32·KT)를 낙점했다는 것은 현대야구의 흐름에 반하는 일이라 할 만하다.
고영표는 대표팀에 차출된 15명의 투수 중 2022시즌 직구 평균 구속이 시속 136.2㎞로 가장 느린 선수다.
 | WBC 대표팀의 사이드암 투수 고영표가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리는 8강 진출의 분수령이 될 호주전 선발로 출격한다.
고영표가 지난 3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SSG 퓨처스팀과 연습경기에서 역투하는 모습. 연합뉴스 |
그럼에도 고영표가 선발로 낙점된 것은 호주 타자들이 사이드암 투구폼을 생소하게 느끼기 때문만은 아니다.
고영표는 빠른 공이 돋보이는 구위형 투수는 아니지만, 직구와 싱커,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 다양한 구종을 앞세워 배트의 ‘스위트 스폿’을 피하는 데 탁월한 재주를 갖고 있다.
특히 직구와 똑같은 폼으로 던져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 구종인 고영표의 체인지업 구종 가치는 22.3(출처 스탯티즈)로, KBO리그 체인지업 중 가장 높았다.
커브에 버금갈 정도로 낙폭이 큰 고영표의 체인지업은 상대 헛스윙 유도는 물론 땅볼 유도에 특화되어 있다.
고영표의 2022시즌 땅볼/뜬공 비율은 1.92로 규정 이닝을 채운 선발 요원 중 1위였다.
한국의 2023 WBC 본선 1라운드가 도쿄돔에서 열린다는 점 역시 ‘최고의 땅볼 선발’인 고영표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도쿄돔의 인조잔디는 고척돔보다도 훨씬 길고 푹신해 땅볼 타구 속도가 더 느려진다.
고영표가 땅볼을 유도하면 이 타구가 내야를 빠져나가기보다는 내야수들의 글러브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게다가 고영표가 지키는 마운드 뒤에는 2023 WBC 참가 20개국 중 가장 뛰어난 수비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되는 유격수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과 2루수 토미 현수 에드먼(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 키스톤 콤비를 이루고 있다.
박병호(KT)와 최정(SSG)이 지키는 코너 수비도 수준급이다.
고영표가 호주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어 땅볼을 유도하고, 이를 탄탄한 수비로 아웃 처리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한국의 승리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이번 WBC 본선 1라운드에서 선발 투수가 소화할 한계 투구 수는 65구다.
볼넷을 남발하는 투수는 4회도 채우기 쉽지 않은 투구 수다.
고영표는 2022시즌 삼진/볼넷 비율이 6.78로,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중 1위에 오를 만큼 정교한 제구를 자랑하는 투수다.
볼넷으로 쓸데없이 투구 수를 늘릴 걱정이 적다.
고영표가 65구로 최대 5이닝을 실점을 최소화하며 버텨주면 이후엔 그와는 유형이 다른 구위형 투수들을 불펜 투입해 호주 타자들을 압살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고영표는 2020 도쿄 올림픽의 일원으로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
미국과의 오프닝라운드 2차전에서 4.2이닝 4실점하며 패전투수가 되긴 했지만, 일본과의 준결승에 선발 등판해 5이닝 6피안타 7탈삼진 1볼넷 2실점으로 호투하며 자신이 국제용임을 증명한 바 있다.
고영표의 최근 컨디션도 좋다.
지난 3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SSG 2군과의 연습 경기에 선발 등판해 3이닝 동안 피안타 없이 볼넷 1개만 내주고 삼진은 4개를 솎아내며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이강철 감독도 호주전에서 총력전을 예고했다.
이 감독은 8일 낮 열린 공식기자회견에서 “우리 팀의 강점은 탄탄한 수비와 타격, 빠른 발을 가진 선수와 장타력이 좋은 선수들의 조화”라면서 “전력상 호주에 비해 우리가 우위지만, 강자와 싸운다는 생각으로 임하겠다.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각오를 밝혔다.
이어 “중간 투수 기용은 조금 바뀔 것 같다.
쓸 수 있는 카드가 2명 정도 더 나와서 투수를 더 많이 기용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과연 고영표가 호주전 선발 등판이라는 중책을 부담없이 잘 해낼 수 있을까. 고영표의 손 끝에서 나오는 체인지업에 WBC 대표팀의 14년 만의 4강 이상 진출이라는 목표가 달려 있다.
도쿄=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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