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삼성 제국을 발견하다
선글라스를 낀 남자는 나를 책상이 놓인 방으로 안내했다.
그는 책상 뒤로 걸어가더니 나에게 서류 몇 장을 내밀었다.
"이것들을 좀 작성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서류들을 대강 살펴보았다.
고향 행성, 지구 행성에서의 체류 목적, 나이 등을 묻고 있었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순식간에 서류 작성을 끝내버렸다.
남자는 굉장히 놀란 눈치였다.
"이런 경험이 한 두번이 아닌 모양이죠?"
"예, 많이 해봤습니다."
나는 말하면서 자부심을 느꼈다.
'토란' 행성의 사람들에게 이런 일은 익숙한 것이었다.
우리 행성 사람들은 발달한 기술로 이미 몇차례 타행성을 방문했었다.
대부분 기술 교류와 평화 협정을 위한 것이었다.
나는 이 '지구'라는 행성과도 사이 좋게 지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로 체계적인 입국 절차가 마련된 행성은 극소수였다.
분명 발달된 기술을 가졌을 테고 타행성과 많은 교류 경험을 가지고 있을 터였다.
그럴 것이었다.
분명 그럴 것이었다.
순간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행성은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원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상태였고
추락하면서 시야에 들어온 우주 정거장과 위성들은 조잡한 쇳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의 과학 수준에서 본다면 말이다.
그런데 이런 미개한 기술을 가진 행성이, 어떻게 이런 체계적인 외계인 입국 절차를 갖고 있다는 말인가?
나는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아주 오래 전에 우리 종족은 은하계 외곽에 위치한 행성을 발견하고는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막 개발된 우주선을 타고 행성으로 날아가는 도중에 본 위성들은 정말 조잡했기 때문에,
우리는 문화 교류만 나눌 생각으로 우주선에서 내렸다.
그런데 그 순간 사방을 둘러싸는 소리가 들렸다.
외계인들이었다.
그들은 고도의 기술로 만들어진 총을 우리에게 겨누고 있었고
우리를 협박하면서 그들 종족의 번영을 이룩하도록 만들었다.
그들은 일부러 싸구려 위성을 우주에 띄어놓았던 것이다.
행성을 발견하고 날아오는 다른 외계 종족의 기술을 훔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우주선까지 빼앗겼다.
하지만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뒤늦게 온 전투함에 의해 구출될 수 있었다.
나는 천천히, 그러나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노력하며 그에게서 떨어졌다.
남자는 서류를 읽으면서 옆에 있던 직원에게 귓속말을 했다.
그리고는 품 속에 손을 집어넣더니 뭔가를 꺼내려는 몸짓을 취했다.
나는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도망갈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들어온 문은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로 메워져 있었다.
내 온 몸은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
나는 이제 악독한 고문을 당하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내 행성의 기술들을 토해내게 될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남자는 해맑게 웃으며 선글라스를 벗어 품 속에서 꺼낸 안경집에 넣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가실까요?"
"뭐라구요?"
나는 반사적으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에너지원을 공급해 드릴 것입니다. 지구 방문이 즐거우셨기를 바랍니다."
"아, 아. 네 갑시다."
나는 식은땀을 닦으며 남자를 따라갔다.
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착각이었다니.
동시에 이 남자에 대한 호감이 무럭무럭 솟아났다.
나는 종이 하나에 공식 하나를 적어 그의 주머니에 몰래 넣었다.
이 공식을 이해한다면, 'SAMSUNG'이라는 회사는 지구에서 우뚝 서게 될 것임에 틀림 없었다.
남자는 나를 이끌고 어딘가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나는 볼품없는 돌 조각을 보았다.
"이게 뭐죠?"
"에너지원입니다. 잘 아실 텐데요?"
"제가 말한 건 이런 돌 덩어리가 아니라 인공위성이었습니다. 저를 놀리는 건가요?"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풍요롭고 그윽한 '토란' 행성의, 과학자를 기만할 수 있겠습니까. 이건 진짜배기입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세요. 틀림 없을 것입니다."
나는 이 남자가 어떻게 '토란' 행성의 별칭을 알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우선 가까이 가서 돌 덩어리를 살펴보았다.
"아니, 이것은..."
"어떠십니까?"
"어떻게 이것을 가지고 있을 수가 있죠? 누구 것을 훔쳐온 것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아니에요. 이래봐도 우리 행성은 자원이 아예 없는 게 아니에요. 훔쳐오다니, 어떻게 그런 짓을!"
남자는 정색하면서 말했다.
나는 남자를 경계하며, 이 돌을 긁어 부스러기 몇 점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거 가지고 되겠습니까? 저희가 돌을 운반해 드리겠습니다. 우주선의 위치를 말씀해주십시오."
"괜찮습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합니다. 우리 행성의 기술을 너무 무시하는군요."
"아 그렇습니까? 실례가 되었다면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나는 간단히 인사를 하고 우주선으로 돌아왔다.
내 일행은 내가 가져온 돌을 보면서 놀라는 눈치였다.
우주선은 금방 대화의 장이 열릴 것 같았지만,
한시라도 이 행성을 떠나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간단한 작업을 끝내고 우주선을 기동했다.
제한시간 내에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면 전투함이 와서 이곳을 쑥대밭으로 만들 것이었다.
우주선은 서서히 떠올랐다.
나는 문득 연료통 주변에 작은 띠가 떨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돌을 넣으면서 떨어진 것이 분명했다.
약간 훼손된 작은 띠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삼성 제국 - ......의 안녕을 기원합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었다.
나는 내 동료에게 물어보았다.
"너 혹시 삼성 제국이라고 들어봤어?"
"삼성 제국이라고? 잠깐만, 검색해볼게."
동료는 모니터에 가상 키보드를 띄워 '삼성 제국'이라고 입력했다.
그 결과를 컴퓨터가 음성으로 말해주자, 우리는 모두 굳어버렸다.
4장에서 계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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