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이곳을 벗어나 살아 갈수 없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정직하다. 거짓말이 무엇인지 모른다.
지름 15km의 작은 성체 안에는 약 5만 명의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
거짓말이라는 것은 모르는 순수한 사람들만 살아남아 있다.
이 외벽을 벗어나면 거짓말, 절도, 강도, 살인, 강간 각종 범죄가 창궐한다.
하지만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이 따위 딱딱한 돌 벽들 은 필요하지 않았다.
5년 전....
새벽을 알리는 아침 버스가 한가로운 도로가 위를 씽씽 달리고 있을 때
인도는 밤사이 싸인 먼지를 닦아내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그리고 동쪽 먼 산 뒤로는 벌것게 달구어진 쇳덩이를 보는것과 같은 태양이 힘겹게 올라오고 있었다.
이 광경, 이 익숙한 광경은 이제는 볼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익숙했던 광경이 더 이상 부럽지 않다. 돌아가고 싶지도, 그럴 생각조차 없다.
그날에도 나는 바쁜 일상을 쫓아다녔다. 돈이라는 물질을 쫓아 다녔다.
세상 모든 사람이 돈이라는 물건에 환장하는 그런 세상이었다.
사람보다 돈이 위에 있었다. 돈이라면 무엇이든 할수 있었다. 사랑, 사람, 사물 모든 것들을 살수 있었다. 나는 그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말로 잘사는 사람 이였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샀다.
나는 옷장에 있는 옷을 꺼내어 내 고통스러운, 고통스러워 하는 몸에 걸쳤다.
내가 사랑하던 사람이, 아니 나만 사랑하던 사람이 나에게 일 열심히 하라며 주스를 한잔 건내 주었다. 나는 당연하듯이 바짓주머니 에 있던 가죽지갑을 열어 푸른종이 몇장을, 나만 사랑하던 사람에게 건내주었다. 마치 물건을 사는것처럼....
그러자 그녀는 기뻐했다. 나 역시도 가짜 사랑, 거짓 사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뻐했다.
그리고 차가운 철문을 열고 차가운 자동차에 나 홀로 올라 차가운 공기가 가득 차있는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다.
차의 시동을 걸자 내비게이션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목적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태평로, 삼성 본관”
무미건조한 내비게이션과의 짤막한 대화를 마친후 자동차는 시끄러운 엔진음을 내며 앞으로 굴러갔다.
굴러가는 동안에도 도로 위는 시끄러웠다. 넓디 넓은 10차선 도로에는 어마어마한 량의 차들이 도로를 가득 매꾸고 있었다. 아직 아침의 찬란한 햇살이 도로위를 덮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서울의 심장이자 중심이라고 할수 있는 종로, 그중 각종 정부청사와 주요 기업들의 본사들이 몰려있는 세종로도 선거철의 유난스러운 유세현장을, 그들의 위선 가득찬 목소리를 피할 겨를은 없는 것 같다.
4.11 총선의 후보자들은 제각기의 목소리를 질러대며 자신들에게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저들의 거짓말이 싫다. 다시 생각해도 저들의 거짓말은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저질이었고 가장 저급했었다. 나는 아직도 저들을 혐오한다.
내가 타고 있는 자동차는 검은 도로위로 검은 매연을 뿜으며 마침내 내가 일하는 직장으로 데려다 주었다. 자동차에서 내리자 빌딩 사이로 지나다니는 차가운 바람이 내 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니, 하늘에는 밝고 뜨거운 태양이 동쪽 능선에 완전히 떠 있었다. 비록 빌딩숲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빌딩숲에 달려있는 유리창에 비추어진 태양은 그날 따라 유난히 밝아 보였다.
그날 하늘에는 약간의 구름이 떠있었다.
내가 멍 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부르며 나에게 뛰어 왔다.
“백 상무보! 거기서 뭐하나!?”
나는 깜짝 놀라 멍하니 바라보던 하늘에서 눈을 떼어 나를 부른 그 사람에게 시선을 옮겼다.
“어! 김 전무님!”
“백 상무보...요즘 윗선에서 상무보 들 계속해서 눈여겨 보고 있으니까....무슨 말인지 알지? 내가 우리 백 상무보 아끼니까 특별히 찔러주는 거야...”
“아..예, 감사합니다”
나는 고마운척, 감사한척 하며 나의 상관에게 대답했다.
솔직히 말하는 것이지만 나는 지난 30년간의 직장생활 가운데 남들 뒷꽁무니 봐주는 것이, 남들 비위 맞추는 것이 가장 싫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자신이 자신을 속이는 비열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러고 보면 나도 그 당시 종로일대에서 떠들어대던 정치인들을 욕할 권리는 없었다. 나 자신도 진실되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김 전무의 발걸음을 따라서 나 역시 회사로 들어갔다. 종로에 있는 종로빌딩에서 이곳으로 옮긴지 3년이나 지났지만 아직까지 이곳 빌딩의 삭막함은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다.
아니, 이 회사를 다닌지 30년이 다 됐지만 아직까지 회사안의 계급과 경직된 공기는 적응되지 않았다.
철문으로 되어있는 엘리베이터 위에 붉은색 네온으로 ‘1’ 이라는 숫자가 들어오자 위로는 길쭉하고 옆으로 좁은 철문이 스르륵하며 열렸다.
김 상무와 나는 조그마한 강철방에 몸을 실었다. 나는 계기판처럼 생긴 버튼이 촘촘히 있는 붉은색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내가 누른 ‘10’버튼이 붉게 빛났다. 그리고 조그마한 강철방은 잠시 귀가 멍멍해 지도록 공중으로 올라갔다.
“백 상무보! 오늘 발표있는거 알지?”
“예!..알고있습니다.”
“백 상무보, 열심히 준비해! 내얼굴에 먹칠하지 말고..알았지?”
“아..예!”
잠시 어색하고 불편한 대화가 오가고난 뒤 철문위로 붉은색 네온으로 1에서10까지 올라오자 철문은 또다시 한번 스르륵하고 열렸다.
그리고 김 전무와 나는 강철로된 방을 나와 각자의 사무실로 향했다.
나는 다시한번 가식적인 아첨을 떨었다... 누가 시킨일도 아닌데....
가식적인 아침인사를 마친 후 나는 나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나의 비서가 내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백 상무보님!”
“그래, 안녕”
나는 내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내 앞에 놓여있는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컴퓨터의 전원을 누르자 요란하게 돌아가는 펜소리와 함께 모니터에 불이 들어왔다.
컴퓨터가 켜지는 동안 나는 의자를 살짝 돌려 동쪽의 창가를 바라보았다.
동쪽 창가에서는 거대한 태양빛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날의 태양은 유난히 밝게 빛나 보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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