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오브 드래곤스>

제3화-불타는 제주도(2)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살아있는 듯 꿈틀꿈틀 땅거죽이 흔들렸다.

그 사이를 뚫고 용이 솟아 나기 시작했다.

눈을 뜨자 녹인 금마냥 빛이 반짝였고 날카로웠다.

여기저기 여러마리가 동시에 나왔다.

쿠르베가 한숨을 쉬었다.

“휴..”

<토스트맨>이 빙긋 웃더니 창을 다잡고 땅거죽을 거의 빠져 나온 용의 목을

꿰뚫었다.

화란의 불칼이 화려하게 춤을 추었다. 지나간 자리마다 화염이 남았고 날개죽지며 용의 잘린 머리가 나뒹굴었다.

그때, 땅을 박차고 용 한 마리가 힘차게 날아올랐다.

모두에게서 다급한 신음이 터졌다.

“막아!”

화영과 수영 그리고 아영이 힘차게 시위를 당겼다.

촉 끝에 영력이 모였고 어김없이 날개죽지에 구멍을 내었다.

‘크아아악’ 용은 울부짖었고 비틀거리며 지상으로 내려 앉았다.

쿠르베가 날카로운 검으로 예리하게 숨골을 찔렀다.

쿵소리와 함께 용이 쓰러졌다.

여기저기 어지러운 싸움이 이어졌다.

용들은 화염을 뿜었고, 그때마다 극강의 영력을 모아야만 했다.

그만큼 체력소모가 심했고 다들 지쳐 갈때쯤 엄청난 폭음과 함께 하늘이 깜깜해졌다.

검은 우박이 쏟아지고 시뻘건 기둥이 땅끝에서 하늘로 치솟았다.

한라산에 용암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모두들 놀라 몸이 굳어 버렸다.

놀랍게도 용암사이로 불새가 날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새라 불러야 할지 그저 화염 이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거대한 불덩어리들이 끊임없이 용암사이에서 날아 오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들이닥친 불새들이 용과 사람을 가리지 않고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그 뜨거운 열기에 용들은 순식간에 금빛물로 녹아버렸다.

우리들은 영력을 끌어모아 두텁게 보호막을 쳤다.

미야모토가 침울한 목소리로 외쳤다.

“후지산도 터졌다는군”

도인이 말을 받았다.

“백두산도..”

모두 말을 잃었다.

불새가 앉은 자리마다 초토화가 되었다.

혹여 앉은 자리가 화약고나 무기저장고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사람들은 지하로 숨어들었다.

영자매들이 멀리서 영력을 실어 화살을 쏘아보았는데 닿기도 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토스트맨>의 창도, <나이트맨>의 쌍도끼도 불새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일단 가까이 조차 다가갈수 없었다.

해들이 날아다닌 셈이었다.

도인이 입을 열었다.

“예전에 스승님이 하늘에 불새가 날면 세상의 종말이라고 하더니 이걸 내가 보는구나”

떡두꺼비 여자가 손을 내저으며 말을 받았다.

“일단, 피하자구. 우리로서는 상대가 안돼”

우리는 가까운 요양시설의 지하실로 몸을 숨겼다.

피로가 몰려왔다.

모두들 여기 저기에 상처를 입어서 온 몸이 망신창이였다.

그 와중에도 화란이 내 몸 여기저기를 살핀다.

고맙긴 한데 좀 부끄럽다.

화란이의 팔에도 긴 상처가 예사롭지 않다.

내가 팔에 붕대를 감자 화란이 싱긋 웃는다.

“이거 어떡해? 거꾸로 됐네”

나도 싱긋 웃으며 붕대를 마저 묶었다.

뛰고 구르다 보면 어디서 어떻게 다쳤는지도 모르게 상처가 깊었다.

단파라디오에서는 연신 세계 각지의 상황을 알려왔다.

대도시에 인접한 산들이 폭발했고 불새가 날았다는 소식.

가까운 지하철역과 대피소로 피신하라는 소식.

그리고, 시베리아로 대피하라는 소식이었다.

시베리아.

그곳에는 불새와 용이 출몰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불새의 열기로 눈들이 녹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초원이 될 터였다.

문제는 어떻게 가는냐였다.

땅속이라고 마냥 안전하지 않았다.

가끔씩 용들이 나타났다.

우리는 순번을 정해 보초를 서고 먹을 것을 구해 왔다.

해안가에 일본의 배로 보이는 배가 보였다. 아마도 피난선인가 본데 부산까지 못가고 제주도로 흘러든 모양이었다.

어김없이 불새가 날아들었고 화염속에 배는 불타올랐다.

이제 세상에는 밤이 없어졌다.

밤에도 불새들이 날면 세상은 낮이 되었고 불새는 잠들지 않았다.

지상은 불새의 세상이었고 땅 밑은 인간과 용들의 아귀다툼 장이 되었다.

하늘이 그리웠다.

푸르고 파란 하늘.

지난 여름에는 유난히 고추 잠자리가 많았다.

그 빨갛고 하늘하늘한 녀석들은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손을 뻗으면 잡을수 있었고 가을의 전령사였다.

고추먹고 맴맴.

눈물이 났다.

세상이 왜 이렇게 변했을까?

난 솔직히 겁이 많다. 싸움도 못하고..

어느덧 <학살자>가 되어 용의 목을 자르고 있다.

눈물을 훔쳤을 때 화란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 눈빛은 따뜻했고 모든 것을 이해 하는 듯 했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깊은 잠을 잤다.

드디어, 본부와 연락이 닿았다.

제주도를 떠날 시간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