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오브 드래곤스>

제1화..이무기(1)

해는 한 낮이었고 집 안에는 나 혼자였다.

홀로 집을 지키는 날이 많았다.

수위 아저씨는 종종 이무기에 대해 말해 주었는데, 비가 오고 번개가 많이 치는 날이 이무기가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날이라는 것이다.

다니는 초등학교 옆에는 민둥산이 하나 있었고, 그 산은 어쩐일인지 풀 한포기 자라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나 흙이 붉었다.

가난한 동네에는 늘상 우편함에 <파산,회생>이라는 전단지가 꽂혀있고, 까만 헬멧을 쓴 스쿠터의 남자가 <일수>라고 적힌 명함을 표창처럼 가게 출입문에 날리곤했다. 길은 찢어진 전단지와 중고차명함으로 늘 지저분했다.

공원을 마주하고 단독주택2층에 <한국활법>이 있었고, 도인이 한 명 살고있었다. 그 <한국활법> 밑으로는 <제석천황당>이라는 간판이 있었고 대나무 끝에는 하양과 빨강의 깃발이 나부끼었다.

그 맞은편에는 합각머리지붕의 <선한교회>가 있었다.

낮의 무료함이 거리거리에 소복히 내려 앉았다.

구멍가게가 있었고, 그릇을 빚는 <공방>이 있었다. 그 공방에는 동네 고양이들이 한,두마리 앉아 있었는데 마음씨 좋은 주인이 늘 사료와 물을 준비해 놓았다. 고양이들은 코흘리개들이 그네들의 몸을 더듬고 털을 문질러도 얌전했다. 고양이들은 길게 하품을 하고 침을 흘렸다.

길 모퉁이에 문닫은 철물점이 있었고, 그 아래 <풍년세탁소>가 있었다.

세탁소는 부부가 운영하였는데, 주인 여자는 늘상 장부며 TV등을 들여다 보았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때면 떡두꺼비 같은 여자가 연신 담배를 피며 동네 사내들과 웃고 떠들면서 커피를, 때로는 술을 마시곤 했다.

여자가 또 다른 여자와 택시에서 내리는 것을 볼 때도 있었는데,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 여자는 <제석천황당>의 주인이었다.

여자는 목소리가 컸고, 나는 그 여자가 무서웠다.

식당에서 여자를 본 적이 있었는데, 국밥앞에 술 병이 그득하였다.

여자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징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눈을 찡그렸다.

나는 놀래서 퍼뜩 시선을 돌렸다.

집안에 홀로 있으면 심심해서 죽을 것 같았고, 철 없는 나는 비닐로 된 쓰레기통에 불장난을 하다 불을 낼 뻔도 했다.

많이 맞았고, 많이 울었다.

그렇게 많이 울던 날이었다.

가늘게 내리던 비는 조금씩 굵어지더니 마침내, 쏴아하는 소리를 내며 장대비가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천둥소리도 요란하여 심장을 멎게했다.

수위 아저씨의 말이 떠올랐다.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하는 날!

오늘이 바로 그 날이겠구나!

우산도 없이 나는 정신 없이 학교로 뛰기 시작했다.

옆을 보니 동네 사람들 모두 나와 민둥산을 향해 뛰는것이었다.

사람들의 눈에는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손에는 쇠막대기와 집에서 쓰던 식칼마저 들고 있었다.

철물점의 장씨 아저씨는 왼손에는 망치를 오른손에는 뽀족한 쇠꼬챙이를 들고 뛰었다.

도인은 노란종이를 양손가득 쥐고 뛰었고, 떡두꺼비 여자는 빨간천을 두른 대나무막대기를 쥐고 뛰었다.

모두들 입김을 하얗게 뿜으며, 드디어 민둥산에 도착하였다.

학교는 동네에서 5분거리에 있었고, 공원에서 이어진 산과 민둥산도 이어져 있었다.

“저기 봐..!”

철물점 장씨 아저씨가 손가락을 가리키며 크게 소리쳤다.

모두가 시선을 돌리자 거대한 이구아나같은 뱀이 시뻘건 흙탕물안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펄펄 끊는 뜨거운 물에 데인 듯이, 때로는 허연 배를 때로는 시커먼 등을 보이며 어지럽게 몸을 뒤집곤 했다.

“저 놈을 죽여..!”

장씨가 또 소리 높여 외쳤다.

사람들 사이에 이상한 열기가 느껴졌다.

사람들은 홀린 듯이 쇠막대며 칼을 쥐고 뱀옆으로 모여들었다.

뱀은 거대했다.

굵은 통나무같기도 했고, 전봇대 같기도 했다. 미친 듯이 춤을 추는.

뱀의 입에서는 연신 쉭쉭 소리가 났고, 커다란 송곳니도 보였다.

사람들은 그 커다란 송곳니에도 아랑곳 않고 쇠막대를 휘두르고 칼을 뱀의 몸안에 박았다.

장씨의 뾰족한 쇠막대기가 뱀의 눈에 박혔다.

뱀이 ‘크아악’ 비명을 질렀다. 시뻘건 피가 흙탕물에 흩뿌려졌다.

도인이 뱀의 여기저기에 노란 부적을 붙이고, 떡두꺼비 여자가 대나무막대기를 뱀 몸통안에 깊숙이 꽂았다.

사람들의 함성소리. 뱀의 비명소리. 빗소리. 천둥소리.

어지러웠고 세상이 빙글빙글 맴을 돌았다.

이윽고, 뱀이 움직임을 멈췄고 주위가 온통 빨간피로 물들었다.

사람들이 구덩이를 파고 뱀을 묻었다.

일기예보를 보니 일주일후 다시 큰 비가 온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기다렸고, 드디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