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한번 읽어야겠다고 맘먹은 <추사집>(최완수,현암사)을 이번에 읽었네요.

760페이지에 이른는 두꺼운 책. 그러나 긴 겨울밤 문자향과 서권기를 가득 느낄수 있어 좋았습니다.

몇년 전 읽은 유홍준 교수의 <완당평전>1~3권이 본인에겐 노작이었겠지만 뭔가 소프트한 느낌이었다면

서론,화론,금석고증학,경학 불교학,서한문등 추사의 저작물을 고졸하게 번역해낸 <추사집>은 추사 김정희의

내면의 향기를 직접 접하는 느낌입니다.

그나저나 <완당평전>은 유교수 스스로 절판했다는 말이 들려오던데 좀 당황스럽네요.

저자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미진한 부분들이 많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추사집>은 1976년에 초판이 발행된 이후 30년만에(2014년) 최완수선생이 제자들과 협력해 심혈을 기울여

개정판을 냈습니다.초판이 나왔을때부터 명저로 소문나 장안의 지가를 높였다고 합니다.

흔히 추사는 단군이래 최고 명필가로 많이 알려졌지만 서예는 추사의 일부분이고 학문과 예술의 여러부분에서

당대 동아시아 최고 수준의 석학이었습니다.

가령 조선에 금석학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을 때 금석고증학의 기초를 확실히 닦았는데,북한산 비봉의 무학도사와

관련됐다고 알려진 비석이 신라진흥왕 순수비임을 현장 고증으로 최초 밝혀낸 이가 바로 추사 김정희입니다.

추사집에 실린 (진흥왕이비고)를 보면 황초령비와 북한산비가 진흥왕 순수비임을 중국,조선의 각종 역사서와

치밀하고 과학적인 검증을 통해 밝혀내는데, 요즘 학자들도 탄복할 정도지요.

한가지 재밌는 점은 아시다시피 최완수 선생은 우리나라에 "진경산수","진경시대"라는 용어를 정착시켰으며

백하 윤순에서 시작해 원교 이광사에 이르는 서예 전통에서 우리나라 고유의 "동국진체"라는 용어 또한 만들어 낸

장본인입니다.

그러나 그가 평생을 통해 연구해온 추사는 정작 진경산수의 창시자인 겸재 정선을 폄하하고 동국진체 완성한 원교 이광사를

'먹쓰는 법과 붓쓰는 법도 구별못한 사람'이라고 신랄히 비판합니다.

<추사집>의 여러 대목에도 원교를 비판한는 내용이 나오지요.

최선생의 견해로는 고증학적 가치관을 새로 확립하기 위해 조선의 성리학적 가치관을 과감히 부정할수 밖에 없었다고 하네요.

그들의 영향력을 좌시할 수 없었다는 거죠.

사실 이런 부분의 논쟁에는 끝이 없습니다.

아무튼 추운 겨울밤 일독을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