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보고 싶을 때마다 딱히 어떤 책을 읽을 지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라,
개인적으로는 이런 조금 믿을만한 추천도서가 많이 나왔음 하는 바람입니다.
★ 추천위원들이 꼽은 올해의 책
시 <래여애반다라>, 소설 <김 박사는 누구인가?>,
인문·사회과학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아파트 게임>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자연과학 <온도계의 철학>, 생태·환경 <한국 탈핵>, 문화·예술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1. 시
오래된 '전위'는 어떻게 귀환하는가
<래여애반다라> 이성복 지음/문학과지성사 펴냄
2013년은 이성복과 황병승의 해였다. 세 추천위원은 한목소리로 이성복의 <래여애반다라>와 황병승의 <육체쇼와 전집>을 올해의 시집으로 꼽았다. 추천위원들은 "노장의 귀환(이장욱)" "여전히 불가능한 언어적 구도의 길을 가고 있는 모더니스트(함돈균)" "서러움의 미학적 정서를 재발명하고 있다(강동호)"라는 평으로 이성복의 귀환에 박수를 보냈다. 대중적으로도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킨 화병승 역시 올 한 해 가장 주목받은 시인으로 손꼽혔다. 강동호 문학평론가는 <육체쇼와 전집>에 대해 "미학적 전위와 전통적인 서정성이 그 극단에서 조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라고 말했다.
함돈균 문학평론가가 '올해 최고의 시집'이라 평한 이영광의 <나무는 간다>와 이장욱 시인이 '움직이는 시집'이라 평한 김언의 <모두가 움직인다>는 각각 복수 추천을 받았다. 황인찬의 첫 시집 <구관조 씻기기>도 함돈균, 이장욱 두 추천위원으로부터 주목할 만한 신인작으로 꼽혔다. 이 밖에도 이장욱 시인은 주하림의 <비버리힐스의 포르노 배우와 유령들>을, 강동호 문학평론가는 강성은의 <단지 조금 이상한>을, 함돈균 문학평론가는 김정환의 <거푸집 연주>와 박상수의 <숙녀의 기분>을 올해를 빛낸 시집으로 추천했다.
추천위원: 강동호(문학평론가), 이장욱(시인,문학평론가),함돈균(문학평론가)
2. 소설
재미와 의미 담은 '이기호표 뉴 월드'
<김 박사는 누구인가?> 이기호 지음/문학과지성사 펴냄
"작가로서 부끄럽지만, 이제 겨우 타인에게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느낌이다." 이기호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그의 '변화'를 신형철, 고영직 두 평론가가 감지했다. 2013년 제1회 김승옥문학상 수상작인 이기호의 <김 박사는 누구인가?>가 올해의 책 소설 부문에 꼽혔다.신형철, 정여울 평론가는 윤대녕의 <도자기 박물관>, 김연수의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을 공통으로 추천했다. 정여울 평론가는 <도자기 박물관>을 두고 "상대방이 내 주위를 공전하기만을 기도하기를 그치고, 이제 생이 다하는 날까지 지치지 않고 그이ㅡ 둘레를 한사코 공전하기를 결심한" 주인공들이 "삶 자체의 타자성을 긍정해가는" 이야기들이라고 평했다. 김연수의 다섯 번째 소설집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은 자기만의 스타일을 확고하게 가진, 그 스타일 안에서도 빼어난 성취에 도달한 소설집의 하나로 꼽혔다. 이 외에도 신형철 평론가는 "말로 '규정'하지 않고 침묵으로 '환기'하는 스타일의 효과가 절묘한" 손보미의 첫 소설집 <그들에게 린디합을>을, 고영직 평론가는 '5월 광주'의 여성들을 그린 공선옥의 장편소설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를 추천했다.
추천위원: 고영직(문학평론가),신형철(문학평론가),정여울(문학평론가)
3. 문화,예술
건축가의 눈은 뭔가 다르다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조한 지음/돌베개 펴냄
패션, 대중문화, 미술 등 다양한 예술 장르가 한 분야로 묶여서일까. 예년과 마찬가지로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문화,예술 분야 '올해의 책'이 가장 다양했다. 문화의 생명이 다양성에 있듯이, 취향과 선호에 따라 다양한 독서가 가능하겠다.
대중문화 평론가 김봉석씨는 <천재 아라키의 애정사진><70년대 잡지광고><아트 테러리스트 뱅크시, 그래피티로 세상에 저항하다><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도시를 걷다:사회적 약자를 위한 도시건축, 소통과 행복을 꿈꾸다> 등 여러 분야의 책을 두루 소개했다.
미술에 관심이 많은 이는 미술평론가 박영택 교수가 추천한 <한국학, 그림을 그리다><내가, 그림이 되다><비평가, 이일 앤솔로지 상,하권><꼭 읽어야 할 예술이론과 비평 40선><오래된 디자인> 등 5권을 읽어봄직하다.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씨가 꼽은 최고의 책은 1913년 모더니즘 예술의 사회사를 일상의 측면에서 해박하게 풀어낸 <1913년 세기의 여름>이다. 이 밖에도 그는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과 <나쓰메 소세키, 나는 디자이너로소이다>를 추천했다. 김씨는 '올해 패션 분야와 관련한 책은 흉작이었던 편'이라고 아쉬워했다.
추천위원: 김봉석(대중문화 평론가), 김홍기(패션 큐레이터),박영택(경기대 미술학부 교수)
4. 생태,환경
우리에게 '시민을 위한 과학자'가 생겼다
<한국 탈핵> 김익중 지음/한티재 펴냄
만장일치였다. 환경,생태 분야 올해의 책으로 꼽힌 작품은 동국대 의대 김익중 교수가 쓴 <한국 탈핵>이다. 박병상 소장은 "진정한 탈핵 활동가라 할 수 있는 저자가 이야기하듯 썼기에 읽는 데 부담이 없고, 그래프와 그림이 곁들여져 이해도 쉽다. 무엇보다 문체가 살아서 꿈틀거려 탈핵의 삶을 행동으로 실천하게 하는 힘이 있다"라고 추천했다.
<맹그로브의 눈물>도 주목할 책이다. 이진우 부소장은 "맹그로브 숲의 파괴를 중심에 놓고 우리의 식습관이나 삶의 방식에 대한 전반적인 고찰을 하고 있다. 특히 우리가 즐겨 찾는 새우가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지에 관한 내용은 충격적이다"라고 평했다.
농업 관련 서적도 눈에 띈다. <에너지의 노예, 그 반란의 시작>은 농업이 석유 없이 불가능한 화학농업으로 바뀌면서 농경지 황폐로 괴멸할 위기에 빠진 인류의 문제를 지적했다. <유기농을 누가 망치는가>는 유기농업의 고충을 설명하는 한편, 관행 농업을 하는 농민의 절박함도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그 밖에 <저탄소 대안경제론><거대한 역설><발전은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채식의 배신>등도 추천작으로 꼽혔다.
추천위원: 박병상(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이진우(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최성각(풀꽃평화연구소 소장)
5. 자연과학
어렵지만 상큼한 '시대의 걸작'
<온도계의 철학> 장하석 지음, 오철우 옮김,이상욱 감수/동아시아 펴냄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이 꼽은 올해의 자연과학 분야 책은 <온도계의 철학>과 <기생충 열전>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인간에 대하여 과학이 말해준 것들>. 특히 <온도계의 철학>은 추천위원 3인의 유일하고도 공통된 추천작이다. 최종덕 상지대 교수는 수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을 표현하려는 근대인의 욕망을 분석하여 과학의 인식론적 심연을 찾아낸 책이라고 평했다.
최종덕 교수는 <신경 과학의 철학>을 또다른 추천작으로 꼽았다. 정신,심리,뇌에 관하여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현대 다마지오에 이르는 과학,철학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는 위기 모면, 자기합리화, 긍정 편견 등이 모두 인간 진화의 산물이라는 주장을 매우 설득력 있게 담고 있다. <적응과 자연선택>은 '20세기 <종의 기원>'이라고 할 정도로 현대 진화생물학의 이론적 기반을 다져놓았다. 이 밖에도 <누가 지구를 죽였는가> <자연의 노래를 들어라><비밀의 숲 DMZ가 궁급하니?>가 최 교수의 추천작이다.
김명남 번역가가 꼽은 <공룡 이후>는 신생대를 다룬 거의 유일한 성인용 도서로 의미심장했다. <근대 엔지니어의 탄생><그림으로 읽는 뇌과학의 모든 것><경제학은 어떻게 과학을 움직이는가>도 추천작으로 꼽혔다.
추천위원: 김명남(과학 전문 번역가),이정모(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 최종덕(상지대 교양과 교수)
6. 인문,사회
선생님 전 상서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엄기호 지음/따비 펴냄
가장 많은 추천위원이 선택한 책.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이다. 일곱 명 중에 다섯 명이 이 책을 인문,사회 분야 '올해의 책'으로 꼽았다. 저자 엄기호씨는 지난 10월 <경향신문>이 출판 전문가들에게 설문조사해 뽑은 '뉴 파워라이터'에 가장 많이 거론된 저술가이기도 하다.
이 책을 추천한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의 말처럼 '교육 현장의 붕괴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책의 주제가 흔한 만큼 그 성과가 눈에 띄기도 어려운 분야가 교육이다. 그가 이 책을 꼽은 이유는 이렇다. "정작 교육정책 담당자나 학생으로부터 외면당해온 교사들의 고뇌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출발이 될 수 있는 저작이다."
다른 추천위원들도 학교의 주체이면서도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교사'에 초첨을 맞춘 점을 높이 평가했다. 미디어 평론가 변정수씨는 "올해 출간된 교육 관련서 중에서 단연 압권이다"라고 말했다. 박태근 알라딘 인문,사회 MD는 "지식 습득, 신분 상승, 재능 계발, 성장의 공간 등 학교의 역할이 와르르 무너진 오늘, 그럼에도 가르치는 이가 그곳에 있어야 할 이유, 그럼으로써 폐허를 딛고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다"라고 평했다.
코믹하다 '호러'되는 아파트 이야기
<아파트 게임> 박해천 지음/휴머니스트 펴냄
추천작을 분야별로 분류하면 '역사'쪽 작품이 가장 많다.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는 "일본인 학자의 시각에서 새롭게 바라본 한국사 이해가 우리에게 자극이자 일침"(서평가 이현우)이 된다. 역사학자 한명기 교수가 쓴 <역사평설 병자호란 1,2>도 '역사적 사건을 풀스케일로 풀어주는 올해의 역사교양서'다.
시대와 인물은 인문,사회과학의 주요한 관심 대상이다. 작가 이원규가 쓴 <조봉암 평전>은 진보 정치인 죽산 조봉암을 3년여의 자료 조사를 통해 충실히 재현한 평전이다. 언론인 손석춘씨가 쓴 <박헌영 트라우마>는 남과 북에서 모두 버림받고 외면받은 비운의 혁명가 박헌영을 재조명한다.
비극을 기록한다는 것은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성찰하는 바탕이 된다. 사회학자 김동춘 교수는 <대한민국 잔혹사>를 통해 국가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범죄를 기록했다. 김동춘 교수는 한국전쟁기 '학살'의 진실을 파헤친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를 펴내기도 했다. <시크릿 파일 서해전쟁>은 서해 NLL에서 벌어진 다섯 차례 무력충돌을 그린, 한국에서 보기 드문 논픽션. <정치는 역사를 이길 수 없다>는 '사과의 정치학'이라는 새로운 틀로 한국 정치를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
세대론 넘어 한국 사회 되짚는 '청년논객' 진술서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한윤형 지음/어크로스 펴냄
20대 말, 30대 초 젊은 필자가 드문 한국에서 한윤형과 더불어 기억해야 할 이름. 문화비평가 최태섭이다. 그가 쓴 <잉여사회>도 추천도서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은 "잉여나 루저라는 신조어 아는 신개념 용어로 소비되던 청년 군상의 모습을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현실과 미래 사회의 변모와 결부시켜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뛰어난 저작"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사회 왼쪽 진영에 있는 글쟁이들이 누가 있을까 궁금하면 인문사회 비평지 <말과 활>을 눈여겨보면 될 성싶다. 홍세화씨가 발행인이다. 박태근 알라딘 MD의 말처럼 '좌파 진영의 상당수 글쟁이가 모였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 완간된 것도 인문,역사 분야의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기존 학습만화를 뛰어넘어 성인 독자를 사로잡았다. 역사학계에서도 이 작품이 꼼꼼한 '실록 읽기'를 바탕으로 조선 500년 역사를 그려냈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 밖에도 하승우씨가 추천한 <청춘의 커리뮬럼><자급의 삶은 가능한가><래디컬 스페이스><나를 위한다고 말하지마>도 '지금 여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추천작이다.
추천위원: 금정연(서평가),박태근(알라딘 인문,사회MD), 변정수(미디어 평론가), 이현우(서평가), 장동석(출판평론가), 전성원(<황해문화> 편집장), 하승우(교육공동체 벗 이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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