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띵동~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아니란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며 핸드폰을 확인해본다
<야, 헤어졌다며? 그럴 땐 술이 최고야 인마<br />
혼자 또 궁상떨지 말고 이따 나와>
술? 술 좋지
오늘은 아니야
우리가 즐겨먹던 매운 쭈꾸미
그 쭈꾸미와 함께 먹는 얼큰한 칼국수
차에 타면 제일 먼저 안전벨트 채워주던거
너에게서만 나던 샴푸냄새
너 특유의 말투, 너만의 말투
이제는 입을 수 없는 커플티
지갑 안에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
우리가 함께 맞춘 커플 악세사리들.
아직도 이렇게 생생하게 남아있는데,
금방이라도 모닝콜이라며 전화가 올 것 같은데,
며칠 전과 다르게 시계가 돼버린 내 핸드폰은
이별이 현실임을 말해주고 있다.
무료통화 600분은 이제 누구랑 쓰지?
너 주려고 사둔 선물은 어떡하지?
이제 힘들게 밤늦게까지 전화 안해도 되겠다.
친구들이랑 눈치보며 술 안먹어도 되겠어
휴일에는 안 씻고 집에만 있어도 되겠어
나랑 보내는 재미없는 휴일같은거
너 아니면 원하는 사람도 없을 거야
스물 네 시간, 천사백사십 분, 팔만 육천사백 초,
짧게 줄이면 '하루'
길게 늘이면 '니가 미치도록 보고 싶은 하루'
너
되게 나쁘다
나
왜 이렇게 아프게 하니
장난 이였으면 좋겠어.
몰래카메라 같은 거 말이야…….
- 그 여자 -
어떻게 잘……. 지내고 있어?
나 요즘 쭈꾸미가 먹고싶더라
아, 그 얼큰한 칼국수도 땡겨
퇴근시간에 데리러 오던 너 없으니까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 것도 별로야
가끔 자리 없을 때 서서 가야 하는 건 더 지옥이더라.
일 하다 힘들어도, 짜증받아줄 사람 없으니까
혼자 삭히는 게 익숙해지고 있어
니가 안다면 큰일 날 소리지?
그런 거 삭히지 말고 다 풀어야 한다고 말이야
하지만 지금 넌 내 곁에 없으니깐 뭐…….
"요즘 상우 씨랑은 어때?"
"아……. 헤어졌어요. 2주쯤 됐나?"
미안해하는 표정 짓지 마요 언니,
나 괜찮으니까
그냥 '둘이 헤어졌구나.' 라는 것만 알아줘요
너때문에 시작했던 게임도
이제 애써 안 해도 되니까 좋아
다른 사람들이랑 순위경쟁 안해도 되니까
스트레스는 덜 받고 있는 요즘이야
게다가 시도때도 없는 게임초대…….
그거 우습게 볼 게 아니더라고
아침에 갑자기 눈이 떠질 땐 당황스러워
일어날 시간도 아닌데 왜 일어났지? 하며 시계를 보면
나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하던 너의 출근시간이야
습관적으로 모닝콜 할 뻔했어.
유난히 아침잠이 많았던 너
요즘은 지각 안하고 잘 다니는지 모르겠네.
백일때 선물 받은 인형
생일선물로 받은 동전이 가득 든 저금통
우리가 함께 입던 커플티
핸드폰 구석에 삭제하지 않은 니 사진들,
그리고 컴퓨터 폴더에 저장된 우리 사진들
너랑 둘이 찍은 사진,
너랑 둘이 갔던 여행지.
너랑 관련된 것들이 이것 말고도 넘쳐나
많이 치웠다 생각했는데
어디에서 자꾸 불쑥불쑥 생겨나니까 당황스럽기도 해
비밀번호 있잖아
알기 쉬운 걸로 하려고 니 생일로 했었잖아 옛날에
그거 때문에 요즘 뭘 하려고만 해도 니 생일을 떠올려야해
바보같이, 비밀번호는 바꾸면 되는데 말이야 그치?
별 뜻은 없고, 아직은 그냥 안 바꾸고 있어
내일 쉬는 날인데 집에서 늦잠이나 자야겠어
어딜 가도 혼자는 의미가 없잖아
……. 하긴 뭘 해도 지금은 의미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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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생각이 나는 새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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德必有隣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