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 없는 친일소년의 어설픈 횡설수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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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머리말에서 나는 대일본국 총리대신각하의 망언시리즈를 질책하고 성토하고 공박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탄핵까지 했다. 대일본국의 총리대신이라는 어마어마하게 높은 사람이 한일관계사를 몰라도 그렇게까지 모를 수 있을까? 정치적 계산을 밑에 깔고 일부러 모르는 체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아무튼 나는 이런 거 저런 거 따지지 않고 그가 우리로서는 뼈아픈 한일관계사를 전면 부정적으로 취급하는 것에 대해 나의 어설픈 민주적 분노를 폭발시켰었다. 그리하여 흡사 미친놈 도끼로 장작 패는 듯이 원고지 위에서 붓을 마구 휘둘렀다. 그런데 말이다. 글을 인터넷에 올리고나자 갑자기 그 어떤 불안감이 나의 노쇠한 신경을 살금살금 건드리는 것이 아닌가. 그 불안감이란?

70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말 그대로 못말리는 친일소년이었다. 그것도 ‘악질’이라는 수사가 가미된, 그러니까 악질 친일소년이었다. 그런 내가 그동안에 우리나라가 일본 통치로부터 벗어났다고 해서 민족주의자로 탈바꿈하다니! 이거야말로 의리 없는 인간의 표본이 아닌가! 그런데 그 일본총리대신은 과거 ‘대일본제국’이라는 휘황찬란했던 간판을 양손에 높이 쳐들고는 군국주의자의 면모를 만천하에 과시하고 있지 않는가! 정말이지 ‘사무라이’정신이 투철한 의리 있는 사나이의 표본이로고, 더욱이 그가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진짜 ‘오도꼬(※남자)’라는 것은 최근에 그가 보여준 행동거지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즉 그는 대한민국 등 여러나라의 집요한 반대를 무릅쓰고 ‘야스꾸니’신사에 참배했다는 사실이다. 맑은 공기를 마시기 위해서 산책삼아 그곳에 간 것이 아니었다. 군국주의에 대한 그 어떤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서 군국주의의 화신이며 또한 동시에 ‘전범’이라는 딱지가 붙어있는 도오조를 참배하기 위해서였다. 도오조는 주지하다시피 1940년 당시 대일본제국의 총리대신으로서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던 바로 그 장본인이었다. 그러니까 현 대일본국 총리대신은 그의 새까만 후배로서 까마득히 높은 그의 선배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서 그곳에 갔던 것이다. 그 망할 놈의 군국주의 때문에 극심한 피해를 본 이웃나라들의 반대를 깡그리 무시한 채……. 그곳에 납시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의리 있는 일본 ‘오도꼬’의 늠름한 자세인가! 그리고 이 얼마나 철면피한 뱃심인가! 부럽다, 부러워. 그건 그렇고 도오조라는 ‘오도꼬’는 살아생전에 대일본제국의 총리대신으로서 ‘데노헤이까(※천황폐하)’를 위해 어떤 충성스런 공을 세웠길래, 70년이 지난 오늘 현 총리대신이 야스꾸니신사까지 행차해서 그토록 정성스럽게 참배를 올렸을까. 그것을 설명하기 전에 나는 독자여러분에게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밝히고자 한다. 그, 그건 나는 도오조가 총리대신으로서 한참 활동하고 있던 모습을 보았다는 사실이다.

‘뻥’이라고? 그건 거짓말 같은 사실도 아니고 또한 사실 같은 거짓말도 아니라는 거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진짜진짜 거짓말 같은 거짓말이라는 거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분명히 그 자를 나의 두 눈으로 똑똑이 보았었다. 도대체 그자를 어디서 보았느냐고? 활동사진을 통해서 그자를 보았다. 이래도 내가 뻥을 튀기는 거짓말쟁이라고 할 것인가? 나의 부모는 일주일에 한 번쯤은 극장(※필요에 따라 활동사진도 돌리고 또는 연극도 했음)에 갔었다. 그런데 나를 꼭 데리고 갔다. 어린아이를 혼자 집에 남겨놓은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따라갔지만 재미는 없었다. 화면에 나타나는 장면들을 건성으로 감상(?)하다가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떴을 때 나는 이미 날이 훤히 밝은 아침이었다. 그리고 우리 집 안방의 따듯한 이불속이었다. 군들이 나의 이런 표현에

“아니, 당신 같은 노인도 그런 어린시절이 있었소?”

이렇게 의아스런 표정까지 지으면서 묻는다면 나, 머리에 뿔난다아, 그건 인격모독이니까……. 히히…….

각설하고, 문제의 그 날밤도 나는 부모와 함께 극장에 갔었다. 먼저 뉴스를 보여주었는데, 지금도 그때 그 장면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건 훈장들을 가슴에 주렁주렁 달고 있는 어느 늙은 ‘헤이따이상(※병사님)’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불끈 쥔 주먹을 미친 듯이 흔들면서 뭐라고 소리소리 지르고 있는 장면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양손을 높이 치켜들면서

“덴노헤이까 반자이!”

이렇게 외치는 것이었다. 그러자 군중도 제창을 했다. 그런데 더욱 더 알다가도 모를 일은 화면을 열심히 보고 있던 관객들도 ‘덴노헤이까’라는 소리에 모두들 벌떡 일어나서는, 아니 기립해서는 차렷자세를 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모두들’은 아니었다. 그들 중에 하나가 일어나지 않고 그냥 앉아있었다. 이 겁 없는 자가 누구냐! 어린아이였다. 어린 아이? 바로 나였다. 그러나 그때 내가 어린 소년이었기에 망정이지 중학생 정도만 되었어도 입석경관에게 끌려가 서너 차례 뺨을 맞았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어른이었으면 ‘불경죄’에 걸려 경찰서 유치장에도 초대받아 갔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자리에 그냥 앉아 있었다. 이걸 보면 대일본제국 경찰도 고토록 잔학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린이의 인권을 존중해주는 것을 보니……. 히히……. 이런 싱거운 소리는 그만 하고 여기에 ‘덴노헤이까’ 덕분에 큰 화를 면한 조선청년이 여기 있다. 그가 누구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