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말야. 밤 11시에 대형마트에 가는게 좋아. 아무도 없는 곳을 혼자서 걸어 다니면 일종의 해방감 같은 걸 느끼곤 하지. 꼭 대형마트의 심야시간이어야만 하지.”라고 저리기 시작한 한 쪽 다리를 펴면서 말했다.
“뭐 별로 특별해보이지도 않는데?”라고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어깨를 한번 들썩여 보인다. 그리고는 자판기에서 뽑은 스프라이트의 탄산이 모두 빠져버렸는지 바닥에 캔의 남은 액체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비우면서 깡통을 가만히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네가 하는 말은 즉, 탄산음료만 고집하면서 4년 뒤에는 위궤양, 정확히 8년 뒤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그래도 계속 탄산으로 된 음료수만 자판기에서 주구장창 뽑아 마시는 것이라고 생각해.”라고 말하면서 한쪽 다리를 뻗어 주머니에서 꺼낸 담배에 불을 당겼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한참 뒤에 만족을 했는지 천천히 연기를 내뱉으며 눈을 떴다. 담배연기는 7월의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운 저녁 하늘에서 가만히 형체를 유지한 채 사라졌다. 우리의 그림자는 실제보다 더 길게 도로에 그려져 있었다.
앞 뒤 맥락을 되짚으며 감자의 말을 이해해보려고 했지만 그만 포기해버렸다. 한번은 그녀의 이름과 가족에 대해 물어 보았지만 “그냥 감자라고 불러줘”라는 대답만 들었을 뿐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말아달라고만 했다.
“아직 시간은 7시고, 괜찮다면 맥주 어때?
“난 미지근한 버드와이저”라고 짧게 대답하며 조금 남은 담배를 깊이 빨아들이면서 아쉬운지 한참을 들여다 본 뒤 우리가 깔고 앉은 연석에 비벼 껐다.
바지를 몇 번 터는 시늉을 하며 왕복6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편의점의 문을 밀고 들어갔다. 카운터는 비어 있었다. 유리문에 달려 있는 작은 종이 몇 번 울렸지만 재고품을 채우러 창고에 들어갔는지 한참을 맥주를 고르며 서성거렸지만 그때까지도 카운터에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땀으로 달라붙은 속옷과 티셔츠가 에어컨바람 속에서 마르면서 살에서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을 때쯤 입구로 앞치마를 두른 아르바이트생이 들어왔다. 매장에 들어온 손님 몇 명쯤은 신경 쓸 것도 없다는 발걸음으로 허리를 굽히며 카운터에 섰다. 적어도 오랫동안 이런 종류의 일로 이골이 난 배태랑 쯤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맥주 두 병을 카운터에 놓고 말보로 두 갑을 주문한 뒤 잔돈을 지불했다. 담배를 뒷주머니에 찔러 넣고 양손에 각각 병 입구부분을 잡으며 문으로 걸어갔다. 저 멀리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문 앞에 서서 몇 대의 차량이 지나가면 와이퍼로 유리를 닦아 내는 것처럼 선명하게 그 자리에 다시 앉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 두 대의 차가 지나갔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라진 것이 실제가 아니라 원래부터 없었던 것이 실제였던 것을 내가 착각했던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을 어깨로 밀면서 밖으로 나오면서 다시 호흡을 시작하는데 긴 시간이 필요했다. 누군가가 나타나서 이 상황을 설명해준다면 인생에서 최고로 고마운 은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건너가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라고 생각하며 멍하니 그대로 있으니 맥주병이 식으며 손에 물기가 축축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폭염의 날씨에 그 흔한 매미도 길거리의 차량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을 망설이다 도로를 가로질러서 자리로 돌아왔다. 우리가 앉았던 연석 바닥에는 찌그러진 담배꽁초 두 개와 색연필처럼 길게 그어진 담뱃재 흔적, 빈 깡통, 그리고 이미 증발해버린 스프라이트의 희미한 얼룩이 남아 있었지만 역시나 그녀는 그때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멀리서 뱃고동소리가 잔인하게 찌는 공기의 적막을 깼다. 몇 번을 더 울리는가 싶더니 현기증이 밀려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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