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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오에 찬 방원이 전속력으로 말을 달려 요동으로 향하는 동안, 도성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를 일이지만, 요동이 무주공산이라는 소위 요동무주공산론이 허위임을 밝혀낸 하륜. 도전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일 따름이다. 마음 같아서는 죽여 버리거나 유배 보내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를 도당에 앉혀 놓은 사람이 바로 임금이었으니까.
“하륜을 죽이거나 유배 보내지 않는 선에서, 권력에서 멀어지게 할 방법을 찾아보게.”
“여부가 있겠습니까, 삼봉 형님!”
결국 대사헌인 근원의 힘을 빌려 하륜의 여죄를 추궁, 그를 충청도 도 지휘관찰사로 좌천시켜버린다.
“하...또 다시 변방을 전전하게 되는 구나...”
“네 이놈들! 네놈들은 청렴한 줄 아느냐?”
“전쟁에 미친 작자들! 반드시 천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밖에도 몇몇이 좌천되어 지방발령을 받게 되자, 중심이 사라진 요동정벌 반대여론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이렇듯 모든 게 도전의 계획대로 흘러가는 듯 했으나, 하륜의 또 다른 계책에 의해 다시금 난항에 부딪힌다. 충청도로 떠나기 전날 밤. 성균관을 찾은 하륜이 혈기왕성한 젊은 유생들의 충심을 자극하였고, 이에 유생들이 도성 곳곳에 벽보를 붙이며 요동정벌 반대여론의 불씨를 살린 것이다.
“아이고...”
“이런 빌어먹을! 나라님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대!”
“내 아들 놈이 지금 진법훈련이니 뭐니 받고 있는데...결국 요동에서 개죽음 당하려고 저 지랄 떠는 거여?”
“우리 불쌍한 오라비...”
백성들이 길바닥에 주저앉아 신세한탄을 하는데, 유생들은 민심의 분노를 임금이 아닌 도전으로 향하게끔 만든다.
“나라님 탓하지 마시게. 이게 다...전쟁에 미쳐 국가대사를 거짓으로 점철한...삼봉대감 때문이니까.”
무지한 백성들은 유생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 시작했고, 그들의 분노는 삽시간 도성 전역에 퍼져나갔다. 이 들끓는 여론은 어느덧 도전의 귀에까지 흘러들어갔고 말이다.
그러나 도전은 하륜을 내쳤던 것처럼 젊은 유생들과 백성들을 공격할 수는 없었다. 노회한 정객 하륜과는 달리, 이들은 나라의 근간이니까. 결국 직접 백성들을 설득하기로 마음먹고, 그들과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 청하기 위해 궁으로 향한다.
한양도성, 대전.
도전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성계지만, 자기 딴에는 황당할 따름인지 실소를 터뜨린다.
“이보시오, 삼봉. 백성은 설득의 대상이 아니오.”
“어인 말씀이시온지...”
“백성은 말이오. 오로지 지엄한 군왕의 권위로, 강하게 이끌어야 하는 존재란 말이오.”
“신 판의흥삼군부사 삼봉 정도전. 신하로서 감히 전하의 가르침에 토를 달려는 것은 아니오나...굳이 할 수 있는 걸 일부러 아니 하는 것도 괴이한 일이라 사료되옵니다.”
성계가 도전을 빤히 바라본다.
“자신...있는 모양이구려.”
“그러하옵니다.”
성계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좋소. 애당초 요동정벌에 관해선 삼봉에게 전부 위임을 했으니...그대가 책임지고! 성사시키도록 하시오. 과인은 뭐, 어떻게든 요동 땅만 취하면 만사형통이니까.”
성계가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도전은 성계의 ‘책임지고’라는 말의 무게를 여실히 느끼며, 애써 옅은 미소를 지을 따름이다.
한편 명의 전력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방원은 강한 확신을 가지고 도성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 답지 않게 애마까지 혹사시키며 밤낮을 달려온 방원은 이윽고 한양에 당도하자마자 도전의 사가로 향한다.
도전의 사가, 대문.
방원과 무령이 서둘러 말 위에서 내린다. 그리고 미친 듯이 대문을 두드린다. 이윽고 서서히 대문이 열린다. 방원과 도전이 서로를 마주본다.
“야심한 시각에 이리 소란을 피우실 정도로 다급하시었나이까. 정안군 대감.”
“이 사람이 요동 땅에서 무엇을 보고 온 것 같소.”
“소신의 눈에는 무엇이 보이는 것 같사옵니까?”
“무엇이 보입디까, 삼봉대감.”
“산중에 맹수와 맞닥뜨렸는데, 지레 겁을 먹고 순전히 제 목숨을 내어줄...나이 든 어린아이가 보이옵니다.”
방원이 기가 차 실소를 터뜨린다.
“경은 이 사람이 우스운 가 보오.”
방원이 도전의 멱살을 잡는다.
“이 상황에도 그리 한가로이 말장난을 늘어놓는 걸 보니.”
“어차피 내일 밤이면, 조선 땅에서 요동정벌에 반대하는 백성들은 없을 것이옵니다.”
방원이 잡은 멱살을 푼다.
“얘긴 들었소. 삼봉 대감께서 직접 백성들을 설득한다지?”
“그렇사옵니다.”
“좋소. 주상전하의 윤허가 내려진 사안이니 내일 밤까진 기다려주겠소. 허나 명심하시오. 비록 백성들이 일자무식일지는 모르나, 생존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은...이 사람보다도 나을 거라는 걸 말이오.”
“명심하지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명심하겠다는 도전 때문에 더욱 더 화가 치솟은 방원은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무령과 함께 자신의 사가로 돌아간다.
방원의 궁가(왕자들의 사가). 앞마당.
“이게 어찌된 일이냐! 누가 이 따위 짓을 한 게야!”
늦은 밤에 고성을 지를 정도로 방원이 화가 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순위부에서 장을 맞아 말복은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고, 초복은 허리를 잘못 맞아 앞으로 평생 걷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순위부 제조 심근형 영감이옵니다.”
‘순위부 제조 심근형?’ 안 봐도 배후가 빤한 상황이었다. 바로 삼봉 정도전.
“대관절 너희들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순위부에 끌려가 장까지 맞는단 말이냐!”
“왕자마마께서 궁중예법을 어기셨다며...대신 저희의 볼기를 치던 도중...초복 형님의 허리를...”
방원은 순간적으로 치솟는 도전을 향한 살의(殺意)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은데, 말복이 거기에 기름을 끼얹는다.
“저희 같은 동북면 촌뜨기들 중에 다른 놈들은 개국공신이니 뭐니 해서 죄다 벼슬 한자리씩 꿰차는데, 겨우 면천(免賤)에 만족했던 순박하고 착한 우리 형님. 너무...너무 불쌍합니다.”
말복이 통증을 참아가며 방원 앞에 무릎 꿇고 애원한다.
“삼봉인지 삼놈인지, 그 개자식과 어떻게 같은 세상을...숨 쉬며...살 수 있겠나이까? 부디 죽여주시옵소서. 삼봉 정도전.”
말복의 절규가 사가를 가득 메운다. 방원은 피가 거꾸로 솟는 분노를 애써 삭이고, 무령은 그를 안쓰럽게 바라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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