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캠포er 여러분.. 이번 주는 캠핑도 못나가고 주말 내내 집에서 잠만 자다, 정신 차려보니 일요일 밤이네요..

애들의 원성과 마눌님의 눈총에도 꿋꿋히 잠을 자주었더니 허리가 몹시 아픈 것이 30대 때의 쫄깃했던 등근육은 다 어디로 간건가 싶습니다.

이번 캠핑도 역시 제 오랜 악우 녀석 내외랑 함께 했습니다.

이런저런 고생고생을 하면서도 꿋꿋히 미니멀을 외치는 그 호기로움 , 아니 호구로움은 여전한 녀석이라 영 손이 많이 갑니다. 

언제나처럼 아주 뜬금없이 연락이 옵니다. 

친구 : 강철아.. 6/6~6/9일 연휴다... 캠핑가자..

강철 : 네놈한테나 연휴겠지.. ㅆㅂ  우린 출근이야..

친구 : 그래? 그럼 우리만 가야지..

강철 : 이 캠핑장에서 해먹타다 허리 부러저 뒈질 녀석 같으니라고... 금요일날 비온단다... 

        그냥 닥치고 얌전히 6/8~6/9일 코스로 1박 2일 다녀오자...

친구 : 흠... 마누라가 물놀이 하고 싶댔는데... 경주 바닷가 캠핑장 갈꺼야..

강철 : 그래? 1박 2일 물놀이 하기 빡센데... 그리구 나 금요일날 회사 전체 회의 후 회식이야.. 후;;

친구 : 그럼 내가 우리 마눌님 시켜서 장은 미리 다 보게 할테니까 토요일 아침 일찍 출발하자구...

강철 : ㅇㅋ ㄱㄱㄱ

토요일 아침 일찍 출발해서, 얼리체크인? (뭐라 그러나요; 캠핑장 일찍 들어가는걸;;) 이 안되면 해수욕장 앞에 차만 세워두고 마눌님들이랑 애들 물놀이만 좀 하다가 입실시간 맞춰서 설영하기로 합니다. 

이윽고 토요일 아침...

역시나 나이를 잊고 회식 때 폭주한 저의 몸은 말을 듣지 않습니다. 

마눌님도, 알람시계도 깨우지 못한 저를 깨워준 건 다름 아닌 아이들...

아... 가위 눌려서 깼습니다... 왜 아이들은 주말엔 아침 7시부터 일어나는 걸까요?

주섬주섬 이만 대충 닦고 출발 준비를 마칩니다. 

왜냐구요? 어차피 물놀이할건데요 뭘.. ㅋㅋㅋ

그 와중에 마눌님은 풀메이크업은 너무 티나니 정성스레 덕지덕지 뭔가를 발랐구요...

딸래미도 뭔가를 덕지 덕지 바른 것 같은데 보여주질 않네요....

아들아... 술은 아빠가 먹었는데, 왜 네 표정이 그러니?

약 한시간 좀 넘게 달려 목적지인 경주 송림 캠핑장에 도착합니다...

시원한 바다 특유의 뷰가 펼쳐지고 역시 시원한 바람이.. ..

시원함이 좀 과해 춥습니다..

차에서 내린 제수씨 수영복이랑 튜브까지 챙겨왔는데 말짱 황이라며 울먹거립니다..

바다 물놀이를 잔뜩 기대했던 저희 땔래미 또한 마찬가지...

일단 바닷가라도 나가본다며 여자들은 모래사장으로 뛰어가고 친구와 저, 그리구 저에게 잡혀 주둥이가 댓발 튀어나온 아들놈은 텐트를 치러 갑니다. 

#남성 역차별 , #아빤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해!  #집나오면 개고생

#게임 30분 시켜줄게,  #뭐부터 도와드릴깝쇼?

텐트 치고, 타프 치고, 바닥 공사 하고, 의자테이블 깔고 할 때까지 우리 여성팀들은 소식이 없습니다. 

해변 모래사장은 더 추울건데, 물놀이도 못할건데.. 바닷가로 어슬렁 나가봅니다. 

헐;; 여자 셋이서 숄 한장 모래 위에 깔고 누워서 뒹굴거리구 있네요... 이 추운 날씨에..

#광합성, #진상들, #Homeless

#엄마 얘 흙먹어, #아빠 햇빛 가리지 말고 비켜줄래? , #땅속은 따뜻해

#자괴감, #낮술땡김, #캠핑 접습니다

이곳 캠핑장은 흙바닥으로 되어있고, 송림이 우거져서 저희가 애정하는 곳인데요... 

물론 비가 오면 헬이 열리기는 합니다.. ^__________^;;;

사이트가 테트리스 하듯 나무 공간공간 사이로 가로세로 얽혀있습니다. 

저희 타프 친 딱 바로 앞에 가족 한팀이 계셨는데, 피차 민망하게 저희 타프 쪽으로 입구를 터두셨더군요...

그 가족은 아이가 셋이었어요... 11살 남자, 9살 여자, 5살 여자..

저희 아들 딸과 대충 몇마디 나누더니 독수리 5형제가 되어 너무 잘 놀아주더군요... 

덕분에 저희 팀도, 옆집 가족도 한갓진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밥 먹으라며 잡으러 다니는 것은 고생스러웠지만요..)

공터에서 공놀이도 하구요...

해먹도 타고 놀았습니다. 

애들이 많으니 싸움날까 싶어 해먹 3세트를 쫘르륵 설치했어요..

대충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어른들은 한가로운 시간을 보냅니다.

해먹에서 낮잠도 자구요, 캔맥주 한잔 마시면서 담소도 나누고요...

살짝 어둑해질 무렵, 캠핑 뭐 있나요? 구워야죠...

구워댈 준비를 합니다. 

쌀도 씻고, 야채도 씻고, 채소도 씻고, 쌈채도 씻고, ...

강철 : 잉? 뭔 풀떼기가 이리 많아?

친구 : 글게... 마누라가 야채 좋아하긴 하는데 심하게 많긴 하네..

        난 안 먹을거니까 니들이 다 먹어라..

강철 : 아.. 나 엽록소 알러지 있어서 진짜 야채 못먹어..

우린 좋다고 낄낄대며 저녁 준비를 했습니다. 

장을 본 제수씨가 오늘의 코스에 대해 브리핑합니다. 

제수씨 : 여러분.. 오늘은 울집 냉장고에서 가져온 한우 AAAAAAAAAAAAAA급으로 간단히 기름칠을 해준 후에, 버터전복구이, 대하구이, 수입소고기, 삼겹살, 낙지호롱, 연어스테이크 코스로 갈거예요...

마눌님 : ... 그럼 이 많은 야채들은 뭐야?

제수씨 : 음.. 그건 햄버거에 있는 야채 같은 거죠... 햄버거는 패티 맛에 먹지만, 야채가 없음 맛이 없응게?

친구, 강철 : 오오옭... 고기 먹을 줄 아는 여자구나? 

마눌님과 제수씨는 해산물과 연어시즈닝과 야채샐러드를 준비하고, 친구는 소고기를 굽기 시작합니다..

저는 뭘 했냐구요? 

젤로 바쁘지요...

세사람 술 따라 줘야죠, 아박 심부름, 개수대 심부름, 애들 밥먹이러 잡아오기 등등... 

정말 좋은 고기라고 자랑하더니 한우AAAAAAAAAAAAAA는 정말이지 입에서 살살 녹았습니다. 

전복 버터구이로 향긋한 바다의 맛도 느껴보구요...

물론 사진 따윈 벗ㅇ어요... 먹기 바빴으니까요..

강철 : 제수씨... 다음 코스 ... 수입소고기와 삼겹살 어딨음?

제수씨 : 아박 젤 아랫쪽에 넣어뒀어요...

강철 : ...없는데?

제수씨 : 오빠네 아박 말구요, 우리 아박요...

강철 : 그래.. 이거 니네 아박임..

.... 잠시간 불길한 적막이 흐르고...

제수씨 : 아아아아아�� 어떡해.. 어떡해 ㅠㅠㅠㅠㅠㅠㅠㅠ;;;

아박 좁아서 소프트쿨러에 고기 장본 거 따로 담아두고 그냥 놓고 왔나봐요... 

갑자기 제 친구녀석이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갑니다..

단단히 삐쳤나 봅니다..

몇 분 후 돌아온 친구녀석에 손에는 고기 몇팩이 들려 있었어요..

친구 : 매점에서 사왔는데, 대패삼겹살 3팩 밖에 없단다... 이거라두 구워먹어 보자..

대패삼겹살이라는 게 그렇더라구요... 

직화로 구우려니 불쑈나고 그릴에 들러붙어서 뒤집으려니 죄다 찢어지고...

도저히 BBQ는 불가능했습니다. 

후라이팬에 대충 야채 섞어서 볶아보니 양은 한없이 쪼그라들어있구요...

호기롭게 옆집 애들 셋까지 저희 테이블에 앉혔는데 식은 땀이 흐릅니다...

대충 간신히 애들 다섯 배는 채워주고 나니 저희 먹을 게 없네요...

어른들은 술을 한잔씩 해서 도저히 나가서 뭔가 사올 상황은 아녔구요..

주섬주섬 어른들 먹을 단백질거리를 찾아보니 낙지호롱 8개, 새우 12마리, 연어스테이크 1조각이 나옵니다. 

서로간 대화가 없어집니다..

친구는 닭 잡는데 소잡는 칼을 쓸 수 없다며 고기 굽기를 거부합니다. 

#갑분싸, #고기쟁이 파업, #그와중에 셀카질

아쉬운대로 제가 집게를 잡아봅니다..

구울 거리가 마땅치 않군요..

버섯과 파와, 가지가 가지런히 놓여집니다...

군침이 흐르네요..는 개뿔.. 눈앞이 캄캄합니다... 배고파 죽겠구만..

테이블 위의 발싸믹인지 발냄샌지 야채샐러드도 꼴보기가 싫어집니다. 

#Vegetatian,  #좋은 재료는 흙에서 온다, #이걸 구우면 맛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식사, #음메에~ , #라면끓여줘

그날 저희는 구운 채소와 함께 낙지호롱을 뜯어먹으며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연어스테이크는 놀다 돌아온 애들의 밥반찬으로 사라졌습니다. 

고놈시키들 새우는 또 왜이리 잘 먹는지...

낙지호롱 1개에 최소 소주 3잔, 새우대가리 구이 1개에 소주 2잔 원칙은 엄격히 지켜졌으며, 안주가 부족하여 결국 라면을 끓여야만 했습니다.

다음 날 철수하는 중에도 저희 2팀의 분위기는 몹시 경건하였으며, 집에 오는 중 갈비집에서 갈비를 뜯기 시작했을 때 저희는 비로소 웃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제수씨가 샀지요.. ㅎㅎ

매번 이러기도 쉽지 않을텐데, 친구 내외는 정말 화수분인가 봅니다. 

갈 때마다 모질이 짓을 해대면서 중복되는 법이 없습니다. 

매번 다채롭습니다...

항상 그렇듯이 글을 쓰다보면 마무리가 참 힘들 때가 많습니다.

사진첩을 뒤적거리다 제 딸래미의 독사진으로 마무리지어봅니다.

PS) 저희 아들 딸이 간절히 찾고 있습니다. 

     경주 송림 오토캠핑장 (6/8~6/9) B7사이트 쓰셨던 가족이 캠포er 셨으면 좋겠네요.. 

     담에 같이가요... 고기 사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