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 호출에 마나님이 친정을 가게 됐습니다.
큰애는 집에 혼자있겠다고 하고, 작은애는 엄마따라 외갓집을 간다고 하네요.
그래서 저도 주섬주섬 백패킹 배낭을 챙겼습니다. 이번에 동해바다가 보이는 좋은 박지를 찾았거든요.
그런데.
"아빠 또 백패킹 가?"
"얍. 너도 주말에 혼자있지말고 친구들 불러서 놀아. (신남신남)랄라~"
"OO이도 바쁘데. 근데 어디로 가?"
"동해바다. 크..여름엔 바다지. (맹.세.코 건성으로)너도 갈래?"
"응."
"어? 어?! (땀 삐질)"
그렇게 무심코 한마디 한 댓가로 졸지에 부녀캠을 가게 됐습니다.
백패킹 가방은 다시 창고에 집어넣고, 부랴부랴 오캠장 취소분을 잡아서,
부녀캠을 위한 미니멀 기어로 다시 짐을 챙겼네요. 가방 7개. 가족캠에 비하면 정말 단촐합니다.
(뜬금없지만, 트라제야 사랑해. 아프지마. ㅠㅠ)
역시 주말, 강원도 가는 영동선은 시작부터 빨간색.
그래도 우린 급할게 없으니 아이스크림도 먹어가며, 쉬엄쉬엄 갔습니다.
1차 목적지 옥계.
원래 백패킹을 가려고 했던 '동해가 보이는 박지'를 도저히 그냥 갈 수 없어 올라가 보기로.
등산을 압도적으로 싫어하는 큰애를 소고기 사준다고(!!!) 달래가며 들머리로 들어섰네요.
사람이 거의 안다니는 듯, 초반부터 험한 등산로에 금방 지치고 맙니다.
"소고기! 이제 시작인데 벌써 지치면 어캐? 뽜이팅! 무브. 무브."
"아..빠도 산 싫어하고, 등산 싫어하고, 바다가 더 좋고..주절주절."
"거.짓.말.하.지.마!"
이미 짜증은 MAX에 다다라 폭발직전이..ㄷㄷㄷ
원래 그림은,
천천히 걸으며 중학교 생활도 얘기하고, 고민거리나 조언도 해주면서 감동의 시나리오를 그렸는데. 쿨럭.
현실은 아빠만 으쌰으쌰, 큰애는 한마디도 안하고 숨소리만 헉헉. 쩝.
그래도.
"올라올 땐 힘들었는데, 올라오니...좋네." 이 한마디에 아빤 덩실덩실~
남는건 사진뿐이라 셀카놀이 충분히 하고 하산했습니다.
(아참, 사람왕래 없고 동해바다 잘 보이고 박지로 참 좋더군요. 조만간 혼자 다시 오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소고기 사줘. 약속이니까."
그..그래. 동해에서 젤 맛있다는 고기를 사서 드디어 캠프장 입장.
부랴부랴 이삭줍기로 취소분을 잡은 것 치고는 꽤 좋은자리네요.
무릉계곡은 첨 와보는데, 여름엔 역시 계곡옆 나무그늘이 짱인듯. 성수기엔 난리가 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젤 먼저 해먹 걸어놓고 널브러져 등산의 피로를 풀다가 느즈막히 텐트를 쳐봅니다.
인터벌 촬영 재밌네요.
 
짜잔~ 2인, 이너를 밖으로 빼면 4인까지. 암튼 미니멀에 최적이라 생각하는 조합입니다.
개방감 쩌는 쉘터에 전용루프가 없어서 실타프를 쳤고, 큰애는 텐트에서 자고 저는 야침에서 잘 예정입니다.
힘든 등산에 따라와준 큰애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저녁을 차렸습니다.
사실 소고기가 다했죠. 정말 맛있었습니다. 아직도 큰애는 다시 먹으러 가자고..ㄷㄷㄷ
화장실 다녀오던 큰애가 "우리 텐트 짱 이뻐!" 라는 말에 텐풍도 찍고.
감성의 끝판왕으로 가스랜턴 켜고 나란히 드라마 시청을..
"따라오길 잘했네. 좋아좋아. 단톡방에 자랑해야지~" 크핡핡.
새소리에 일어나 해먹에 누워 무릉도원을 체험하던 중, 큰애가 기어들어왔습니다.
유유자적 해먹을 타다 느즈막히 아침상을 차리며, "어제는 등산을 했고, 오늘은 트래킹을 할거니까 많이 먹어둬."
아직 다가올 고행의 산길을 큰애는 모릅니다. 크흡.
쉬엄쉬엄 짐정리를 했는데 금방 끝나네요. 역시 미니멀로 가야..
짐은 차에 실어두고,
암것도 모르는 큰애의 텐션을 유지하기 위해 아이스크림 하나 물리고 트래킹을 시작했습니다.
여기가 그 유명한 무릉계곡 반석입니다. 여름엔 진짜 대박일 듯 하네요.
"입수할래?"
"싫어. 말리기 귀찮아."
그럼 그냥 고. 고. 무브. 무브.
첨엔 잘 간다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아빠는 진짜 산 싫어하고, 등산 싫어하고, 바다가 좋..주절주절."
"또. 거.짓.말.하.지.마!"
이미 짜증은 MAX에 다다라..어라? 어제도 비슷한 상황이었...ㄷㄷㄷ
돌아가야하나 계속 가야하나...그때 나타난 구원투수.
한마리, 두마리..멀리서만 봐도 귀엽다고 소리치던 다람쥐가 눈앞에서 궁뎅이를 보여줬으니.
"완전 귀여워!"
덕분에 기분전환하고 용추폭포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땡큐베리감사~
처음만난 쌍곡폭포. 시원하네요.
트래킹의 끝 용추폭포.
수고한 너를 위하여 마셔. 마셔. 벌컥벌컥.
다른 말 없이,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딸을 바라만봐도 흐뭇합니다.
"올라올 땐 힘들었는데, 또 올라오니...역시 좋네." 어제와 같은 이 한마디가 스스로에게 얼마나 큰 성취감을 주는지 알기에,
아빤 고리타분한 말 대신 멀리서 셔터만 눌렀네요.
그리고 이번 부녀캠의 하일라이트. feat. 다람쥐.
하산하는 길에 아까 궁뎅이를 봤던 그 다람쥐(...는 아니겠지만, 암튼 똑같이 생긴.)가 도망도 안가고 쳐다보더니.
땅콩을 내밀자 슬금슬금 다가오더란..?!
큰애는 숨도 못쉬고 부동자세로 "어떻해. 어떻해."만 외치고, 저는 "가만히. 움직이지마! 온다? 온다! 커헉."
으헉! 야생 다람쥐에게 먹이를?! 그것도 일케 가까이에서 찍다니!!!
"오늘 로또를 사야하나봐. 엉엉. ㅠㅠ"
"대박! 대박! 아빠아빠. 나 사진 꼭 보내줘. 단톡방에 난리날거야. 꺄아~"
다람쥐 덕분에 신나는 하산을 하고.
차에서 확인한 오늘의 걸음수. 이야..운동 제대로 했네요. 수명이 +1일은 됐을것으로.
무사히 집에 도착해서.
건강히, 즐겁게, 완벽한 주말을 선사해줘서 고마워. 우리딸.
앞으로도 행복하자. 우리.
보태기.
- 괜히 딸사진 찾아보다 요만했던게 언제커서 아빠 따라 갈 줄도 알고..
- 울컥한 딸바보 아빠였습니다.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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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로쇼군보더
너무 좋네요
부녀캠...
아기때 사진보니 제가 괜히 울컥.. ㅎㅎ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자라줘서 그게 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소원은 그거밖에 없어요. 시험에서 O점 받아도 괜찮..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