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중순에 소백산에 다녀온 이후  2달여만에 산행에 나섰습니다.

언제부턴가 추위가 싫어 겨울에 산을 찾는 횟수가 부쩍 줄어들더니 급기야 지난 겨울엔 한번도 산을 찾지 않은 것 같습니다.

추위도 추위지만 미세먼지가 수시로 날아오는 겨울이라 조망을 산행에 있어 제1의 가치로 생각하는 저에게

삼한사온의 겨울날씨는 산행을 기피하게 만들었습니다. 추위가 3일 지속되면 추워서 가기 싫고

따뜻한 날씨가 4일 지속되면 미세먼지가 동반되니 더더욱 가기 싫어지니.. 겨울산과 점점 멀어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조망을 즐기기엔 미세먼지보다는 한파가 몰려왔을 때가 훨씬 나은 편이라 간만에 겨울산에 가고자

아이러니하지만 '추위'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난 15일, 영하 9도가 예보된 태백산을 찾게 되었습니다.

깔끔(?)한 조망을 즐기려면 가능한 이른 시각에 정상에 올라야했기에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전날 미리 챙겨놓은 배낭을 들고 집을 나서 태백으로 향합니다.

영주를 지나 봉화로 가는 길...서서히 어둠이 걷히는데.....아~~~ 이런.....기대했던 것과 달리 대기상태가 영 시원찮습니다.

주변의 산들이 희뿌옇게 보입니다. 미세먼지 몰려온 날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신세계 최민식의 대사가 절로 나옵니다.. 이러면 완전히 나가린데~~~

진지하게 차를 돌릴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이미 절반 이상 왔기에 그냥 운동하는 셈 치고 고고싱~

그래도 춘양을 지나 강원도권에 들어서자 점차 대기가 깨끗해져가는 것에 약간의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예전같으면 3시간 거리인데 도로가 좋아져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유일사입구주차장에 도착, 주차를 하고 태백산 정상을 향해 출발합니다.

산방기간 폐쇄된 등로 대신 임도를 따라 올라 주능선에 오른 뒤 10여년만에 만나는 태백산 주목을 하나하나 카메라에 담으며 놀멘놀멘 오르다보니

어느새 정상인 태백산 장군단에 이릅니다. 그리고 사방으로 펼쳐진 풍경에.....

'우~와~~~~~~~~~~~~~~~~~~~~~~~~~~~~~~~~~~~~~~~~~~~~~~~~~~~~~~~~~~~~~~~~~~~~~~~~~~~~~'

감탄사가 나옵니다. 연달아 나옵니다. 계~~~~~~~~~~~~~~~~~속 나옵니다.

단언컨대 2018년 12월 15일의 날씨는 제가 산에 다니면서 만난 최고의 날씨였습니다.

서둘러 배낭을 내려놓고 광각 - 표준 - 망원으로 렌즈를 바꿔 끼워가며 조망사진을 담습니다.

북쪽으로 시선을 돌려 맨 먼저 설악산을 찾아 봅니다. 120㎞ 거리의 설악산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옵니다. 오대산, 계방산, 가리왕산,

치악산, 백덕산 등등 강원도의 여러 명산들을 확인하다보니 멀리 경기도 가평의 명지산, 화악산도 보입니다. 160㎞ 거리입니다.

남쪽으로 시선을 돌려봅니다. 일월산, 향로봉, 보현산, 팔공산, 비슬산, 가야산은 물론 덕유산도 아주 선명하게 보입니다.

무주리조트 스키장 슬로프도 확인될 정도입니다.

좀더 우측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충북 영동의 백화산, 충남 금산의 서대산 그리고 전북 진안의 운장산까지 보입니다.

운장산은 192㎞ 거리입니다. 미친 가시거리입니다.

이전까지 제가 본 최장거리 조망은 치악산~덕유산 조망으로 169㎞였는데 가뿐히 뛰어넘는 거리입니다.

조망사진을 다 담고 나서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두 '눈'으로 주변 조망을 즐기는 시간을 다시 한번 가집니다.

영원히 잊지 않도록 보고 또 봅니다. 그러다 문득 태백산에서 지리산 천왕봉을 보았다는 어느 산꾼의 글이 생각납니다.

그 분이 블로그에 올린 사진엔 가야산과 수도산 사이로 지리산 천왕봉이 보인다고 하는데 사진이 너무나 흐린 탓에 긴가민가했습니다.

방향은 맞긴 한데 태백산에서 지리산 천왕봉까지의 거리가 무려 222㎞나 되는 것도 그 분의 글을 확신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반신반의한 심정으로 가야산과 수도산 사이를 살펴봅니다.......그런데......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가야산에서 수도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너머로 미지의 봉우리가 살짝 머리를 내밀고 있는 것이 어렴풋이 시야에 들어온 것입니다.

배낭에 집어넣었던 망원렌즈를 다시 꺼내 카메라에 끼워서 자세히 살펴봅니다.

카메라를 든 두 손이 덜덜 떨립니다. 차가운 바람에 몸이 떨리는 건지...믿기지 않는 풍경을 보았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만...암튼 심하게 떨립니다.

저는 봤습니다. 태백산에서 222.6㎞거리의 지리산 천왕봉을 보았습니다. 감히 조망의 끝을 보았다 말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한정으로 말입니다.

천제단으로 자리를 옮겨 한번 더 조망을 즐기다가 그제서야 카메라 감도 설정을 ISO 250으로 해둔 것을 알아차립니다.

웬지 셔터스피드가 잘 나오더라니....-_-;  확인해보니 출발할 때부터 감도가 그렇게 설정되어 있었네요...

대략 난감, 멘붕에 빠지려 하지만 '2500으로 해두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자' 자기최면을 걸며 멘붕에서 빠져나옵니다.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 조망놀이에 빠져 한참을 더 조망을 즐기다가 하산을 결정합니다.

일찍 산행을 시작했더니 정오도 되지 않았는데 하산을 하는게 무척이나 어색하네요. 항상 정상에서 늦으막히 점심을 먹고 3~4시 무렵에

내려오곤 했기에 말입니다. 망경사로 내려와 컵라면으로 간단히 점심식사를 하고 예전에 가본 문수봉 대신 초행길인 반재~백단사 코스로

내려와 도로를 따라 20여분을 올라가 유일사입구주차장으로 돌아오며 원점회귀산행을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