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칼바람 맞으러 떠난 날. 하늘은 청명하고 목요일 내린 눈이 여태 산에 갈 곳 없는 손님처럼
가지마다 머물러 앉아 있었고요.
지난번 설악산 갈 때 이용했던 반더룽산악회를 한 번 더 이용했습니다. 조금 비싸긴 하지만 버스 내
음주가무 없고 시간 칼같이 지키고 (때로 이 근엄한 원칙이 야속하지만) 큰산명산 갈 때는 반더룽이
그래도 낫다고 판단.
출발은 좋았습니다. 선배도 나도 속보엔 자신있는 편입니다. 장비를 늦게 챙기느라 남들보다 출발은
15분 정도 늦었지만 금세 따라잡을 거라고 쉽게(!) 생각했죠. 하지만 착각이었습니다;;
설산이라 몸이 굼뜨고 어의곡~천동 코스에 대한 사전지식이 부족했습니다. 또 하나 배웠네요
30분쯤 지나니 몸에서 김이 나 하드쉘, 폴라플리스까지 벗고 집티만 입고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작년까진 산행 시작부터 끝까지 하드쉘 입고 오르내려도 땀 때문에 고생한 기억이 없는데
올해는 유난스럽네요. 지난번 관악산 팔봉능선 오를 때 내의가 땀에 젖은 채 집에까지 왔어요.
어찌나 몸이 오슬거리던지. 그래서 부지런히 입고 벗었습니다. 역시 나이탓..ㅠㅠ
어의곡에서 비로봉까지 가는 코스는 능선길 이딴거 없이 무조건 위로 쏩니다.
간만에 서혜부쪽 근육이랑 대둔근이 아프다고 야단이네요.
그래도 순록의 뿔처럼 가지마다 눈꽃이 길게 자란 숲에서 오르는 내내 감탄했습니다.
비로봉이 가까워져질수록 눈꽃이 더욱 만개해 사람들의 걸음이 자꾸만 느려집니다.
아직까진 바람이 참을만 합니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한참 올려다보면서 감탄만 합니다.
그러나 이내 오르막이 끝나고 지옥의 입구가 열리자 악마의 바람이 미친듯이 불어제낍니다.
중간에 장비 한번 추스릴 쉼터가 있겠지 했는데, 어의곡에서 오르는 길에는 그런 공간이 없어요.
간신히 고소모 쓰고 버프 뒤집어쓰고 두터운 고어텍스 장갑을 꼈지만 그 짧은 새에 바람에
노출된 피부는 고스란히 냉동 고등어처럼 얼어버렸습니다. 살짝 무서웠어요 ㅠㅠ
저 위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비로봉 정상입니다. 아직도 100여미터는 더 가야됩니다.
앞은 안보이고 바람은 사정없이 볼따구니를 할퀴고, 손이 곱아 스틱도 안쥐어집니다.
그나마 이번에 구입한 고디니 맨스챌린지 고어텍스 장갑이 아니었다면 꽤 고생했을듯;;
다행히 고소내의+동계집티+폴라플리스+하드쉘로 무장하니 바람은 세도 추위는 안느껴
집니다.
올해 새로 영입한 윈드스토퍼 동계팬츠도 톡톡히 제 몫을 해줬습니다.
딸랑 내복 위에 폴라텍 써말프로 팬츠 입고 간 선배는 허벅지가 얼어붙는줄 알았다네요.
그렇습니다! 겨울산행은 거침없는 지름만이 살 길!!
정상쪽으로 가며 뒤돌아본 비로봉 데크길.
어우 이 미친 바람을 맞으며 내가 저 길을 어떻게 걸어왔지 ㅠㅠ
이번에 영입한 그레고리 Z40 배낭이 너무 마음에 듭니다. 착용감 좋고 수납 확실하고
뒷태도 예쁘거든요 ^^ 홈앤쇼핑 쿨매 떴을 때 14만원에 사길 아주 잘했습니다.
안내산악회에서 우리에게 준 시간은 5시간 30분. 대략 12km정도 되는 구간이니까 넉넉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설산이다 보니 만만치 않습니다. 처음 내려서 장비챙기느라 15분,
중간에 간식먹느라 10분 정도 허비한거 이외에는 쉬임없이 걸었는데도 비로봉 쉼터에 도착한게
오후 2시가 지났지 뭐에요. 3시 30분까진 내려가야 밥이라도 먹고 버스에 올라탈텐데.
하지만 천동삼거리에서 천동주차장까지 6.1km가 남았습니다. 느긋하게 막걸리까지 한잔
하는 근사한 뒷풀이는 언감생심, 2시간 동안 거의 뛰다시피 내려왔습니다. 다행히 천동으로
내려오는 길은 비단길이네요. 3시 50분에 겨우 버스에 도착해서 산행 마쳤습니다.
산행거리 12.61km. 산행시간 5시간 10분.
첫 소백산이었는데 바람이 너무 광폭해서 솔직히 겨울에는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안듭니다.
또 가게 된다면 김서림 방지제를 반드시 챙겨야겠고(안경잽이들의 슬픈 천형 ㅠㅠ)
중대장급 헤비다운에 대한 욕심이 있었는데 깨끗이 잊었습니다. 방풍 좋은 하드쉘이면
어지간한 추위는 충분합니다. 어차피 산에서는 거의 대부분 행동식으로만 연명하다보니
오래 앉아서 뭘 만들어 먹질 않거든요. 경량패딩만 비상용으로 패킹하고 다녀도
올겨울 산행은 무난하게 보낼 듯 하네요.
이제 올해는 덕유산이나 한라산만 한번 더 다녀오면 눈구경은 졸업해야겠습니다 ^^
| |
|
등록안내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