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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의 정치성향
분류: 역사학
이름: 먹돌새기


등록일: 2020-12-03 13:27
조회수: 266 / 추천수: 0





세자의 정치적 성향은 소론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임오화변의 원인을 노론과 소론의 당쟁에서 찾는 견해가 유력하게 제시되기도 한다.

세자가 소론에 가까운 정치적 성향을 가졌다는 판단의 중요한 근거는 1755년(영조 31) 2월에 발생한 나주 벽서 사건이다. 그때 세자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갖기에 충분한 20세의 청년이었다.

그 사건은 나주 객사에 “간신들이 조정에 가득해 백성이 도탄에 빠졌다”는 내용의 벽서가 붙은 것이었다. 범인은 영조 초반에 숙청된 소론의 중심 인물 중 하나인 윤취상()의 아들 윤지()로 밝혀졌다. 그는 나주에 귀양 가서 몰래 역심을 품고 조정을 원망하며 같은 무리들과 체결하여 흉서()를 펼쳐서 걸은 것이었다. 이 사건은 탕평의 틀이 깨지고 정국이 노론 중심으로 돌아가는 계기로 작용했다고 평가된다.

앞서 본대로 이때 세자는 대리청정을 하고 있었다. 이 사건에서 세자는 소론을 옹호하는 태도를 강하게 나타냈다. 사건에 연루되었다고 사직한 소론의 영수 이종성을 만류하고, 유배된 소론 인물을 극형에 처하거나 처벌을 확대해야 한다는 노론의 주장을 모두 거부한 것이다.

그 뒤에도 이런 태도는 지속되거나 강화되었다. 세자는 서명응()ㆍ서명선() 등 소론 인물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면서 송시열ㆍ송준길의 문묘배향이나 김창집(노론 4대신의 한 사람)의 석실서원() 배향 같은 노론의 주요한 요청을 거부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노론은 세자에게 큰 불만을 갖게 되었다고 평가된다.

[네이버 지식백과]사도세자 [思悼世子] - 부왕에게 사사된 비극적 운명의 세자 (인물한국사, 김범, 장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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