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잠들기 전 그날의 대화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우리가 싸운 이유, 그녀가 힘들어하는 이유. 모든 것이 나에게는 낯설고 충격적이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내 사랑은 이제 그녀에게 짐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학교에 다시 가면,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 내 마음속에는 불확실함만 가득했다.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건 불안감과 두려움이었다. 내가 그녀에게 더 많은 시간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 외롭게 만들고, 결국 그렇게 멀어져 버릴 것 같았다. 그럴 바에는 내가 사라지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 우리, 잠깐 만날 수 있을까?
그녀가 먼저 연락을 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동시에 그리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내 걱정도 스며들었다. 그녀가 나를 만난다는 건, 어쩌면 더 많은 싸움과 갈등을 의미하는 건 아닐까? 이 관계는 정말로 계속할 수 있는 걸까? 그래도, 나는 그녀를 보고 싶었다. 만날 수 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을 찾아야만 했다. 약속한 시간이 가까워지고, 나는 그녀를 기다리며 마음속으로 수없이 많은 말들을 정리했다. 내가 해야 할 말들, 그녀가 전할 말들. 모든 것이 잘 풀리기를 바랐지만, 불안한 마음도 커져갔다. 몇 분 후, 그녀가 다가왔다. 평소보다 조금 더 지쳐 보이는 얼굴. 그 눈빛 속에는 깊은 고민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오빠, 잠깐 얘기할 수 있을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무슨 일이야?” “오늘은 내가 먼저 말할게. 우리가 계속 만나면서 자꾸 어긋나고 싸우는 게 너무 힘들어. 오빠가 나를 너무 많이 붙잡는 것 같아서 나도 그게 부담이 되더라. 내가 바쁘고 힘든 건 알겠지만, 오빠도 너무 예민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도 힘들어…”
그녀의 말에 나는 순간 멍해졌다. 그동안 내가 그녀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주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녀가 나에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너무 아프게 다가왔다.
“내가 너무 미안해.”
내 목소리는 떨렸다.
“너에게 더 많은 여유를 주지 못한 것 같아. 나도 너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했는데, 자꾸 너의 마음을 붙잡고 있었던 거야. 너무 불안했어.” “불안하다고 했지? 나도 그래. 오빠가 나를 그렇게 불안하게 만들더라.”
그녀의 목소리에도 떨림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계속 이렇게 서로를 쥐고 있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
그녀의 말이 내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나도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우리가 계속해서 서로에게 의지하려는 한, 이 관계는 점점 더 지쳐갈 것이다.'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우리가 계속 이렇게 할 수 없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럼, 우리가 이렇게 멀어져야 하는 걸까?”
그녀는 한동안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진심 어린 눈빛으로 나에게 대답했다.
“오빠, 나도 사랑해. 하지만 우리가 계속 이렇게 있으면, 더 많이 상처받을 것 같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이 무너지는 걸 느꼈다. 사랑은 했지만, 그 사랑을 지켜가기엔 두려움과 자격지심이 너무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이제는 상처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럼, 우리가 이렇게 끝내는 게 맞는 걸까?”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잠시라도 우리가 서로를 놓지 않으면, 더 큰 상처가 될 것 같아서… 이게 맞는 것 같아.”
그 순간, 내 가슴은 찢어지는 듯한 아픔으로 가득 찼다. 헤어진다는 말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를 놓아줘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 우리 끝인 거야?"
그녀는 내 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멀어지면, 다시 서로를 더 잘 알게 될지도 몰라. 너무 오래 함께 있으면, 그 사랑도 흔들리니까… 시간도 필요하고,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것도 중요해.”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아쉬움과, 그리움이 가득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놓았다.
서로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이 더 이상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내 손을 천천히 놓았다. 그 따뜻했던 온기가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손끝에서부터 스며드는 차가운 공기가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 마치 마지막 남은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붙잡고 싶었다. 단 한 번이라도, 그녀의 손을 다시 잡을 수 있다면... 하지만 나는 알았다. 우리가 지금 손을 맞잡는다고 해도, 그건 단지 이별을 미루는 것뿐이라는 걸. 그녀는 나를 바라보았다.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지만,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하는 듯했다. 그 모습이 더 가슴을 아리게 만들었다.
“잘 지내, 오빠.”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그 안에 담긴 수많은 감정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나…"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고, 그 안에는 수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끝까지 말을 잇지 않았다.
나는 기다렸다. 혹시라도 그녀가 마음을 바꿀까 봐. 혹시라도 다시 돌아와 내 손을 잡아줄까 봐. 하지만 그녀는 결국 조용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치 애써 괜찮다고 말하는 듯한 미소였다. 그녀가 등을 돌리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손끝을 움켜쥐었다.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붙잡는다고 해서, 우리가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붙잡는다면 오히려 더 깊은 상처만 남게 될 것이다. 그녀가 멀어질수록, 내 안에 남아 있던 말들도 점점 가라앉았다.
'사랑해.'
마지막까지 전하지 못한 그 한마디가, 차가운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그녀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천천히 눈을 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