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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제대 후 가장 먼저 마주한 현실은 경제적 어려움이었다.
통장 잔고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고, 복학하려면 등록금도 마련해야 했다.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 없었고, 대출을 받기에는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찾은 일이 놀이동산의 퍼레이드팀 아르바이트였다.
화려한 의상을 입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아이들에게 웃음을 주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생계를 위한 일이었지만, 무대 위에서는 느끼지 못한 새로운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반짝이는 조명 아래에서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춤을 추다 보면,
잠시나마 현실의 무게를 잊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퍼레이드 도중 그녀를 처음 마주했다.
아니, 그녀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누군가를 보고 이렇게 가슴이 뛰는 건 처음이었다.
그녀는 놀이동산의 식음료 매대에서 일하고 있었다.
긴 머리를 질끈 묶고, 빠르게 움직이며 손님들에게 음료와 간식을 건네는 모습.
햇살 아래 환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은 이상하리만큼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첫눈에 반한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그때부터 나는 퍼레이드를 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찾았다.
관객들이 즐겁게 웃고 있을 때, 그녀도 그 안에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자꾸만 시선이 갔다.
몇 번을 지나가다 보니, 그녀도 나를 알아보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리고 어느 날, 정말 사소한 일이었지만 그것이 우리 이야기의 시작이 되었다.
"오빠, 오늘 동작 틀렸죠?"
"봤어?"
"완전 티 났어요."
그녀의 장난스러운 말에 나는 얼굴이 빨개져 버렸다.
그렇게 시작된 작은 대화들은 점점 길어졌다.
공연을 마친 후 퇴근길에 같이 걸으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어느새 그녀를 향한 감정이 깊어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 감정을 인정하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등록금을 벌어야 하는 아르바이트생일 뿐이고, 그녀는 놀이동산에서 빛나는 사람이었다.
괜히 자격지심이 들었고, 나 혼자만 이 마음을 키우는 건 아닐까 불안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그녀를 피하기 시작했다.
마주치면 어색할까 봐, 마음이 들킬까 봐,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나쳐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나를 찾아와 물었다.
"오빠, 왜 자꾸 나를 피하는 거예요?"
그 순간,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피한다고? 아니… 나, 그런 거 아닌데?"
그녀는 내 반응을 지켜보며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말했다.
"아니면… 나 좋아하는 거 맞아?"
그녀의 말이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 갑자기. 너무 갑작스러워서. 아니라고,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 입은 내 의지와 다르게 움직였다.
"응, 좋아해."
말을 내뱉는 순간, 나 스스로도 당황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숨이 턱 막혔다.
그런데 그녀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미소를 지으며 내 손을 잡았다.
"나도 좋아해."
그 순간, 놀이동산의 불빛이 더 환하게 느껴졌다.
쏟아지는 조명도,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모두 배경이 되어 주는 것만 같았다.
"근데 왜 자꾸 나 피하냐고. 난 요즘 오빠가 자꾸 생각나는데!"
나는 이제야 조금씩, 그녀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도망칠 이유도, 감출 이유도 없었다.
"내가 피한 거 눈치챘어?"
내가 웃으며 묻자, 그녀는 장난스럽게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럼~ 오빠가 그런 거 아니었으면, 내가 오빠 피해줬을 거야. 오빠 너무 잘생겨서."
그녀의 귀여운 농담에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고, 나는 그녀의 손을 조금 더 꼭 잡았다.
그녀의 체온이 따뜻했다.
마치, 내게 온기를 전해주는 것 같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