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공기가 선선했다. 가로등 불빛 아래 길이 조용히 늘어서 있었고, 가끔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가지가 살짝 흔들렸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불러냈다.
평소처럼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걷고 있었지만, 오늘만큼은 가슴이 조금 더 두근거렸다.
"오빠, 오늘은 왜 이렇게 조용해? 나 심심한데?"
그녀가 장난스럽게 말을 건넸다. 평소 같으면 가볍게 받아쳤겠지만, 오늘은 그러지 못했다.
"…좀 생각할 게 있어서."
그녀는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별말 없이 내 옆에서 함께 걸었다. 몇 걸음 더 나아가다 나는 갑자기 멈춰 섰다.
"왜?"
그녀도 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 네가 좋아."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나는 한 번 더 숨을 들이쉬고 이어 말했다.
"처음엔 네가 나한테 너무 과분하다고 생각했어. 네가 나한테 먼저 고백한 것도, 먼저 다가와 준 것도 다 고맙긴 한데… 나는 계속 망설였어. 내가 너를 좋아할 자격이 있나 싶어서."
그녀는 조용히 내 말을 들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그런데 이제 그런 거 다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냥… 네가 좋고, 너랑 같이 있고 싶어. 나, 너 진짜 많이 좋아해."
한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녀는 내 눈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씩 웃었다.
"그럼 이제야 공식적으로 내 남자친구 되는 거네?"
그녀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하며 한 발짝 다가왔다.
"그럼… 축하 기념으로 또 해줄까?"
"뭘?"
내가 되묻기도 전에 그녀는 살며시 내 목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익숙한, 그러나 여전히 두근거리는 감촉이 닿았다.
나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조금 더 깊이 입술을 맞췄다.
입술이 닿은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하지만 곧 따뜻한 온기가 스며들었고,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내 의지로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녀는 조금 놀란 듯하다가 이내 작게 웃으며 내 품에 기대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지만, 놓고 싶지 않았다.
천천히 입술을 떼자, 그녀는 내 품에서 얼굴을 들고 나를 바라봤다. 장난기 어린 미소가 떠올랐다.
"이제야 좀 내 남자친구답네."
"…그래?"
"응! 근데 오빠—"
그녀는 내 셔츠를 살짝 잡아당기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내가 먼저 하는 거 말고, 오빠도 좀 적극적으로 해 줘야 해. 알았지?"
나는 그녀의 기대 어린 눈빛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래. 이제부터는 내가 더 많이 할게."
"진짜?"
"응. 그러니까—"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다시 한 걸음 다가섰다.
"앞으로 잘 부탁해, 여자친구님."
그녀의 볼이 살짝 붉어졌다. 하지만 이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잘 부탁해. 내 남자친구님."
그녀의 손을 꼭 쥔 채, 나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이번에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그렇게, 나에게도 봄이 찾아오고 있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