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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가 끝난 후. 그녀의 명함을 다시 꺼내 본다.
어젯밤 내내 고민했던 그 번호를 이번엔 망설임 없이 누른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린 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보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 피곤해 보였다.
"나야. 잠깐 통화 괜찮아?"
"오빠? 어… 잠깐이라면 괜찮아."
그녀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반가움이 섞여 있었다.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돼? 어제 만났던 카페에서 8시에 보자."
"음… 괜찮을 것 같아."
"응, 그럼 이따 봐."
"응, 이따 봐."
전화가 끊기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끼며 미소 짓는다.
드디어 그녀를 다시 만날 기회다.
 저녁 8시, 약속한 카페에는 그녀가 먼저 와서 창가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본다.
그녀는 커피잔을 손에 들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내가 다가가자 그녀가 고개를 돌리며 미소 짓는다.
"오빠, 왔어?"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어딘가 피곤함이 묻어 있다.
"응, 오래 기다렸어?"
"아니, 나도 방금 왔어."
그녀는 살짝 웃으며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
어제도 얘기했지만...회사 일, 예전 놀이동산에서 함께했던 추억들..
그러다 대답을 듣지 못했던 질문을 다시 꺼냈다.
"어제… 내가 물었었지. 혼자냐고..."
그녀는 순간 당황한 듯 커피잔을 내려놓고 시선을 살짝 피한다.
"아… 미안, 어제 그랬지. 갑자기 전화가와서…"
"괜찮아. 그냥… 궁금해서. 지금은 어때? 혼자야?"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녀는 한숨을 작게 내쉬며 입을 열었다.
"사실… 요즘 좀 복잡해. 부모님이 자꾸 선 보라고 하셔서…"
"선??"
"응…"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다.
"부모님이 괜찮은 사람이 있다고 계속 말씀하셔서, 요즘 가끔 다른 사람 만나는 중이야. 아직 진지한 건 아니고, 그냥 만나보는 정도?"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렇구나… 다른 사람을 만난다고…"
"오빠, 오해하지 마. 그냥… 나도 잘 모르겠어. 부모님 말대로 해보는 거지 뭐. 근데 요즘들어 오빠랑 있었던 날들이 생각나더라. 마침, 어제는 헤어졌을때가 생각나서 카페에 간거였거든..."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분위기를 풀어보려 하지만, 내 표정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랩 알겠어."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다가 대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왔다.
자연스럽게 그녀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 속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얽혀 있었다.
그녀가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누르며, 한편으로는 아직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며 희망을 품었다.
길을 걸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집까지 바래다 줄까?"
"응, 고마워. 그래도 될까?"
"당연하지."
조용한 밤 공기 속에서, 거리를 좁히며 걸었다.
그녀의 집이 가까워지자, 나는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그녀의 집 앞에서 어떻게 말을 꺼낼지, 무엇을 해야 할지.
"오늘 이렇게 나와줘서 고마워. 괜찮았어?"
"응, 나도 고마워. 이런 시간… 오랜만에 좋았어."
"그럼... 음.. 벌써 집 앞아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아쉽다는듯 말했다.
"그러게.. 오빠.. 데려다줘서 고마워. 조심히 가."
살짝 손을 흔들며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손을 잡으며 한 마디를 남긴다.
"오빠… 괜찮다면, 다시 연락할게."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나는 여전히 그녀에게 장애물인 걸까…?' 그녀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다면서도 나에게 다시 연락하겠다는 그녀. 길게 한숨을 내쉬고, 천천히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