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공습을 단행한 지 100일이 된 가운데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의 제재를 받은 러시아가 변기부터 반도체까지 품귀 현상을 겪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제재로 인해 각종 물품 수급은 어려워지고 창고에 쌓여있던 재고는 떨어져 가격이 폭등하는 모습까지 나타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공습에 따른 러시아에 대한 서방 국가의) 제재가 소비자들을 강타하기 시작하면서 재고가 점차 줄고 있다"면서 "러시아인들이 일부 물건들에 대해 비싼 값을 치르거나 대체제를 찾고 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공항에서는 승객이나 수화물을 검사하는 장비의 수명이 다했는데도 구할 수가 없고, 상점에서는 세면대나 변기, 싱크대가 부족해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영화관들은 새로운 영화가 들어오지 못해 오래된 할리우드 영화나 소련 시대의 영화를 재상영하고 있다.
이에 러시아 우랄과 서시베리아 지역의 한 극장 관객 수는 지난 2월 이후 현재 70~80% 감소했다고 극장주가 밝혔다고 WSJ는 전했다.

이러한 상황은 반도체나 장비를 구해야하는 러시아 기업들에게도 타격을 주고 있다.
특히 반도체, 서버 등 기업과 군이 동시에 쓸 수 있는 기술에 대한 수출 제한은 러시아 경제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한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 통신그룹들이 5G 장비를 목구하고 '러시아의 구글'로 불리는 얀덱스나 러시아 최대 은행인 스베르방크의 클라우드컴퓨팅 제품이 데이터센터 서비스 확장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서방 국가의 반도체 기업 경영진은 "서버부터 컴퓨터, 아이폰까지 모든 것의 (러시아) 공급 경로가 사라졌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현재 삼성전자나 미국 인텔, 대만 TSMC, 미 퀄컴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러시아에 대한 반도체 수출을 모두 중단한 상태다.
러시아에도 JSC미크론, MCST, 바이칼일렉트로닉스 등 반도체 업체가 있지만 기술력이 떨어져 그동안 러시아는 인텔, 중국 SMIC, 독일 인피니온 등 해외 기업들에 의존도가 높은 상황이었다.
MCST는 최근 JSC미크론이 소유한 러시아 공장에서 생산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스베르방크가 MSCT가 개발 중인 엘브러스칩 실험이 완전히 실패했다고 평가를 내놓은 적 있어 이를 통한 반도체 대체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크지 않다.

상황이 악화하자 러시아 정부는 지난달 초 상표법을 예외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적용 대상에 인텔, 지멘스 등의 전자 부품부터 산업재, 직물까지 제3국을 통해 수입하는 것을 허용하는 조치를 내놨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컨설팅업체 인포라인의 이반 페드야코브 최고경영자(CEO)는 WSJ에 "정부가 충격을 완화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그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면서 "그들이 상황을 뒤바꿀 순 없을 것이며 이로 인한 경기 둔화와 소비자 지출 감소 등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