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희한하다. 아무리 차로 자주 가본 곳이라 해도, 바이크를 타면 전부 '처음 가는 곳'이 된다. 기온이 많이 낮긴 했어도, 오후부터 풀린다는 소식에 또 대뜸 라이딩을 나갔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아내를 출근시키고, 집을 좀 치워놓은 다음에, 고양이 루키 밥을 주었다. 그리고 두어 가지 원고작업을 손봤다. 얼른 나가고 싶은 마음에 일이 더 잘됐다.^^* 

안경을 끼는 라이더라면 100% 공감하는 것. 바로 '김서림'. 헬멧 쉴드까지도 김서림 방지 핀락이나, 김서림 방지필름으로 처리할 수 있지만, 안경만큼은 어떻게 하기 힘들어서 추운 겨울에도 쉴드를 살짝 열어놓기 일쑤다. 

  마침 안경을 고칠 때가 되어서 김서림 방지 코팅렌즈로 바꿨다. 불과 10분 밖에 안 걸리는 간단한 작업인줄 알았으면 진작에 할 걸 그랬다. 

집에서 양평 만남의 광장까지의 코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일단 '양만장'에 바이크를 타고 가는 걸 첫번째 목표로 삼았다. (차 타고서는 여러 차례 갔었지만...)

  안경 덕분에 AGV K-3 풀페이스 헬멧을 쉴드를 닫고 마음껏 달렸다. 정말 눈물 날 만큼 감동. 안경끼는 분들은 알리라. 겨울에 풀페이스 헬멧 쉴드를 맘놓고 닫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격인지를. 

모두들 찍는 바로 그 사진, 나도 한 컷.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국도 휴게소와 공공기관만큼이라도 '바이크 전용 주차라인'을 그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대단하셔! 이 날씨에 내려오신 거?"

  휴게소 사장님이신줄 나중에 알았다. 나를 보고 너무 친하게 말을 걸어서 나는 누군가 했는데, 누군가의 포스팅에서 보았던 양만장 대표님이셨다. 

양만장 남자화장실은 이렇게 생겼...(응?!) 안경과 헬멧 때문에 감동 먹어서 그만 나도 모르게 셀카 작렬... 

당연히(?) 바이크는 나 혼자였다. 혹시 다른 라이더를 한 분은 만나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한겨울 평일 낮이니 별 수 없다. 시즌을 기다려보는 수 밖에. 양만장 사장님 말로는 스키장 가는 차들도 하루에 200대씩 기름넣고 가는데, 요즘에는 하루에 80대밖에 안 온단다. 눈도 안오고, 춥기는 *럽게 춥고 날씨 때문에 장사 망쳤다면서 한숨 푹푹 쉬신다.  

  초콜릿과 커피로 당분과 카페인을 보충하고 두물머리로 향했다. 조금만 더 가면 강원도지만, 강원도 투어는 평균기온 조금 더 올라가면 가려고 한다. 

양만장에서 두물머리로 향하는 길. 햇살은 따사롭고, 도로는 여유롭고, 음악을 들으면서 엉덩이를 이리저리, 코너링도 해가면서 신이 났다. 노면이 안심스럽진 않아서 고속주행은 자제했지만, 그래도 이제 코너링의 재미가 좀 느껴진다. 지금 다시 서울-제주 바이크 투어를 간다면 훨씬 덜 지칠 텐데... 돌아보면 그 때는 정말 무식하게 힘으로만 타고 갔던 것 같다. ㅠㅠ 

바이크를 타고 처음으로 찾아온 두물머리. 바이크를 타면 어딜 가든 더 실감나고 신기하게 보이는 것 같다. 

두물머리 주차장 근처에서 놀던 고양이 세 마리. 

레드 하트의 누적 거리 2,000km 돌파는 두물머리에서 기념했다. 12월 25일에 출고해서 한 달만에 2,000km를 찍었다. 서울-제주 여행이 크긴 했지만, 추워도 부지런히 돌아다닌 덕분. 사고 없이 잘 다녀줘서 가장 고맙고, 어디든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어서 행복하다. 

2,000km Milestone 인증샷. 1000km 인증은 제주에서 했는데, 3000km 인증은 어디서 할려나?^^ 

나도 한 컷. 기분이 좋아서 그런가 오늘은 다른 날보다 셀카가 많다. (죄송..^^*) 

청둥오리 가족도 보이고, 옆에 두루미도 있다.   

강물은 추위로 얼었지만, 두물머리의 자연풍광은 내 마음을 녹여주었다. 

두물머리에서 빠져나오기 직전. 아쉬운 마음에 교차로에서 한 컷. 속도를 과시할 필요도, 라이딩 스킬을 뽐내지 않아도 좋았다. 그저 자연 속에 파묻혀 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쉼이 되어준 시간. 오기를 잘했다. 

돌아가는 길은 올 때와는 다르게, 강 위쪽을 따라 남양주-구리-상봉-월곡을 지나는 루트로 잡았다. 청량리-천호대교-하남을 지나는 길도 좋았지만, 남양주로 돌아나가는 길도 좋았다. 

  집에 도착한 시간이 어느덧 4시. 꼬박 96km, 2시간 40분여를 달린 셈이다. 중간에 두물머리 구경도 하고 양만장에서 진득하게 커피도 마셨는데 딱 5시간 걸렸으니 콧바람 쐬기로는 나쁘지 않다. 만약 라이딩을 나가지 않았더라면, 어영부영 낮잠자고, 드라마나 보면서 소일했을지도 모른다.

  풍경, 음악, 생각, 그리고 레드 하트의 소리, 사람들, 그리움, 나, 자연, 인생, 바이크와 함께 움직이는 몸과 동작들.    

  할 일이 없는 건 아니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바이크와 라이딩에 시간과 돈을 쏟는 건 다름아닌 내 삶을 진짜 펄펄 살아있는 날것으로 만들고 싶어서다. 정해진 일과나 의무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반응을 일으키기 위해서. 

  글을 쓰는 사이, 오후 5시가 되었다. 그래도 제법 날이 밝다. 이제부터 일해도 충분하겠다. 에너지를 얻어왔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