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림 감독이 연출한 <비상선언>은 한 남자가 하와이행 비행기 안에서 테러를 일으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얼마 전까지 제약회사의 연구원으로 근무해온 진석(임시완)은 공항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타는 비행기를 알아봅니다. 때마침 딸과 함께 하와이행 비행기를 타려고 하는 재혁(이병헌)과 시비가 붙은 진석은 그 비행기의 티켓을 끊습니다. 한편 형사인 인호(송강호)는 아내를 홀로 여행을 보내주는데 그곳이 바로 하와이입니다.

영화는 거의 시작과 동시에 사건이 발생합니다. 진석이 몰래 숨겨온 화학 약품으로 비행기 안을 온통 바이러스의 전염 대상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지상에선 동네 꼬마들의 제보에 의해 진석의 의심스러운 개인방송을 알게 되고 진석이 하와이행 비행기를 탔다는 것을 알게 된 인호는 아내를 위해서라도 더욱 더 이 사건에 깊게 관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건의 총 책임자인 국토부 장관 숙희(전도연)와 청와대 위기관리센터 실장 태수(박해준)은 서로의 의견을 달리 하며 이 테러를 어떻게 막을지 고민을 합니다.

일반적인 하이재킹 영화와는 전혀 다른 흐름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입니다. 수많은 하이재킹 작품에선 스톡홀름 신드롬으로 이야기가 진행될 수도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범인과 승객이 대립하면서 긴장감을 끝까지 진행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선 주인공의 의도가 너무나 명확합니다. 스포일러라 더 이상 언급하긴 힘들지만 흔한 공식의 이야기로는 진행되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테러 이후에 집중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러니까 화학 테러가 승객들에게 전염되면서 희생자가 발생하고 서로 다른 의견들이 승객 사이에서 벌어지고 지상에서도 정치적인 혹은 외교적인 문제로서 이 테러를 바라봅니다. 하지만 이를 넘어선 누군가의 숭고한 희생으로 인해 이 테러는 긍정적으로 해결이 되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아쉬운 건 결국 개인의 희생이 시스템보다 앞선다는 게 너무나 안타까웠고 언제나 개인의 희생을 은근히 바라는 거대 조직의 모습은 조폭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감독은 이런 모습을 직시하고 깊게 파고 듭니다.

아마도 이런 낯선 하이재킹물은 조금 호불호가 나뉠 수도 있어 보입니다. 기대한 방향과 전혀 다른 이야기의 줄기에 낯가림을 하며 적응하지 못하면 이 영화를 충분히 즐기긴 힘들 것 같습니다. 하지만 후반부에 엄청난 스펙터클을 누구나 즐길만한 이미지로서 제공됩니다. 베이스 음의 웅장함과 동시에 스피디하게 전개되는 편집은 마치 비행기를 관객들이 직접 타고 있는 듯 한 체험을 하게 해줍니다.

엄청난 캐스팅의 작품으로 많이 알려진 <비상선언>은 어쩌면 이 여름 시즌에 딱 어울리는 텐트폴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과연 기존 관습적인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한 이 작품의 성과는 어떨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