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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죽음에서 시작되는 삶의 이야기
뉴스컬처 기사제공: 2021-06-17 19:39:26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리뷰
한 명의 배우가 표현하는 16개의 캐릭터
빈 무대 채우는 영상·조명·음향

[뉴스컬처 이솔희 기자] 죽음이 파도치듯 밀려오고 생이 어렴풋이 귓가를 맴돈다.
죽음에서 시작되는 삶의 이야기가 감각적인 영상, 생동감 넘치는 음향과 어우러져 무대 위에 펼쳐진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19세 청년 시몽 랭브르의 심장 이식 과정을 둘러싼 24시간의 기록을 담았다.
프랑스 작가 마일리스 드 케랑갈의 동명 소설을 1인극 형태로 각색한 작품이다.


'쿵쿵' 심장 박동 소리가 공연장을 가득 채우다가 이내 멈추고, 무대 전면에 빨간 숫자가 떠오른다.
새벽 5시 49분 59초. 시몽의 심장을 둘러싼 24시간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바다 한가운데서 파도를 가로지르며 심장이 터질 듯한 벅찬 환희를 맛보는 시몽. 그러나 극한의 행복감을 느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몽은 교통사고로 인해 뇌사 상태에 빠진다.



시몽의 펄떡이는 심장은 또 다른 생을 찾아 나선다.
그때부터 가족, 의사, 장기 코디네이터 등 그의 심장을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가 하나둘씩 꺼내어진다.
텅 빈 무대 위에 선 단 한 명의 배우가 과장이나 희화화 없이 16개의 인물을 연기하는데, 각 인물을 표현함에 있어서 조금의 부족함이 없다.
초연에 이어 또 한 번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무대에 돌아온 손상규는 때로는 무덤덤하게, 때로는 익살스럽게 인물을 그려내며 관객의 몰입을 돕는다.


무대에는 한 개의 테이블과 의자가 전부다.
하지만 전면의 스크린을 통해 보여지는 완성도 높은 영상이 작품을 풍성하게 한다.
시몽이 파도를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에는 세찬 파도의 영상이 무대를 가득 채우며 관객이 시몽과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을 준다.
적재적소에 사용되는 조명은 상황을 설명하고, 작품의 웅장함을 더하는 등 제 몫을 톡톡히 한다.
영상과 조명이 만들어내는 몽환적인 이미지가 차곡차곡 쌓아 올려지면, 어느 순간에는 삶과 죽음이 부유하는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잘 보는 것만큼 잘 듣는 것이 중요한 작품이다.
일정한 리듬으로 울려 퍼지는 심장 박동 소리는 긴장감과 경외감, 묘한 설렘 등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삶의 마지막 순간 시몽의 귓가에 스며드는 부서지는 파도 소리는 우리의 심장 박동과 맞닿으며 벅찬 공허함을 안긴다.
눈을 감고 나서야 비로소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들이다.


이처럼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장기 이식이라는 소재를 통해 누군가의 삶이 끝나고, 누군가의 삶이 새롭게 시작하는 24시간을 그려내며 생명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렇게 차분한 마음으로 공연장을 빠져나와 정동길을 걷다 보면, 지금 이 순간 내 심장이 뛰고 있다는 사실이 생경해진다.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오는 27일까지 정동극장에서 공연된다.


사진=프로젝트그룹 일다


이솔희 기자 sh040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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