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로커'에서 '소영' 역을 연기한 배우 이지은(아이유)[사진=CJ ENM, 영화사 집] 아이유는 잘 자라고 있다.
지난 2008년 만 15세의 나이로 데뷔한 그는 '너랑 나' '마쉬멜로우' '좋은 날' 등 사랑스러운 분위기의 곡을 통해 '국민 여동생'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매력적인 음색과 뛰어난 작사·작곡 실력으로 음악 세계를 넓히며 '국민 여동생'이 아닌 '시대의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스물셋' '분홍신' '팔레트' '블루밍' '러브 폼' 등을 통해 성장하고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주었고 자신만의 영역을 공고히 만들었다.
필모그래피도 마찬가지다.
2011년 '드림하이'를 시작으로 '최고다 이순신' '예쁜 남자'까지 자신의 음악과 닮은 사랑스럽고 명랑한 캐릭터를 보여주었다.
대중이 기대하는 '국민 여동생'의 모습이었을지는 모르겠으나 배우로서는 미흡했다.
때로는 혹평에 시달렸고 "연기 말고 노래에 집중하라"는 지적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해냈다.
천천히 한 걸음씩 나아가고 성장하며 어느새 시청자들을 물들였다.
'아이유'가 아닌 본명 '이지은'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하며 더욱 호평을 얻었다.
특히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는 많은 창작자에게 영감을 준 작품이었다.
그는 '이지안' 역을 통해 가수 아이유가 아닌 배우 이지은으로 발붙이게 되었고 영화 '페르소나' '아무도 없는 곳' '브로커' 등을 통해 영화계까지 장악했다.
아이유, 이지은은 여전히 잘 자라고 있다.
"평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팬이었어요. '아무도 모른다' '어느 가족'처럼 무거운 주제를 담아내는 시선이나 배우의 연기 방식이 생각할 거리를 줘서 좋아했어요. 저는 그런 점들을 '재미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의미에서 '브로커'도 재미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영화 '브로커'에서 '소영' 역을 연기한 배우 이지은(아이유)[사진=CJ ENM, 영화사 집] 영화 '브로커'는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기를 다른 가정에 팔아넘기는 브로커와 아기 엄마의 기묘한 여정을 담고 있다.
극 중 이지은(아이유)은 아기에게 '데리러 오겠다'라는 글을 남긴 채 떠났던 엄마 '소영' 역을 맡았다.
'상현'(송강호 분)과 '동수'(강동원 분)는 도무지 속내를 알 수 없는 그에게 "아기를 잘 키워줄 적임자를 찾아주겠다"며 회유하고 소영은 그들과 함께 아기의 새 부모를 찾는 여정을 함께 하기로 하는 인물이다.
"작품을 끝내 놓고 막연히 '차기작은 엄마 역할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말도 안 되는 타이밍에 '브로커'와 '소영'을 만나게 된 거예요. 정말 신기하다고 생각했죠. 당시 엄마 역할을 해보고 싶었던 건 출산을 경험하거나 고비를 넘긴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연기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연기해 보고 나니 여전히 경험하지 못한 일에 대해 전부 이해하지는 못하겠더라고요. 다만 또 다른 엄마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다는 욕심은 생겼어요."
영화 '브로커'는 작품도, 캐릭터도 어느 하나 쉽게 느껴지지 않는 작품이었다.
이지은 역시 첫 상업 영화인 '브로커'에 대한 부담과 고민이 컸다고 털어놓았다.
복합적인 '고민'이었다.
"제가 시나리오를 받고 제일 고민했던 건 '송강호 선배님 앞에서 연기할 수 있을까?'였어요. 기절하고 제대로 연기할 수 있으면 다행이었죠. 이런 경험은 또 쉽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제가 크게 부담을 느끼고 고민하니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께서 편안하게 작품과 캐릭터를 설명해주셨어요. (감독님을) 많이 귀찮게 했죠. '소영'의 전사부터 심정까지 세세하게, 꼬치꼬치 캐물었어요. 때마다 애매하지 않은 정확한 답변을 주셨고요. 감독님께 많이 의지했죠."
그는 대선배 송강호와 연기를 맞출 때면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막상 호흡을 맞출 때면 떨림은 순식간에 멎어 들었다"고. 베테랑 연기자 송강호의 배려 덕이었다.
"송강호 선배님께서 정말 편안하게 대해 주시고 좋은 말도 많이 해주셨어요. 그 덕에 저도 현장에 잘 녹아들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영화 '브로커'에서 '소영' 역을 연기한 배우 이지은(아이유)[사진=CJ ENM]
'브로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한 첫 한국 영화다.
전작과 달리 직설적인 대사를 쓰고 직접적 감정 표현을 하며 "전작과 다른 결을 가졌다"는 평을 얻기도 했다.
"감독님의 초기작부터 열심히 관람한 입장에서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전작과 '브로커'의 화법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국가적 성격보다는 감독님 개인의 화법인데 말보다 눈빛, 분위기로 의미를 전달하는 식이죠. '브로커'의 경우는 대사를 번역하고 직역하는 과정에서 '태어나줘서 고마워' 같은 직설적인 말이 나온 거 같아요. 그런데도 여전히 감독님다운 표현들이 많았어요.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화두를 던지는 것, 대사가 아닌 눈빛이나 분위기로 이어 나가는 일이 어렵게 느껴졌는데 여러 테이크를 시도하며 감독님 생각에 가까워질 수 있었어요. 그 과정이 값지다고 여겨져요."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배우들에게 '마음껏 표현할 기회'를 주었다.
이지은 역시 대본에는 없지만 자유롭게 연기할 기회를 잡았고 자기 아이디어를 마음껏 담아낼 수 있었다.
"극 중 '해진'이 '우성'('소영'의 아기)의 이름은 어떤 뜻이 있느냐고 묻는 장면이 있어요. 이 장면은 정해진 게 없어서 자율성을 갖고 연기해볼 수 있었죠. '해진'이 편하게 움직일 수 있게끔 그의 손에 글자를 써주거나 눈을 쫓아다니거나 하면서 함께 대화할 수 있게 했어요. 감독님께서 특히 아이들과 호흡할 때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연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영화 '브로커'에서 '소영' 역을 연기한 배우 이지은(아이유)[사진=CJ ENM, 영화사 집]
영화 '브로커'는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올라 주연 배우 송강호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주었다.
영화제에서 처음 영화가 공개된 날에는 관객들이 12분간 기립박수를 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얼떨떨했어요. 우리 모두 경험이 없으니까 유일한 경험자인 송강호 선배님께 '정말 우리가 잘한 게 맞느냐'고 묻곤 했죠. 그 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르겠어요. '잘한 거 맞아요?' '실수하지는 않았어요?' 재차 확인하곤 했죠. 솔직히 정말 많이 떨었고 즐기지도 못했어요."
칸 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이후 배우 이지은에 관한 관심도 쏟아졌다.
해외 관객들 역시 그의 연기력에 찬사를 보내며 애정 어린 감상평을 남기기도 했다.
"시사회 다음날 (칭찬 가득한 감상평을 보고) 으레 하는 말이겠거니 생각했어요. 여유가 조금 생긴 뒤라 기사나 리뷰를 파파고(번역기)로 돌려보았는데 '와, 정말 내 얘기를 했네' 싶기도 하고요. 하하하. 그냥 칸에서 벌어진 모든 일이 신기하게 느껴졌었죠."
영화 '브로커'에서 '소영' 역을 연기한 배우 이지은(아이유)[사진=CJ ENM, 영화사 집]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지은은 꾸준히 성실하게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다.
연기자로서도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성장하는 중이다.
"어느 시점부터는 관성적으로 살게 되는데 연기를 하면서 그런 점들을 건드릴 수 있어서 참 좋아요. '소영'이 아니었다면 제가 미혼모, 입양 제도에 대해 이렇게까지 깊이 고민해보지 않았을 테니까요. 습관대로 생각하던 걸 재정비할 수 있다는 게 의미가 있어요. 또 하나 좋은 건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에요. 솔로 활동해도 팀으로 움직이지만 분명 외로운 순간이 찾아오거든요. 팀원들에게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도 있고요. 하지만 영화는 완벽한 팀 생활을 할 수 있어요. 모두 자기 역할이 있고 그걸 잘 해내면 되니까요. 명확하게 주어진 일을 해낸다는 게 안정감을 주더라고요. 어느 기간 동안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달려간다는 점도 좋고요."
이지은은 때마다 연기로 갈증을 느꼈던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캐릭터를 만나 왔다.
'나의 아저씨' '호텔 델루나' '브로커' 등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게 원하던 캐릭터를 만나온 것이다.
"작품을 선택할 때 심도 있게 고민하고 고르기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나?' '가능한가?'를 주안점으로 두는 것 같아요. 몸 상태나 시간상으로 여유롭지 않을 때도 있으니까요. 타이밍에 맞춰서 찾아오는 작품이 중요하죠."
영화 '브로커'에서 '소영' 역을 연기한 배우 이지은(아이유)[사진=CJ ENM, 영화사 집]
'브로커'를 마친 시점에서는 어떨까? '엄마' 역할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운명처럼 '브로커'를 만난 것처럼. 차기작 역시 그의 연기적 갈증을 풀어줄 수 있는 작품일지 궁금했다.
"음악적으로 긍정적이고 명랑한 모습을 보여 드리는 데 반해 (영화·드라마) 시나리오는 저의 어두운 면들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이 들어와요. 저의 새로운 코드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최근 무겁고, 사연 있는 역할을 주로 맡다 보니 '지금이라면 아주 일상적이고 고민 없는 역할도 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행히 '브로커' 다음에는 '드림'이라는 작품으로 관객분들과 만날 거 같은데 딱 그런 모습들을 보여줄 수 있을 거로 생각해요. 일상적이고, 무념무상 한 모습이요."
최송희 기자 alfie312@aju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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