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권성동 의원 페이스북 캡처 |
지난 17일 한국을 방한한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겸 총리는 한국에 하루(24시간)도 채 머물지 않았지만,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물론이고 정부와 재계 등 각계각층의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늦은 밤(오전 0시30분) 입국에도 한덕수 국무총리가 직접 공항에서 영접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 한남동 관저 입주 후 첫번째 외빈으로 왕세자를 초청했다.
대통령과의 회담, 오찬을 마친 뒤 왕세자 숙소에서 이어진 1시간여의 재계 차담회에는 국내 8곳의 대기업 총수들이 참석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 최태원 SK 그룹 회장, 이재현 CJ 그룹 회장 등 쉽사리 한자리에 모이기 어려운 총수들이 갑자기 잡힌 일정에도 회동에 흔쾌히 응했다.
왕세자가 당시 저녁(오후 8시30분)에 출국할 때는 그 전 주간 사우디를 방문했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환송에 나섰다.
엄밀히 말해 국가 최고 원수가 아니지만, 우리 정부와 기업은 최우방국 정상에 준하는 정성 어린 영접과 성의를 보였다.
그러한 환대는 곧바로 눈에 띄는 결과로 이어졌다.
당일 우리 기업들은 사우디아라비아 투자부를 비롯한 정부 주요기관, 기업들과 모두 26건의 계약과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총 300억달러(40조원) 규모의 체결로, 현재 전 세계가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국익 우선 외교로 얻어낸 최상의 성과라 평가할 만하다.
이보다 열흘 전 빈 살만 왕세자의 행보 못지않게 언론과 누리꾼즌의 큰 주목을 받은 국내 정치인이 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다.
권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글을 통해 ‘금융투자세(금투세) 시행을 유예해야 한다’고 밝혔는데, 통상 정치인들의 발언이 여야의 날선 공방이나 다수의 부정적 댓글로 소비되던 현상에 비해 이번 권 의원의 주장에는 모처럼 네티즌들이 한목소리로 큰 호응을 보냈다.
심지어 야당의 권리당원까지 권 의원의 주장에 힘을 보탰다.
금투세는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의 금융투자로 연간 5000만원 이상 소득을 얻었을 때 수익의 20%(3억원 초과분은 25%)를 세금으로 내야 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2020년 12월 금융투자소득에 대해 합산 과세를 해 조세 체계를 합리적으로 개편하자는 취지로 여야 합의로 도입했다.
다만 시장 혼란을 우려해 2년간 유예기간을 두었는데, 현재 유예기간이 곧 만료되고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상황이다.
권 의원은 “2020년 당시 주식시장은 호황이었으나, 최근 글로벌 경제위기로 우리 증시가 고점 대비 30% 이상 하락하는 등 침체기를 겪고 있고, 이러한 시기에 금투세가 시행되면 전체 주식 투자자 1400여만명 중 다수를 차지하는 개미(소액·개인)를 비롯해 큰 기관 투자 등도 동시에 빠질 수 있고, 이는 주가 폭락과 경제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유예 의견 주장의 배경을 설명했다.
전문가들도 이러한 의견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대주주 양도소득세를 회피하기 위해 연말마다 투매가 이뤄지는 현상처럼 금투세 도입도 자칫 시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분석이 주류다.
실제로 증시가 심리적 요인에 의해 상당 부분 움직인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금투세의 취지가 아무리 합리적이고 좋다고 해도 당장 도입하기는 무리수라는 의미다.
금투세 도입으로 장기 및 펀드 투자도 힘을 잃게 될 것이라는 주장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권 의원은 지난 25일 국회에서 금투세 도입에 대한 토론회(사진)를 열었는데, 정치인 토론회로는 이례적으로 현장뿐 아니라 라이브로 방송된 유튜브 분위기도 뜨거웠다.
당시 토론자로 참석한 기획재정부의 한 과장급 인사는 “한·미 간 금리 역전이 돼 있는 상태에서 금투세 도입 시 정부로서는 자본 유출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투자자 및 누리꾼의 우려에 공감을 표했었다.
빈 살만 왕세자와 비견되는 권 의원이 행보에 눈길이 간다.
먼저 빈 살만 왕세자는 여러 건의 국제적인 이슈로 한동안 국제무대에서 비난을 받거나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 등을 중심으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시장에 대량으로 풀린 자금이 인플레를 촉발하면서 에너지 부국 사우디아라비아가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인플레이션 와중에 중간선거를 앞둔 조 바이든 미국 정부도 빈 살만 왕세자에게 손을 내밀었고, 프랑스 등 주요국 정상들은 직접 만나기도 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이러한 시기에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동시에 자국민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가는 스마트 시티 프로젝트(사우디 비전 2030)인 ‘네옴시티’ 구상을 발표했다.
석유 일변도의 경제 의존도를 줄이고 친환경으로 나가고자 하는 이 프로젝트는 최근 이집트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7),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총 사업비 5000억달러(약 667조원)가 투입되고, 서울 면적의 44배 수준인 2만6500㎢ 규모의 신도시를 건설하는 네옴시티 프로젝트에 한국을 비롯해 주요국은 일제히 큰 호감을 표시하며 뛰어들었다.
외교와 국민의 관심사, 미래 이슈까지 3가지 모두 사로잡는 데 성공한 셈이다.
권 의원의 금투세 유예 의견 역시 정치권의 공방은 차치하고서라도, 국민 상당수가 간절한 희망을 품고 참여하는 주식 투자의 ‘진짜 민심’에 다가서는 결과를 가져왔다.
여야의 정치 공방에 따른 국민 피로와 국회의원 총선거만 바라보는 전당대회 주자들의 이슈에서 한발 빗겨나 국민의 직접적인 관심사에 불을 지핀 셈이다.
정치가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미래 먹거리 발굴에서 벗어나면, ‘잃어버린 10년’ 나아가 잃어버린 20년으로 곧장 치닫게 된다.
일본 정치가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 일반 국민에게서 점점 멀어진 것처럼 가짜 뉴스와 공방을 주고받는 한국 정치의 현장에서 이번 권 의원의 주장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빈 살만 왕세자의 네옴시티 제안에 우리 대통령과 정부, 재계가 절박함으로 한데 뭉친 것처럼 권 의원의 의견에 여야가 국민 여론을 반영하는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기를 기대한다.
지속가능한 사회는 손에 잡히는 미래를 그릴 수 있을 때만 실현할 수 있다.
서민금융과 부동산, 일자리, 시장물가뿐만 아니라 기후 대응과 탄소 중립, 에너지, 반도체 등의 이슈는 국민의 미래와 직결되어 있다.
정치가 가야 할 미래에는 이러한 내용이 맞닿아 있어야 한다.
대다수의 평범한 국민은 이제 그러한 이슈를 해결할 수 있는 리더를 희망한다.
김정훈 ICMA(국제자본시장협회) 사회적채권원칙그룹 위원 겸 유엔사회개발연구소 협력연구원 unsdg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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