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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쉽고 바르게-2]⑥ '결식아동 돕기' 대신 '엄마의 밥상'…전주시, 정책명에 '우리말 품격'
아주경제 기사제공: 2022-07-04 05:00:00
 

지난달 28일 전북 전주시청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왼쪽부터), 김승수 전 전주시장, 정혜인 우리말 사랑 운동가가 공공언어와 정책용어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육선희 작가]


“‘커먼즈 필드(COMMONZ FIELD)’는 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지난 6월 30일 퇴임한 김승수 전 전주시장은 시정을 이끈 8년 내내 공공언어 개선에 심혈을 기울였다.
정책은 시민을 위해 만들어졌다.
시민이 가장 알기 쉬운 우리말로 쓰는 것은 그에게 너무나도 당연했다.
 
김 전 시장은 ‘가장 전주스럽게’나 ‘전주다움’ 같은 말을 자주 사용한다.
시민이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
이를 위해 지역의 정체성이 필요했다.
누군가 ‘전주가 뭐가 자랑스러운데?’라고 묻는다면 ‘우리말을 사랑하는 도시’로 기억되길 바랐다.
 
전주시 같은 모범 사례와 달리 공공언어와 정책명 등에 외국어와 외래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이에 본지는 ‘공공언어·정책용어 전문가 좌담회’를 개최했다.
지난달 28일 전북 전주시청 시장실에서 열린 좌담회에는 김 전 시장, 정혜인 우리말 사랑 운동가,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이 참석했다.

2019년 개관한 ‘성평등 전주’. [사진=전주시]

 
◆ 외국어로 돼 알기 어려운 정책용어

 
정책용어는 정책의 첫인상이다.
정책용어만으로 모든 것을 자세하게 알 수는 없지만 대략적인 감을 잡게 된다.
 
‘지역 거점별 소통 협력 공간’은 행정안전부가 2018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지역 유휴 공간을 탈바꿈시켜 일반 주민, 민·관·산·학 등 다양한 분야가 함께 일상생활 속 지역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주민 참여 지역사회혁신 거점 공간이다.
 
‘커먼즈 필드(COMMONZ FIELD)’는 이 소통협력공간의 공동 상표다.
공유자원·공동체·규범 간 역동적 상호작용을 일컫는 ‘커먼즈(Commons)’와 현장·일대를 뜻하는 ‘필드(Field)’를 결합한 표현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일상 속 대화나 담론이 막힘 없이 공유되는 ‘모두의 공간’이 소통협력공간이다.
지방자치와 균형 발전을 위해 매우 의미 있는 정책이다.
전주에도 소통협력공간 1호점이 2019년, 2호점이 2020년 개관했다.
 
더 많은 사람이 쉽게 알 수 있는 이름이 필요했다.
행안부 사업이라 ‘커먼즈 필드’라는 명칭은 반드시 넣어야 했다.
전주시 명칭제정위원회에서 회의를 했고, ‘사회혁신 전주’ ‘성평등 전주’로 정했다.
공간 간판에는 부제처럼 아래쪽에 ‘커먼즈 필드’를 써놓았다.
이렇게 이름이 정해진 것은 명칭제정위원회 위원인 정혜인씨 힘이 컸다.
김슬옹 원장은 “공공언어가 지자체 노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며 “지역 공동체뿐만 아니라 중앙정부 등 국가 공동체가 하나로 맞물려 들어가야 개선될 수 있다”고 짚었다.
 
김 전 시장은 “돌봄이 필요한 주민이 살던 곳에서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주거·보건·의료·돌봄을 제공하는 지역 주도형 사회 서비스인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는 복지 쪽에서 굉장히 중요한 정책”이라며 “전주시는 이를 ‘지역사회 통합돌봄’으로 바꿨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많이 바뀌었다”고 되돌아봤다.

김승수 전 전주시장과 정혜인 우리말 사랑 운동가(오른쪽) [사진=육선희 작가]

 
◆ 전주시, '우리말 바르게 쓰기 조례' 등 제도화
 

국립국어원은 지난 4월 공공기관에서 사용한 사업명, 제도명, 행사명 등을 포함한 최근 3년치 정책명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국민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글로만 표기된 정책명에 대한 이해도가 62.2%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로마자(53.7%), 한글과 로마자 병기(55.8%) 순으로 나타났다.
 
국립국어원은 “쉬운 정책명은 정책명에서 해당 정책에 대한 취지를 쉽게 유추해 낼 수 있는 반면 어려운 정책명은 정책명에 로마자, 외국어, 어려운 외래어와 한자어가 포함되어 있어 그 내용을 가늠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제도화다.
김 전 시장은 2019년 11월 15일 '전주시 우리말 바르게 쓰기 조례'를 제정·공포했다.
우리말을 바르게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그 우수성을 계승함으로써 우리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조례를 제정했다.
 
조례에는 공문서 등 언어사용(제4조), 정책·행사 등 명칭(제5조), 지역어 및 한글꼴(전주완판본체 등) 보존(제6조), 우리말 바르게 쓰기 위원회 설치 및 구성(제7조) 등이 담겼다.
 
지난 4월에는 전주시 공공시설 등 외국어 명칭 사용 실태전수조사가 이뤄졌다.
외국어 사용 실내공간 명칭 자체정비, 공공시설명 소위원회 심의 안건 제출 등을 통해 실내공간명칭 93건이 우리말로 변경됐다.
 
세마나실은 교육실, 로비는 맞이터, 북카페는 책방, 멀티미디어실은 정보실, 아트마루는 상상마루 등으로 이름을 갈아입었다.
 
김 전 시장은 “감사과에 감사해 달라고 말했다.
만약에 ‘우리말로 변경이 안 돼 있으면 징계를 하겠다’는 말도 했다”며 “예산이 들어가는 일이라는 것은 알지만 돈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지금이 제일 빠른 길이기도 하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김승수 전 전주시장과 정혜인 우리말 사랑 운동가(오른쪽) [사진=육선희 작가]

 
◆ 시민과 시장의 협업
 

변화는 깨어 있는 시민에게서 시작된다.
12년째 전주에 사는 정혜인 우리말 사랑 운동가는 지인들 사이에서 ‘우리말 보안관’으로 불린다.
 
그는 잘못된 것을 보면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개인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문제점을 알리고, 시청 등에 직접 전화를 걸어 개선을 요구했다.
전주시가 ‘가든시티 전주를 만들기 위한 천만그루 나무심기’ 사업을 진행한다고 발표했을 때 그는 ‘가든시티’를 지적해서 ‘정원도시’로 고쳤다.
 
한 출판 간담회에서 정씨는 “가장 한국적인 도시가 전주다.
왜 영어를 쓰는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이 말은 그 자리에 있던 김 전 시장 머릿속에 오랜 시간 맴돌았다.
 
정씨는 “어떤 단체가 아닌 전주시민의 한 사람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글을 올리고 말을 한 건데 김 시장이 그냥 흘려듣지 않고 함께 해줬다”며 “한번 결정된 정책명을 바꾸는 것은 힘들기 때문에 정해지기 전에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시장님이 만약 귀 기울이지 않았다면 절대 바뀌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씨는 “우리말을 사용하려면 공무원뿐만 아니라 개개인 의식 변화가 있어야 한다”며 “우리말에 대한 자부심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스스로 회복하는 자연처럼 시민의 자발적인 노력이 중요하다.
 
우리말을 품은 정책명은 품격으로 이어진다.
우리말을 사용하면 마음을 담을 수 있다.
김 전 시장은 “밥 굶는 아이가 모든 도시에 수백 명씩 있다.
2014년 첫 번째 결제한 사업이 아이들에게 매일 도시락을 배달해주는 것이었다”며 “대부분 ‘결식 아이 돕기’라고 이름을 붙이는데, 전주시는 ‘엄마의 밥상’이라고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정책명”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전성민 기자 ball@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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