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들 최근에 '아이폰으로 옮기고 싶다'는 이야기 듣지 않으십니까?

최근에 LG가 스마트폰 사업은 아주 접었고, 삼전은 내돈주고 왜 광고를 봐야하나 하는 그런 논란들 때문에 예전에는 안드로이드 편하게 썼는데 어? 이제는 아이폰 한번 옮겨볼까? 하고 생각들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진지하게 이런 말씀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애플 페이만 되면 당장 아이폰으로 옮긴다" 근데 그거, 진짜 될까요?

얼마 전에 미국에 있는 간편결제 솔루션 업체 중에 한 곳이 미국 소비자들한테 '모바일 페이 서비스의 장애 요인이 뭔가요?' 하고 설문을 했었어요. 가장 높은 대답은? '모바일 지갑이 안전한지 걱정된다' 입니다. 이거야 시간만 지나면 해결이 될꺼에요. 그것보다 두 번째 답변. '모바일 페이를 받아주는 가맹점이 뭔지 모르겠다' 입니다. '내가 자주 쓰는 가맹점에서 모바일 페이 수용 여부를 모르겠다'는 유사 대답과 합치면 30%가 넘어요.

애플 페이의 본진이자 가장 많은 애플 페이를 쓰는 곳이 미국인데, 여기서조차 내가 쓰는 가맹점이 페이를 받아주는지 알 수 없어서 못 쓰겠다는 답이 상당히 많이 나왔다는 겁니다. 한국에 계신 형님들은 이해가 안 되죠. 삼페나 엘페는 신용카드 받으면 그냥 다 되잖아요? 카드 안받는 곳은 있어도 페이 안받는 곳은 없는게 상식인데요.

왜 한국에서는 통하는 상식이 미국에서는 안통하느냐. 페이 시스템 자체가 달라서 그래요. MST라고 그러는데 쉽게 말해서 삼성이나 LG의 페이는 전통적인 신용카드 결제기만 있으면 그걸로 그냥 다 됩니다. 그러니까 카드되는 곳은 페이도 되는거죠. 그런데 애플은 전통적인 결제 수단이 아니라 NFC라는 수단을 씁니다. 그래서 신용카드 받는다고 애플 페이가 되는게 아니에요. 애플 페이도 되는 전용 결제 단말기가 있어야 페이를 쓸 수 있는겁니다.

2019년 10월을 기준으로 한국에 보급된 NFC 결제 단말기, 그러니까 한국에서 애플 페이를 쓸 수 있는 가맹점 수는 3만 곳 정도 됩니다. 그런데 한국에 있는 카드 가맹점 수는 전부 합쳐서 300만 개가 좀 안되거든요? 1%밖에 안된다는 거죠. 요즘 나오는 결제 단말기는 NFC가 기본이라서 서서히 늘어나고 있기는 한데, 결제 단말기 자체가 하나에 10만원이 넘는 물건이다 보니 대기업이면 몰라도 사장님들 입장에서는 바꾸기가 좀 그래요. 그러니 확 퍼지기가 힘들단 말이에요. 지금 쓰는거 잘 되잖아요.

이게 끝이 아닙니다. 혹시 삼페나 엘페 쓰면서 '삼성이나 엘지가 수수료 얼마나 받아갈까?' 하고 생각하셨던 형님들 안 계십니까? 제가 답해드리겠습니다. 아주 약간(건당 수십원 수준)의 수수료를 떼긴 하는데 인증 업체에 주는 돈입니다. 그럼 애플 페이는? 0.15% 수수료를 애플이 가져갑니다. 사실상 제로 vs 0.15% 차이인데, 작은게 아니죠. 뭐 중국에서는 애플이 수수료율을 더 낮춰줬다고 하긴 하는데 꼬레아는 개꿀이니 그렇게 중국처럼 내려주긴 힘들꺼에요.

자, 글 읽는 형님이 카드사 대표라고 생각해보자고요. 애플 페이 물론 들여오고 싶죠. 이미지 엄청 좋잖아요? 근데 당장은 애플 고객들 우리 회사에 끌어온다고 쳐도, 당장 애플 페이를 보급하려면 하나에 10만원이 넘는 NFC 단말을 우리 부담으로 뿌려야 해요. 그러면서 매 건에 0.15%씩 수수료도 줘야해요. 더 큰 문제가, 보통 간편결제는 백화점 이런데보단 동네 마트 슈퍼 식당 이런데서 많이 쓴단 말이에요? 이런 곳은 큰형님들이 수수료 안내리면 죽여버리겠다고 해서 적자보면서 카드 결제 해주는 곳이에요. 근데 거기서 카드 사용하는 사람은 더 늘어나고, 애플에 수수료도 더 줘야해요. 감당할 수 있겠어요?

실제로 한국 금융업체들 중에서 까짓거 좋다 수수료 낸다! 하고 협상을 한 업체가 없는게 아니에요. 우리나라에서 이름좀 있다 싶은 금융사들은 전부 검토했거나 진지하게 협상까지 했다고 보시면 돼요. 그런데 아무데도 안했어요. 돈이 안된다 정도가 아니라 적자가 감당이 안될 것 같아서 그렇거든요. 게다가 애플에 수수료주기 시작하면 삼성에서 '어 그럼 우리는?' 그러면 어쩔꺼에요. 해외에서야 애플이 갑이니까 삼성이 그런소리 안 하지만 한국에선 삼성이 갑이니까 애플에 주는만큼 우리한테 안주면 삼페 빼버리겠다고 하면 오히려 혹 더 붙이는 셈이잖아요.

아주 먼 미래에는, 그러니까 언젠가는 NFC 결제 단말기가 풀려서 애플 페이가 들여오기 쉬어지긴 할꺼에요. 근데 그래도 일단 카드사에서 우리가 미친 적자 감수하고 들어갈께! 할 수 있어야 되고요. 둘째로 설령 그렇게 해도 삼페나 엘페처럼 99%에 가까운 가맹률을 보여주는게 아니에요. 얼마 전까지 1%였는데 여기서 늘어야 10%가 되고 20%가 되는거지 갑자기 99%가 될 수는 없잖아요? 그럼 뭐에요. 결국 카드든 현금이든 가지고 다녀야죠.

애플 페이 들어와도 삼페나 엘페를 대체할 수는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형님들은 될 것 같아 보이세요? 전 안된다고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