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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크아웃 치킨을 자주 먹던 추운 한겨울의 어느날.
우연찮게 보온도시락가방에 치킨을 넣어본 이후부턴
항상 치킨 테이크아웃하러 갈 땐 보온가방을 챙기곤 하였습니다.
까닭은,
보온가방에 넣은 치킨은 마지막 한조각을 다 해치울 때까지도
치신의 따뜻한 사랑이 식을 줄을 몰랐거든요.
이로인해 치신의 은총을 하나 흘림없이 혀의 돌기에 따사로히 내려놓을 수 있었죠.
이는 보온가방이 열을 잡아둔 덕분이었습니다.
(※단, 반드시 뚜껑을 살짝 열어놓아야 튀김옷이 눅눅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다 지난 달 문득,
피자에도 이게 적용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자도 치킨과 다를바 없이 집에 돌아오며 식기 마련이고 먹다보면 더 식거든요.
보온가방이 있어야 마지막 한조각까지 더 맛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죠.
그런 깜찍한 생각으로 보온가방을 주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피자의 특이한 형태상 보온가방 선택은 결국엔 피자배달가방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
하지만 막상 물건을 받고나서 보니
이 아이디어는 마냥 깜찍하지만은 않았는데,
이 피자배달가방이라는 것은 마치 관우의 청룡언월도, 장비의 장팔사모,
혹은 여포의 방천화극마냥
그 소유자가 누군지를 증명하는 강렬한 포스를 가진 장비였던 것이지요.
테이크아웃을 위해 이를 들고 나서는 순간,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 나를 여엇한 배달의 일꾼으로 볼 것이며,
또 그 오해가 아주 잘못되진 않은 것이,
내가 먹을 피자라 하더라도 결국 자가로 배달 중인 상황인 건 맞으니
손쓸 여지가 더더욱 없는 것이었죠.
일단 마음을 추스리며 벽장에 넣어 두었지만 시간은 애닳게 흘러만 갔고
드디어 피자가 매우 당기는 날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게 오늘이었죠. (물론 자정이 넘었으나 적당히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기왕 샀는데 써먹어 보긴 해야 겠다는 생각에, 피자배달 가방을 꺼내어 집을 나섰죠.
어제밤 영화관에서 데드풀을 본 것이 약간 도움이 되었습니다.
물론 뽀로로가 아닌데 뽀로로인형탈을 쓴 듯한 묘한 어색함은 있었지만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니 감내해야했죠.
제가 방문한 피자집은 집에서 매우 근거리에 있었지만 단 한번도 가보지 않은 피자집이었습니다.
배달어플에서 해당 브랜드 5천원 할인을 하기에 주문을 넣어본 것이었죠.
주소는 매장방문 직접수령으로 적고 피자 완성 예상시간에 맞춰갔죠.
그런데 막상 피자집에 도착해보니 피자가 안 만들어지고 있었는데,
매장의 배달어플 주문 수신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제가 도착해서야 뒤늦게 주문을 확인하고 피자 제작을 시작하더군요.
하지만 그다지 개의치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피자 퀄리티에 대해서도 큰 기대가 없었죠.
왜냐하면 첫째,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프랜차이즈 업체이기도 했고,
둘째, 배달어플 주문이었을 뿐더러,
셋째, 해당 브랜드 요일이벤트로 5천원 할인쿠폰을 적용받은 데다가,
넷째, 두판 주문 시 두번째 피자가격이 만원으로 뚝 떨어지는 메뉴로 주문했기에
이런 경우 그다지 좋은 결과물이 나오진 않거든요.
전 그냥 맘을 비운 채 의자에 앉고는
테이블 위에 피자배달가방을 올려놓고 피자가 만들어지길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뭔가 뒤통수가 따가운 듯한 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사장님이 저의 크고 우람한 피자배달가방을 힐끗힐끗 보고 계셨습니다.
저는 그 시선의 의미에 대해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아... 저 분 입장에선 내가 동종업계 종사자로 보이겠구나 싶었던 것입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이렇게 우람한 피자배달가방을 일반인이 구매해서
테이크아웃을 위해 가지고 다닐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어쩌면 국내에선 최초로 벌어진 일일 수도 있는 일이지요.
그만큼 피자집 사장님 입장에선 생각의 여지가 많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피자배달가방을 들고 찾아온 인간은,
피자배틀을 위해 경쟁피자업체에서 간판깨기하러 보낸 자객일 수도 있는 거고
혹은 근처에 개업을 앞두고 동향을 살피러 온 염탐자일 수도 있고,
그도 아니면 자기집 피자가 너무 입에 물렸거나..
가게가 장사가 안되어 폐업하고 가게 정리하다 남은게 배달가방 하나거나
아님 배달 도중에 배고파서 들른 배달맨인거죠.
어쨌든 뭔가 피자스런 일을 하는 사람처럼 보였을 겁니다.
따라서 이건 좋은 징조였습니다.
사장님이 피자맨으로서의 자존심이 있다면,
피자스러운 손님에게 허튼 피자를 내놓을 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배달어플로 할인쿠폰까지 먹여 주문하긴 했지만,
동료(?!)에게 야박할 리는 없어 보였죠.
그렇게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하는 와중에 어느새 피자가 완성되었고
피자 두판을 가방에 넣고 집에 왔습니다.
이 제품 이름이 2판 적색피자가방인 까닭은 피자 두판이 들어가는 빨간 피자가방이기 때문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피자는 맛있었습니다.
허튼 피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피자배달가방은 역시나 구매목적에 부응했습니다.
피자조각의 온도가 뜨겁게 유지된 상태가 오래 지속되다보니
마지막 조각을 집어들 때까지 만족스러운 식감이 유지되었습니다.
확실히 피자나 치킨은 따뜻한 상태에서 먹어야 맛있는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해 보온가방을 이용하는 것은 유난스러워 보일 순 있으나
유감스러운 일은 아닌 것 같네요.
이상 2판 적색피자가방 사용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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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하트
그냥 서로 눈빛을 교환했습니다.
뭔가 그 눈빛에 오해가 끼어있는 것도 같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