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잉글랜드 현재 브라이턴 앤 호브 앨비언 WFC에서 뛰고 있는 여자축구선수 박예은입니다.
감사한 기회로 제 이름의 칼럼을 쓸 수 있게 됐는데요. 짧은 칼럼 하나를 쓰기 위해 며칠 동안 고민하며 썼다 지웠다 했지만 무엇보다 즐겁고 설?습니다.
첫 번째 칼럼을 무슨 내용으로 시작할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한국을 벗어나 ‘영국’이라는 큰 무대에 도전하게 된 저의 축구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중 가장 크게 체감하는 ‘언어의 중요성’에 대해 오늘 좀 더 다뤄보고자 합니다.
어린 시절 축구를 생각해보면, 아버지와 오빠랑 즐겁게 했던 기억이 많습니다.
동네에서 축구공을 가지고 놀면서 자연스레 축구를 시작했고 좋아하는 마음이 커지면서 12살부터 본격적으로 부모님의 허락하에 축구를 시작했습니다.
그저 축구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많은 경기와 훈련을 하면서 축구에 대한 마음이 더욱더 진지해졌습니다.
감사하게도 20세 이하(U-20) 월드컵에 출전하고, A대표팀의 부름도 받게 되면서 점차 축구에 대한 식견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특히 다양한 나라의 해외선수들과 경기를 하면서 그들의 뛰어난 피지컬과 스피드를 몸소 느낄 수 있었죠. 그들과의 경기는 저에게 엄청난 자극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해외진출을 꼭 해야겠다’라는 목표를 가지게 됐습니다.
해외진출을 향한 마음이 점점 커지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해외 구단들과 콘택트를 시작했고 그렇게 지난해 7월에 현 소속팀의 오퍼를 받아 영국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토록 바랬던 해외진출을 이루었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기뻤고 ‘더 발전할 수 있겠다’는 설렘을 가지고 영국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축구 외적으로도 이겨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먼저 언어적으로 준비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현지에 와서 팀 선수들이랑 이야기하면서 금방 늘 거라고 생각해서 크게 언어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말을 못 알아들으면 보디랭귀지로 할 수 있을 거라고 가볍게 생각했고, 알아듣지 못하면 주변 상황 눈치 봐가면서 따라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었고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훈련할 때 감독님이 어떤 훈련을 할 건지, 어떤 규칙이 있는지, 왜 이 훈련을 하는지에 대해서 알아들을 수가 없어 헤매기 바빴습니다.
훈련마다 감독님이 주시는 코칭 포인트를 알아야 하는데 저만 놓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훈련할 때마다 새로운 규칙들이 생겨날 때도 잘 이해하지 못해서 팀 동료들이 수비를 더 해야 하는 상황도 생겼습니다.
이런 상황이 자주 생기다 보니 동료들한테 미안해지면서 플레이를 소극적으로 하게 되고 자신감이 점점 떨어지는 상황이 오기까지 했습니다.
경기 중 급박한 상황에서 서로 소통을 해야 할 때도 이해하지 못한 채로 경기하다 보니 약속된 움직임 속에서 저만 다른 곳으로 움직이는 상황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경기가 다 끝나고 나서 다시 친구들한테 물어봐서 그제야 이해를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경기는 끝난 뒤였습니다.
경기했던 것을 모니터해보면 제가 망설이는 순간들도 많고, 제가 내린 판단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주변 동료들의 외침을 듣고 움직이다 보니 반응하는 속도도 늦어지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면서 하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당연히 제 장점들의 플레이가 나오기 어려웠고, 주변 동료들한테 도움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축구를 혼자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축구란 단체로 하는 스포츠인데 ‘왜 나는 혼자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동료들과 이야기하면서 서로 원하는 것들을 잘 조율해가고 그 호흡이 서로 맞았을 때 득점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실점을 방지할 수 있었던 상황들이 생각났습니다.
정말 축구란 서로의 호흡이 맞았을 때 큰 시너지 효과를 내는 스포츠인데 ‘그 무리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구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료들은 제게 다가와 주고 같이 하려고 하는데 제가 잘 듣지 못하는 거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니, ‘내가 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언어의 중요성’을 체득하고 영어 공부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한국에 있는 친구 중 영어를 능숙하게 하는 친구가 있어서 과외를 받고, 팀에서도 영어 선생님을 붙여주셔서 1:1 수업도 들었습니다.
또 영어와 친해지기 위해서 넷플릭스를 볼 때도 영국 드라마 위주로 보고, 핸드폰도 영어로 언어를 바꾸고 노래도 팝송을 듣는 등 사소한 것보다 영어와 관련한 것들로 바꿔나갔습니다.
그래서 배운 것들을 사용하려고 동료들한테 질문도 많이 하고 능숙하진 않지만 대화하는 시간을 만들어가면서 시도 때도 없이 괴롭히는 중입니다.
동료들도 제가 열심히 하는 마음을 아는지 말도 이해할 수 있게 천천히 해주고, 문장을 만들 때 틀린 부분은 고쳐주고 자주 사용하는 일상 언어들을 알려주며(특히 비속어를 잘 알려주더라고요.) 더 가까워지고 동료들이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짐을 느꼈습니다.
그때 ‘그 나라의 언어를 하는 것은 그 나라를 존중하는 것이구나’라는 걸 깨달았고 6개월 차인 현재 조금은 의사소통이 가능해졌습니다.
‘한국에서 미리 공부하고 왔으면 좀 더 편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며 후회도 하지만 그 후회 덕분에 언어가 중요하다는 걸 깨닫고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이곳에서 제가 변하지 않으면 제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친구들과의 관계성을 형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운동할 때도 선수들과 소통이 되다 보니 제 장점의 플레이들도 나오고, 자신감도 올라가고, 서로 도와주고 격려해 주기도 합니다.
이제는 ‘내가 이 팀의 일원이구나’하는 소속감을 느끼는 등 변화들이 생겼습니다.
예전엔 출근할 때 ‘오늘은 동료들이 덜 질문했으면 좋겠다’는 걱정으로 시작한 하루였는데 이제는 동료들한테 어떤 질문을 할지, 어제 배운 단어는 어떻게 써볼지 등의 마음으로, 걱정은 사라지고 편안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축구를 위해서 해외에 도전했지만 그로 인해 언어를 배울 수 있는 환경에 살고 있고, 이것들을 잘 활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찾아온 작은 변화들을 느끼면서 언젠가는 ‘내가 이런 언어에 대해서 고민하며 힘들어했었지’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순간이 빨리 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가 축구 선수로서 더 성장하고 싶은 만큼 언어적으로도 지금보다 성장한 모습으로 ‘대한민국 여자축구에 보탬이 되는 선수가 되자’라는 마음으로 영국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또 오는 7월에는 호주·뉴질랜드에서 2023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 월드컵이 열립니다.
더 강해진 모습과, 발전된 모습으로 월드컵에 참가하고 싶은 목표를 가지고 지내보려 합니다.
우리 대한민국 여자축구와 여자축구선수 박예은에게 많은 관심과 응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 칼럼을 통해 다양한 주제, 여러 이야기로 팬 여러분과 소통하겠습니다.
정리=김진엽 기자
사진=박예은 선수 본인 제공
*박예은 선수는...
△대한민국 여자축구 국가대표 △브라이턴 앤 호브 앨비언 WFC(잉글랜드·2022∼) △WK리그 경주한수원(2017∼2022) △AFC 여자 아시안컵 출전(2022) △FIFA U-20 여자 월드컵 국가대표(2016) △AFC U-19 여자 챔피언십 청소년대표(2015) △FIFA U-20 여자 월드컵 청소년대표(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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