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처음부터 돼지는 아니었다.

아니 서른둘 전까지 나는 절대 살이 안찌는 체질인 줄 알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었다.

간단한 예로 무제한 초밥집 가면 2피스 씩 나오는 초밥을 50접시 정도 먹는 수준이었다.

고기집 가면 보통 혼자 5인분 이상 먹고 후식은 냉면과 된장에 밥을 둘 다 시켜 먹었다.

부모님은 잘 먹는다고 좋아하셨지만, 남들과 먹을때는 눈치가 보여서 배부르게 먹지는 못했다.

그렇게 먹어도 살이 안쪄서 부모님이 얼굴에 살 좀 붙었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였다...

잘 먹고 컸는데도 신검때 키는 177.6 이었고 몸무게는 고작 63 이었다.

체중의 고점도 상병때 73 정도 였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니 살이 쪘나 했지만 전역 후 다시 70 미만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별다른 체중 변화 없이 20대를 보냈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서른 셋에 찾아왔다.

군에서 배운 담배를 끊기 시작하고 6개월이 지나자 몸에 변화가 생겼다.

살이 점점 찌기 시작하더니 금연 1년만에 80을 찍었다.

그 즈음 키도 재보니 179.6 이 되어 있었다.

남자는 이십대에도 큰다더니 나는 신검때보다 2센티 커져있었다.

사실 80까지 쪘을때는 나름 긍적적이었다.

평생 홀쭉하고 날카로운 턱선이었던 내 인상이 많이 유해졌고 말라서 호리호리 하던 몸은 후덕하지만 당당한 풍체가 되어 있었다.

대두에 어좁이가 컴플렉스였는데.. 살이 찌니 대두에 덩어리가 되어서 뭔가 두툼하니 길가다 누구한테 시비 털리지는 않을것 같았다.

마른 몸으로 지금껏 살아왔으니 인생 후반전은 좀 찐 몸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따위의 안일한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에 비해 문제는 점점 심각해져만 갔다.

금연 1년이 넘어가기 시작하자 미각이 점점 정밀해졌다.

맛있는건 그 전에 비해 훠어어얼씬 맛있게 느껴졌다.

예전에는 관심 없던 간식이나 디저트류들도 자주 찾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금연을 통한 각성에 제한을 받자 술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게 되었다.

원래는 소주 반병도 힘들던 알쓰 체질이었는데 어떻게 봉인이 해제 되었는지 혼술할때는 소주 1병 맥주2~4 캔, 사람들과는 기본 소주 2병에 2차 이상 가면 3~4병은 우습게 비웠다.

그렇게 금연 3년차에 인생 고점 93을 찍었다.

거울속에는 정준하와 유민상을 섞어놓은 듯한 어떤 거대한 뚱땡이가 서 있었다..

참고로 어렸을땐 세븐 닮았다는 소리도 들었던 사람이다 ;;;;;

자괴감이 들었다. 뭘 입어도 어떤 머리스타일을 해도 그냥 돼지였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에게 ’살이 왜이렇게 많이 쪘냐‘ 는 소리를 들을때까지는 웃어 넘겼지만, 내가 누군지 못 알아 보는 지경이 되자.. 마음이 급해졌다.